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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ngulKorean ] in KIDS
글 쓴 이(By): sjyoun (예리큰아빠)
날 짜 (Date): 1999년 5월 31일 월요일 오후 01시 58분 11초
제 목(Title): 장사치,시정아치등에서의치는 몽고어원


번호 : 10/1233                 입력일 : 99/05/31 10:35:25      자료량 :61줄

  제목 : [천자칼럼] 몽골
자료원 : 한국경제


 러시아와 중국사이의 내륙에 위치한 몽골은 우리와 인연이 많다.

 어린애의 등이나 궁둥이에서 볼 수있는 "몽골반점"은 몽골인과 우리민족이
인종학적으로 가깝다는 믿음을 갖게 한다.

 19세기말 오즈번같은 고고학자는 인류가 내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살았다고
주장했다.

 이를 입증하는 만족스런 자료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지만 우리는 '한민족의
아시아내륙으로 부터 한반도 이주설'을 크게 의심하지 않는다.

 몽골은 우리에게 "어떤 근원"를 생각하게끔 한다.

 깊은 인연에도 불구하고 몽골과 우리와의 사이에 만남은 역사적으로 8백년이
안된다.

 1218년(고려 고종) 몽골이 거란의 유민을 추격해 고려에 들어왔을 때 양측은
처음 만났다.

 1260년에는 쿠빌라이칸이 양양에서 고려의 세자 전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고려사 권25에는 쿠빌라이가 세자 전하고 나눈 대화가 나오는데 그는 고려를
당태종이 직접 정벌했지만 굴복시키지 못한 나라로 언급했다.

 고려를 고구려와 동일하게 봤으나, 어쨌든 이것은 몽골인이 한민족을 평한
첫 기록으로 몽골인은 우리를 "강한민족"으로 여겼던 것 같다.

 이 첫 이미지때문인가.

 우리는 몽골로부터 오랫동안 혹독한 시련을 당한다.

 1231년부터 1258년까지 28년간 7차례 침략을 받는다.

 쿠빌라이가 원의 세조가 된 후에도 고려를 가혹하게 지배했다.

 1백년이 넘는 몽골의 지배는 아직까지 우리 생활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전통혼례때 신부가 연지를 찍는 풍습, 왕의 진지상을 "수라"라 하는 말,
"장사치" "시정아치" 등 말 끝에 "치"를 붙이는 언어습관 등은 몽골풍습이다.

 쿠빌라이가 2차례 일본원정을 시도했을 때 몽골원정군의 근거지가 경남
마산이었다.

 이때 군마에 물을 먹이기 위해 판 우물(몽고정)이 추산동에 지금도 있다.

 오늘날 몽골은 인구 2백40여만명에, 국토는 한반도의 7배 가량된다.

 석탄 동 금 철 등 광물자원이 풍부해 세계 10대 자원국으로 꼽힌다.

 이곳에 김대중 대통령이 방문중이다.

 양국간 새 이미지교환을 기대해 본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31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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