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angulKorean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4월 25일 일요일 오전 08시 23분 18초 제 목(Title): 고종석/우상의 언어 . [고종석에세이] 우상의 언어 북한의 문헌을 살피면, 심지어 학술문헌에서도,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또는 “혁명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라는 문장이 흔히 발견된다. 그 문장들 뒤에 나오는 김일성 주석의 `교시'는 예외없이 굵은 활자체다. 80년대 이후 문헌에서는 `김일성'이라는 세 글자의 활자도 마찬가지다. 어떤 정치적 논설이 아니라 학자들의 순수한 이론 전개에도 그 근거가 되는 것은 김일성 주석의 교시다. 지도자의 교시가 아무 데서나 인용되고 그것을 논리 전개의 근거로 삼는 것이 전체주의 국가에서 드문 일은 아니지만, 북한의 경우는 특히 그 정도가 심하다. 왕조 시대의 군주는 물론이고 스탈린이나 히틀러를 포함한 역사상 어떤 독재자도 자기가 다스리는 사회에서 김일성만큼 우상화된 예는 없다. 그의 생전에 그는 살아 있는 신이었다. 심지어 김일성과 관련된 언어 예절이 따로 규정돼 있을 정도다. 물론 왕조시대에도 군주에 대한 언어 예절이 존재했다. 그러나 그것은 군주 주위에 있는 권력자들이나 지식인들에게 해당되는 예절이었지, 배우지 못한 민초들까지도 습득해야 하는 규범은 아니었다. 반면에 북한은 현대의 전체주의 사회이고, 그 집단성과 정치적 통합의 정도가 역사상 그 맞수를 찾아내기 힘들 만큼 커다란 국가다. 문맹률이 제로이고 개인성이 제로인 그 사회에서 김일성에 대한 언어예절은 주석궁에서 수령을 모시는 측근들만이 아니라 함경도나 강원도의 오지에서 자라나는 어린아이들에게도 주입된다. 북한에서 김일성에 대해 얘기하거나 글을 쓸 때, 그 주격조사는 늘 `께서'이고, 여격조사는 늘 `께'다. 주격 조사 `이' `가'나 여격 조사 `에게' `한테'는 김일성에 관한 한 글에서 결코 사용할 수 없다. 그리고 서술어에는 반드시 존칭 선어말어미 `시-'가 들어가야 한다. 재귀 대명사 `자신'은 김일성에게만 사용한다. 그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재귀대명사가 `자기'이거나 `저'다. `교시하시다', `보살피시다', `배려하시다', `현지 지도하시다' 따위의 말은 김주석 부자가 주어가 될 때 이외에는 절대 사용할 수 없다. 그리고 김일성의 이름 앞에는 늘상 존경과 흠모를 나타내는 최고의 존칭 수식사가 놓여 있다. 80년대 말 남한 사회의 일각에 주체사상이라는 것이 퍼졌을 때, `위수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친지동'(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이라는 말이 주사파를 비아냥거리는 말로서 유행한 적도 있지만, 북한의 출판물이 김일성이라는 이름 앞에 붙여놓은 존칭수식사는 자주 남한사람들에게 이물감을 준다. 또 그것들은 너무 길어서 외우기도 힘들다. 1979년 평양의 공업출판사에서 나온 <우리말 어휘 및 표현>은 본문의 도입부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에 대한 존칭수식사와 수령님을 높이 우러러 칭송하는 표현'을 나열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몇 개만 보자.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민족적 영웅이시며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시며 국제공산주의 운동과 로동운동의 탁월한 령도자이신 우리 당과 인민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항일대전을 선포하시고 혈전 수만리를 걷고 걸으시며 강도 일제를 쳐부시고 광복의 새봄을 안아오신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해방의 은인이신 김일성 장군님”, “밀림과 눈보라의 수십만리 피어린 길을 헤치시며 강도 일제를 때려부시고 잃었던 나라를 찾아주신 해방의 은인”, “빛나는 지략과 비범한 통찰력으로 전쟁의 매단계마다 탁월한 군사전략적 방침과 독창적인 전법들을 내놓으시고 강인한 의지와 비상한 혁명적 전개력으로 전체 인민과 인민군 장병들을 전쟁 승리에로 령도하신 위대한 수령님”, “태양처럼 밝고 뜨거운 빛발로 공산주의 미래를 휘황히 밝히시며 우리 인민과 혁명전사들을 한품에 안아 키우시는 위대한 수령님”, “인민의 모든 념원과 소원을 어느 하나도 빠짐없이 다 풀어주시면서도 오직 하나의 념원, 장구하시고 간고한 혁명의 길에서 쌓이고 쌓인 피로를 다문 하루, 한시라도 편히 풀어주실 것을 간절히 바라는 인민들의 절절한 그 소원만은 뒤로 미루시며 오늘도 궂은 날씨와 진창길, 이슬 차거운 새벽길과 바람 사나운 바다길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몸소 현지지도의 길을 걷고 걸으시는 어버이 수령님”. 이 장황한 존칭수식사들은 20세기 한국어가 입은 커다란 상처로 기록될 것이다. 김주석은 생전에 “사실 남조선에서 쓰고 있는 말에서 한자말과 일본말, 영어를 빼버리면 우리말은 `을' `를'과 같은 토만 남는 형편”(<조선어의 민족적 특성을 옳게 살려나갈데 대하여>)이라며, 남한의 말을 `잡탕말'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그 말이 크게 과장됐다고 하더라도, 남한의 언어현실에 비판받을 점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으르렁말과 가르랑말로 상처투성이가 된 북한의 언어현실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에세이스트 ♠위로 �� �後後� �짯後� �後� �碻碻碻� �碻碻� �� �� ┛┗ �� �� �� �� �後後� �碻�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