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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pkp (~~~pkp~~~)
날 짜 (Date): 1994년12월26일(월) 00시34분23초 KST
제 목(Title): [교우회보] 차별화된 "高大氣質"의 역사성




   150여명의 원로 교우들이 참석한 제 114회 월례강좌가 李哲承(38법) 교우의

 갑작스런 개인 사정이 생겨 宋瓚圭(34상) 월례강좌 운영위원장이 "고대기질론"에

 대해 강의했다. 다음은 강연의 요지이다.

   "民族高大"란 창교해서 30년 뒤인 仁村이 인계받을 때까지 나라와 학교가 어려운

 시기에 민족의 손으로 나라를 구하자는 취지에서 국민들의 성금을 모아 高大를

 다시 일으킬 수 있었기 때문에 이에 연유한 것이다.

   고종황제시절 내장원경을 지낸 李容翊 선생이 황실돈으로 1905년 "사립학교"로

 창교한 이래, 일제 식민정책의 극심한 탄압과 핍박을 끝내 견디다 못해 개교

 11년만인 1915년 마침내 孫秉熙 선생에게 학교는 인계됐다. 영세서민들의 한줌의

 쌀. 성미로 모여진 재력이 뒷받침했으니 우리 학교의 "토양과 뿌리"는 다시 서민

 대중으로부터 떠받쳐지게 되어 튼튼한 "구국의 기지"가 될 수 있었다.

   22년 孫秉熙 선생의 서거로 학교가 위급해지자 뜻을 같이 한 58인의 유지들이

 재산을 염출하고 재단법인을 설립, 총독부의 간악한 흉계를 피해가며 어렵게 명맥을

 이어가니, 학교운영 자체가 독립운동 그 자체이기도 했다.

   32년 3월 仁村 金性洙 선생에 의해 학교는 또 다시 인계되면서 안암동 현위치에

 35년에 입주하였다. 이렇듯 우리 고려대학교는 "저항과 투쟁의 축"이되어 민족의

 길잡이였다.

   高大를 "막걸리 대학"이라고 하는데, 이의 연유는 이러하다.

   나라가 기울어 갈 때 애국자들이 야학을 하며 이 나라의 앞날을 걱정했다.

 막걸리는 먹고난 뒷맛이 걸쭉한 것이 우리 민족의 정서와 일맥상통한다.

   막걸리 속에 스며들어있는 순수성, "高大氣質"의 본질도 막걸리의 속성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한편, 高大하면 "와일드하고 거칠다"고 한다.

   이 또한 창교부터 1930년까지의 일로, 일본인들에게 항거하며 저항하는데 주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普專시절 축구 농구 등을 통해 일본을 꺽었던 것은 일본에

 항거하기 위한 하나의 독립운동이기도 했따.

   이러한 역사성을 모르고 무턱대고 "民族高大", "高大=막걸리.거칠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때면, "高大氣質"이 왜곡되어가는 건 아닌지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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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             키즈의  아저씨    pkp    palindrome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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