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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IST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guest) <211.41.103.20> 
날 짜 (Date): 2000년 7월 26일 수요일 오후 04시 42분 11초
제 목(Title): 심사위원 이문열씨 인터뷰


역시 한겨레 21에서 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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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파문’으로 다시 담배 피워문 이문열의 ‘조선 옹호론' 

 

중부지방에 억수 같은 비가 퍼붓던 지난 7월22일 토요일, 경기도 이천 자택에서 
만난 작가 이문열(52)씨는 자신이 세운 사숙의 문하생들과 습작 독회중임에도 
흔쾌히 시간을 내었다. 동인문학상 종신 심사위원 가운데 한명인 그는 황석영씨가 
이 문학상의 심사대상이 되길 거부한 데 대해 “걱정했던 일이 일어났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현재 금연중이지만, 긴장된 일을 대할 때는 꼭 담배를 한대 태우고 
시작한다며 연초에 불을 붙였다. 


심사대상에서 뺄 것을 제안하겠다 


―끊었던 담배를 피울 일을 들고와 미안하다. 먼저 황석영씨의 심사대상 거부에 
대해 심사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심경을 듣고 싶다. 

=황 선배의 작품은 내가 추천했다. 2차 독회 때는 박완서씨의 추천도 있었다. 
추천할 당시부터 그가 과연 이 상을 수락할 것인가를 두고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작가의 수상 수락 여부에 대한 걱정 때문에 추천작에서 뺄 수는 없었다. 수상 전에 
상에 흠집이 생긴 것 같아 유감이다. 개인적으로 행인지 불행인지 어쩌다 이런저런 
문학상의 심사위원이 되어 선배에게 상을 준 적이 몇번 있다. 나 혼자 줬다면 
당사자에게 욕이 되겠지만 세명에서 일곱명까지 여러 심사위원과 함께 준 경우엔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황 선배에게 모욕감을 줬다면 사죄할 수밖에 없다. 
황 선배는 오랫동안 문단을 떠나 있어 받아야 할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다. 
동인문학상이 이번에 상금이 5천만원으로 올라 대한민국의 문학상 가운데 가장 큰 
상이 됐다. 이런 큰 상이라면 황 선배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처음 추천한 
사람으로서 사과한다. 심사위원 모임에서 그의 작품을 논의 대상에서 제외할 것을 
다시 제안할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동인문학상 심사위원 자리를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숙고하고 있다. 내가 빠지는 것이 <조선일보>와 동인문학상에 도움이 
된다면 빠지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탈락과 잔류를 공개하는 등 바뀐 동인문학상의 심사 방식이 비문학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추천한 사람이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보면서 탈락 의견을 내고 다른 심사위원이 
반대하지 않으면 탈락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이 작가 본인들에게 기분 나쁘게 
받아들여질 수 있으므로 탈락을 공개하지 말고 후보작을 계속 늘려가면서 
내부적으로 수상작을 압축해가는 방식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황씨가 심사대상 되기를 거부한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심사 방식에 대한 
지적도 있었지만, 그는 <조선일보>가 “어려운 시기에는 냉전적 공격과 터무니없는 
폭로로 ‘권력’을 누리고” 이제는 문화면에서 다양성을 보여줌으로써 “또다른 
방식으로 권력을 유지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선일보>를 ‘권력’이라고들 하는데, 그 권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나. 
발행부수에서 나온 것이다. 나는 <조선일보>를 국민들이 선택했기 때문에 
<조선일보>가 최고의 발행부수를 누린 것으로 안다. 군사정부가 <조선일보>를 
키웠다고 하는데, 군사정부가 언제 국민들에게 <조선일보> 구독하라고 강요한 적이 
있는가? 군사정부가 <조선일보>의 부수를 늘리기 위해 무슨 조처를 취한 적이 
있는가? 내 정보가 정확한지 모르겠는데, 난 그런 일은 없는 걸로 안다. 
<조선일보>가 권력을 누리게 됐다면 그건 독자들의 선택이었다. 


‘안티조선’은 일종의 ‘문화적 위장’ 



 

―최근 <조선일보>에 대한 비판적 논의들을 알고 있나. 

=몇 가지 읽어보았다. 이른바 ‘안티조선’쪽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가 크게 두 
가지 있다. 첫째, 다 양보해서 <조선일보>가 과거 군사정권과 결탁했다고 치자. 
지금은 안티조선쪽이 현재의 집권세력과 결탁해 있지 않은가. 안티조선쪽의 
면면들을 보면 현 집권세력의 모태가 된 운동과 투쟁에 관여했던 사람들이다. 
적어도 대부분이 현 정권과 우군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군사정권 시절 이런 
운동(‘안티조선운동’을 말함)이 일어났다면 그건 얘기가 된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과거의 일을 뒤집어놓은 것처럼 보여 마뜩찮다. <조선일보>가 DJ와 
사이가 좋지 않으며 싸우기까지 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지 않느냐. 그 
때문에 안티조선운동은 일종의 정치적 보복으로까지 보인다. 이제 <조선일보>는 
힘을 잃고 DJ는 힘을 다 가졌으니 보복을 벌이되 현행법으로는 어쩔 수 없으니까 
안티조선운동이라는 일종의 ‘문화적 위장’을 통해 보복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로, 과문해서 잘 모르긴 하지만, 세상 어느 나라에서든 특정 신문의 존폐를 
두고 운동을 벌인 예는 없지 않을까 싶다. 어떤 신문의 그릇된 태도를 공격하는 
것은 있을 수 있으나, 존폐까지 논하는 건 지나친 것 같다. 그건 일종의 
테러리즘의 변형이며, 우리나라밖에 예가 없는 줄로 안다. 가령 영국의 <더 
타임스>가 역사상 그릇된 논조를 펼 때도 있었을 텐데, 그렇다고 해서 그 신문을 
없애자, 그 신문에 글을 쓰지 말자는 운동이 영국 지식인 사회에서 벌어졌다는 
얘긴 들어보지 못했다. 신문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신문에 대해 얼마든지 
비판은 가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신문의 존폐 여부에 대해 압박을 가하는 일은 
참으로 별스런 일로 보인다. 

―강준만 교수를 위시한 ‘안티조선’쪽은 “<조선일보> 폐간”을 주장한 적이 
없고 스스로 “<조선일보> 제몫 찾아주기 운동”이라 표현하고 있다. 

=어떤 신문의 ‘제몫’을 찾아준다는 것도 참으로 엉뚱한 발상이다. <조선일보>가 
누리는 “몫이 과다하다”는 얘긴데, ‘몫’이란 다른 말로 ‘독자’ 아닌가. 
‘몫’을 찾아주는 일은 그야말로 독자의 몫 아니겠는가. 독자들은 판단할 능력이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어떤 신문이 정말 논조가 형편없고 문제가 있다면 자연히 독자들이 안 보게 
될 것이다. 누가 나서서 “제몫을 찾아주라”고 할 필요도 없다. 경우에 따라선 
그것 또한 하나의 권력놀음으로 비친다. “제몫 찾아주기”란 구실에 지나지 않고 
사실은 뭔가 <조선일보>가 마뜩치 않으니까 위해를 가하자는 뜻이 아니겠는가. 

―최장집 교수에 대한 사상 검증 등에서 드러났던 <조선일보>의 극우적 논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조선일보>의 논조가 극우적이고 수구적이라 치자. 그게 싫은 사람들도 있겠지. 
그러나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신문이 팔리는 것 아니겠는가? 그걸 왜 
간섭하는가? 극우라고 해서 무조건 나쁘다고 하여 사회적 공적(公敵)으로 몰아 
제거의 대상으로 삼는 게 과연 정당한 일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극우도 말하게 하라 


―‘극우’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 

=나보고 ‘극우파’라는 사람들이 있어서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극우나 파쇼의 
특징은 인종이든 계급이든 차별주의적 사고가 기반이 돼 있는 것 같고, 무차별한 
전제주의 같은 것, 이성의 논리보다는 감성적인 설득이나 선동이 특징인 것 같다. 
이런 게 독일 나치즘 등 20세기 초반의 극우의 특징일 것이다. 지금은 정의가 
달라져야 할지도 모른다. 

―극우적 논리를 펴는 일도 허용해야 한다는 말인가. 

=<조선일보>가 극우적 논조를 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는 
일이고, 설혹 <조선일보>가 극우라 하더라도 제거해야 할 공적이라는 생각은 안 
든다. 그렇게 단정짓는 일 자체가 논쟁거리이며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극우적인 
발언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문제 역시 독자의 선택에 맡겨야 할 문제 
아니겠는가. 

―<월간조선> 편집장인 조갑제씨는 “평양 주석궁에 대한민국의 탱크가 들어가야 
통일이다”라고 말한다. 그런 발언도 허용해야 하는가. 

=조갑제씨가 <조선일보>를 대표한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발언도 
가능해야 한다. 

―<조선일보>는 지난 7월11일치 사설을 통해 “남쪽의 체제와 이념에 따른 통일” 
아니면 “북쪽의 체제와 이념에 따른 통일”밖에 없다는 주장을 폈다. 이런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실은 나도 그렇게 믿는다. 남쪽식 통일 아니면 북쪽식 통일밖에 가능하지 않다. 
역사적으로 선례가 없는 일을 할 때는 겸손해야 한다. 예멘을 보라. 합의 통일을 
했지만 결국은 전쟁을 치른 뒤 남예멘식으로 통일하지 않았는가. 

―그런 주장을 펼 때 남북대화가 가능하겠는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미국과 소련도 대화하지 않았는가. 

―남북이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면 전쟁의 위험이 커지지 않겠는가. 

=지금까지 50년 동안 전쟁은 없었다. 남북이 대화한 것은 머리가 깨여서 그런 게 
아니라 서로 필요가 생겨서 했을 뿐이다. 

(인터뷰가 충분하지는 않았으나 그에게 다음 일정이 있어 여기서 마무리해야 
했다.) 

―듣기에 따라 불편한 질문임에도 귀한 시간 내어 성실히 답해주어 고맙다. 

=나도 <조선일보>에 불만이 없지 않으나 오늘은 좀 지나치게 옹호를 했다. 
<조선일보>가 안티조선쪽에 크게 공격당해 기우뚱한 지경이기 때문이다. 그게 나의 
균형감각이라고 생각한다. 

이상수 기자lee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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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상, 노벨상을 거부한 사람들이 있었다죠.
우리나라에도 규모는 작지만 이런일이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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