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gul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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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ngulKorean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3월 12일 금요일 오후 02시 10분 21초
제 목(Title): 진중권/ 복거일 비판 



      제 목 : [21C진보]"복거일, 당신은 '멋진 신세계'를 꿈꾸는가"(진중권)

21세기다운 진보를 찾아서
세계화와 영어공용화론
“복거일, 당신은‘멋진 신세계’를 꿈꾸는가”

영어공용화 논쟁이 한창이다. 극우 이데올로기와 위장 자유주의를 자
근자근 ‘씹어 온’ 진중권씨는 이런 천박한 논쟁이 진지한 담론의
행세를 하는 우리 지성계의 풍토를 개탄한다. 영어공용화 주장은 천
박한 도구주의적 언어관이자 한국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언어철학적
반영이라는 것이다. 진짜 자유주의를 위해 그의 통렬한 목소리를 들
어 보자

진중권 베를린 자유대학 박사과정

마르크스는 “근원적이라는 것은 사물의 뿌리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고려할 변수가 많은 현실에서 행하는 정치적 비판과 달
리, 마찰이 없는 추상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이론적 비판은 이렇듯
‘근원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인물과 사상 8호  에서 고종석이
복거일을 비판했다. 근데 그는 비판을 하다 말고, 결정적인 순간에 뒤
로 멈칫 물러선다. 나는 그가 일단 내친 걸음, 마저 내딛으려고 한다.

자의식 없는 천박한 자유주의

고종석은 “자신이 틀릴 가능성을 아예 배제함으로써 자신이 태어난
세상의 철학적 틀 속에 갇히는 것이 모든 종교적 지식의 운명”이라
는 복거일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덧붙인다.

이 글에서 비판한 견해들처럼 그 견해들을 비판하는 내 견해도, 분명
히 지금의 세상의 틀 속에 갇혀 있을 것이다.

고종석은 이걸 안다. 문제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인간은 세계관을 자유로이 선택하고 옹호할 자유가 있다. 문제
는 광신이다. 이 점에 관해 제일 순진한 게 바로 자유주의자들이다.
그들은 착각한다. ‘우도 좌도 극단적일 수 있으나 자유주의는 극단
과 거리가 멀다.’ 순진한 생각이다. 자유주의 역시 얼마든지 극단으
로 흐를 수 있고, 그럼 정말 천박해진다. 복거일이 그 대표적인 경우
다.

재미있는 사람이다. 세상 모든 건 다 이데올로기인데 내 생각은 다르
다. 세상 모든 논리는 신적인데 내 건 과학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사고는 경직됐는데 내 사고는 유연하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집단주
의자인데 나는 개인의 자유를 옹호한다. 내가 보기에 몇몇  예를 제
외하고는 한국의 자유주의자들은 대개 이렇게 ‘경직된’, ‘신화
적’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들의 ‘획일’적 집단이다. 이 무반성.

복거일은 툭하면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씹는다. 거기서 자신의 정당성
이 나온다고 믿는 걸까? 잘못된 생각이다. 왜? 상대방의 악에서 자신
의 선이 도출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를 아무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이젠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야무진 망상이다. 왜? 자의식 없는 그의 천박한 자유
주의를 비판하는 데에는 그가 툭하면 오징어처럼 씹는 마르크스주의
사상 반 자락만 갖고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걸 보여 주려고 이 글
을 쓴다.




극우와의 밀월 즐기는 한국 자유주의

자유주의에 대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비판. 자유주의자들은 법적, 형
식적 자유를 떠든다. 하지만 자본주의하에서 이 형식적 자유는 경제
적 불평등에 의해 얼마든지 왜곡된다. 가령 정주영의 한 표와 나의
한 표는 정치적 효과면에서 애초에 수준이 다르다. 똑같이 법정에 서
도 웬만하면 정주영이 이기고, 같은 죄로 감옥에 가도 내가 더 오래
살고, 자식을 낳아도 그의 자식들이 출세할 확률이 더 높다. 자본주의
하에선 이건 ‘선험적’ 논리다. 이렇게 정주영이라는 개인과 나라는
개인은 실제론 법적, 정치적으로 불평등하다. 마르크스주의자는 이 자
유주의적인 형식적 자유와 평등을 실질화하기 위해 투쟁한다.

‘개인의 자유’? 웃기는 얘기다. 자유주의자들이 비교적 성실하게
옹호하는 유일한 자유는 ‘영업의 자유’뿐이다. ‘사상의 자유’?
그런 것 없어도 잘 산다. 독재하에서도 아무 불편 없다. 민주? 이들도
필요하면 얼마든지 우익 편에 붙어 독재한다. 독재자가 민주를 파괴
해도 ‘영업의 자유’만 보장해 주면 옆에서 박수치며 ‘잘한다, 잘
한다’ 부추긴다. 보라, 고종석의 예리한 지적이다.

나는 또 복거일이 “전두환 대통령의 과감한 자유화 정책”을 거론하
며 그의 경제적 치적에 점수를 줄 때 곤혹스럽다.

‘곤혹’스러울 거 없다. 자유주의와 극우의 밀월. 이게 소위 한국 자
유주의자들의 본질이니까. 전두환이 ‘영업의 자유’ 하나는 화끈하
게 보장해 주었다는 거다. 이게 소위 자유주의자의 입에서 나올 소리
냐? 고종석의 또 다른 지적이다.

그가 억울한 ‘사회적 악한’이 돼 버린 재벌을 동정하고 우리 경제
를 어렵게 만드는 ‘진짜 악한’인 노동조합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적
일 때...”

대체 어느 나라 자유주의자가 재벌이라는 가족주의적 경영형태를 옹
호한단 말인가. 그리고 어떤 정신 나간 자유주의자가 노조의 존재 자
체를 불법화하는 행태에 동정을 보낸단 말인가. 전두환이 김영삼 정
권에서 당한 일에 대해 동정을 표현하며 ‘왕은 왕을 죽이지 않는
다’라고 복거일이 말할 때, 그에게선 이미 확립된 권위나 힘에 대한
존중이 읽힌다. ‘왕은 왕을 죽이지 않는다?’ 지금 조선시대냐? 자
유민주주주의 사회에선 왕이건 불알 깐 내시건 죄를 지었으면 법에
따라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지. 왕이 처벌하는 게 아니라 법이 처벌하
는 거다. 근데 그게 제대로 안 됐다. 왜? 누구 때문인가? 복거일처럼
이렇게 옆에서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소위 자유주의자들 때문이다.
마마, 불가하오.

칠십 넘은 할아버지가 사상이 다르다고 감옥에 갇혀 있는 나라에서
자유주의자들이 지금 뭐하는가? 우국하고 앉았다. ‘어떻게 하면 세
계화 시대에 국력을 강화시킬 수 있을까’,공상소설을 쓴다. 영어공용
화론인지 뭔지, 시간 많은 철학자들이나 할 만한 한가한 사유실험 하
고 앉았다. 우익과 한패가 되어 생각이 다른 사람들, 감옥에 쳐 넣고
는 엄살을 부린다. “어, 아파, 좌익이가 때렸어. 싫어, 싫어” 자기가
남을 비판하는 건 사상의 자유고, 남이 자기들 비판하는 건 집단주의
적 테러라는 투다. 정말 역겹다.

 자유주의나 민족주의나 그게 그거, 다 이데올로기다. 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적 구성물도 역사의 진행과정 속에서 얼마든지 퇴물이 될
수 있다. 천박하게 실천하면 순식간에 퇴물이 된다. 가령 복거일은 재
단의 비리, 횡포를 막으려면 대학을 주식회사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
장한다. 보라, 시장에 대한 이 맹목적인 광신. 만약 대학을 주식회사
로 만들어 시장원리에 맡겨 버린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당연히 돈
안 되는 인문과학, 정신과학은 절멸한다. 그럼 대학이란 곳은 산업기
술원, 경영기술원으로 전락해 버리고, 정신문화가 기술문명의 발달을
제어하지 못하는 경쟁력 우선주의와 기술합리성 위주의 네오파시스트
사회가 도래할 거다. 레이건이나 대처 같은 극성스런 우익들도 혀를
내두를 망언이다.

극단적 도구주의는 파시즘

영어공영화? 나는 쓸데없는 민족주의적 감상으로 복거일이 이런 발언
을 할 자유를 집단적으로 깔아뭉개는 만행에는 반대한다. 그럼 안 된
다. 나는 이런 발언까지 할 복거일의 자유는 열렬히 옹호하고, 그의
용기는 열렬히 칭찬한다. 하지만 이 발언의 몰상식함에 경악하고, 그
게 농담이 아니라 진지한 담론으로 행세하는 우리 지성계의 수준에는
통탄한다. 알아듣도록 내가 그 이유를 설명해 주겠다.

언어관에는 크게 두 가지 흐름이 있다. 하나는 근대 철학자들의 언어
관, 즉 소통수단으로서의 언어관으로 이는 정치적 자유주의, 경제적
자본주의, 산업혁명으로 특징지워지는 초기 근대의 멘탈리티를 대변
한다. 다른 하나는 홈볼트에서 비트겐슈타인과 하이데거로 이어지는
공동체 생활형식의 표현으로서의 언어관. 이는 후기 근대에 널리 인
정되고 있는 관점이다. 앞의 관점이 언어를 한갓 망치나 끌 같은 연
장으로 보는 도구주의적 성격을 띤다면, 후자는 언어 속에서 그 이상
의 것 즉, 한 언어공동체의 세계관과 세계감정의 표현을 본다.

 문제는 극단주의다. 가령 극단화된 도구주의적 언어관은 모든 것을
기술합리성만으로 설명하는 천박한 환원주의나 인간적 가치의 수단
화, 도구화로 나아가게 된다. 다른 한편 하이데거의 언어관을 극단화
하여 언어를 실체화하면 괴상한 언어신비주의 내지 존재신학에 빠지
게 된다. 전자, 즉 천박한 자유주의와 후자, 즉 우익 근본주의가 만났
을 때, 혹은 전자가 후자에게 투항을 해 버릴 때, 한편으로 모든 인간
적 가치의 수단화와 도구화, 다른 한편으로 이 로봇들의 세계관의 공
백을 메워 주는 심오한(?) 신화와 정치신학이 결합된 끔찍한 (네오)
파시스트적 사회가 도래한다.

복거일 발상의 바탕에 깔려 있는 언어관은 전자, 즉 근대 초기의 도
구주의적 언어관이다. 언어는 어차피 수단이다. 한국제든, 미제든 수
단은 수단이다. 문제는 효용이다. 정보시대에 효용이 더 큰 것은 영어
다. 따라서 영어공용화를 하자. 그럼 우리 사회는 정보시대에 효과적
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이걸 말이라고 하는가? 차라리 문화혁명
을 하지. 국민이 복거일 농장의 실험용 토끼냐? 대한민국이 시사영어
학원이냐? 그거 괜히 돈 들고 시간만 잡아먹는 불필요한 실험이다.
왜?

첫째, 어차피 산업사회에서 제일 중요한 정보가치를 지니는 자연과학
의 언어는 영어가 아니라 인공언어, 수학언어, 형식언어다. 그건 이미
국제어다. 그리고 자연과학 텍스트들은 비교적 간단한 문법구조를 갖
고 있다. 경영학을 비롯한 그 밖의 돈 되는 학문의 경우도 마찬가지
다.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찾아 낼 만큼 전문적인 직업을 가진 사
람들에겐 언어 장벽이란 별 문제될 게 없다.

둘째, 인터넷 시대에 정보의 문제는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차고 넘치
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검색, 압축, 요
약하여 신속하게 전달해 주는게 관건이다. 이건 전국을 영어학원으로
만듦으로써 해결할 언어학적 문제가 아니라,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정보공학적 과제다. 영어 잘 하면서도 얼마든지 무식하고 아더왕 시
대의 영국인처럼 몽매할 수 있다.

셋째, 수십 년 후면 아마 자동번역이 상당한 진전을 이룬 상태일 게
다. 소설이나 시는 몰라도 최소한 돈 되는 정보들은 몇 초 만에 번역
되어 스크린에 뜨게 될 것이다. 기술발전의 무한 가능성에 미리 한계
를 그을 필요는 없다. 전국민을 들들 볶아 모국어를 영어로 대체했는
데 이 프로그램이 나왔다고 해 보라. 얼마나 허탈하겠는가? 그럼 복
거일 몰매 맞는다.

민족어 주체는 언어  문화 공동체

‘아메리카’고 ‘로마’고 ‘세계’고 간에 난 ‘제국’이라는 발상
에 반대한다. 그게 은유라 하더라도 이런 끔찍한 은유를 사용하는 그
몰취향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모두가 영어를 공용어로 하는 세계제
국. 이건 문화 제국주의적 발상이다. 미국의 극우파들이나 입에 담을
극언을, 식민지(?) 한국의 한 자유주의자가 앞장서서 설파하고 다닌
다. 한국의 우익이 팍스 몽골리카, 팍스 야파나를 설파하면 자유주의
자는 팍스 아메리카나를 설파한다.

천박한 도구주의적 언어관. 이는 한국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언어철
학적 반영이다. 이런 논리다. ‘세계어(영어) 반대편에 민족어들이 있
다. 민족어를 옹호하는 건 편협한 민족주의다. 따라서 ‘세계제국’의
‘세계시민’이 되려면 민족어를 버려라.’ 오, 하느님. ‘민족어=민
족주의’가 아니다. 민족주의는 근대에 발생한 이데올로기지만, 민족
어는 역사적으로 부침하는 수많은 이데올로기를 다 담아 낸다. 가령
아랍의 여러 나라들은 상이한 언어를 사용하면서 ‘아랍 민족주의’
로 뭉치지만 반면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미국과 영국은 다른
민족이다. 민족어의 주체는 근대적 이데올로기 구성물로서의 민족이
아니라, 언어공동체다. 이 언어 공동체가 항상 민족주의일 필요는 없
다.

언어는 신이 창조한 사물의 질서에 따라 세계 속의 사물을 가리키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다. 세계를 창조하는 것. 즉 의미론적으로 쪼개는
것 자체가 언어의 일이다. 언어가 다르면 세계를 다른 식으로 쪼개고
그리하여 세계를 다른 눈으로 보고,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체험하게
된다. 하다 못해 색(色)을 가리키는단어조차 언어권마다 거기에 해당
하는 빛의 파장이 각각 다르다. 언어의 다양성은 곧 세계체험의 다양
성이다. 복거일은 문학을 한다고 한다. 모든 지구인이 오로지 영문학
만 읽어야 한다면 얼마나 끔찍한가. 어떤 민족어로 된 시를 영어로
번역해 보라. 언제나 번역이 안되고 남는 부분이 있다. 근데 종종 예
술에선 정작 그 부분이 중요하다.

 이는 단지 미학적, 현상학적 체험의 문제가 아니다. 가령 베이컨이
말한 ‘시장의 우상’을 생각해 보라. 상이한 언어의 존재는 한 언어
권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다른 언어권들에 의해 경계지어져 있다는
것, 즉 그 세계관의 상대성을 보여 준다. 이렇게 언어의 다양성에는
우상을 파괴하는 힘이 있다. 가령 하이데거의 ‘존재신학’은 유럽어
권에선 상당한 위력을 발휘해도,  be동사가 생략되는 러시아어 또는
‘…있다’와 ‘…이다’ 사이에 아무 연관도 찾지 못하는 한국어 사
용자에겐 그 절대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따라서 다양한 언어의 존재,
그것들 사이의 소통은 특정 세계관과 특정 세계감정의 일당 독재, 즉
‘백색신화’를 깨는 해방적 역할을 한다. 그건 생산적이다. 보라. 동
일성보다 개인적 차이를 강조한다는 자유주의가 절대화되면, 역설적
으로 돈 몇 푼 때문에 민족문화의 개성적 차이를 사정없이 무시하는
동일성의 제국, 문화제국주의의 논리가 되어 버린다. 나는 이 논리에
서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얼굴에 성조기를 그리고 다니는 괴상한 애국
주의가 아무 무리 없이 결합되는 이상한 나라, 다양하게 획일적인
‘세계제국’의 중심 United States of America의 이미지를 본다.

해체해야 할 것은 ‘민족어’가 아니라 ‘무기’

이렇게 생각해 보자. 우리 나라에도 외국인의 수가 늘어날 것이다. 나
는 이들이 제 언어를 잊고 한국어만 사용하는 데에 반대한다. 외려
거꾸로 이들이 제 나라 언어를 후손들에게 가르치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 한국이라는 모노컬처 사회에 다양한 인종, 민족들이 고유의 언
어와 문화를 가지고 우리 문화에 신선한 충격과 자극을 준다면 얼마
나 좋겠는가. 어느 독일인 부부. 자녀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겠단다.
왜? 아니 안 될 게 뭐 있는가? 우리 역시 영어만 배울 게 아니라 아
이들에게 베트남어, 티벳어, 인디안어 아랍어 등 다양한 언어를 가르
치면 어떨까?

 소위 세계시민들이 단 하나의 언어를 말하는 세계는 『멋진 신세
계』와 같은 끔찍한 호러비전(Horror Vision)이 될 것이다. 개별문화
에 대한 존중. 동일성의 전체주의적 테러를 깨는 것. 세계를 바라보는
다양한 눈들, 이 눈들이 만들어 내는 모순적 합창. 이 때 세계의 모습
은 비로소 아름답다. 영어의 모노포니가 아닌, 다양한 민족어들의 폴
리포니. 이 때 세계의 음향은 비로소 아름답다. 그리고 이 때 세계는
민주적이다.

팍스 아메리카나? 자유주의자 여러분, ‘세계시민’을 꿈꾸시려거든
세계가 하나가 되고 있다는 이 시점에 열심히 사람 잡는 무기나 만들
고 있는 각국 정부를 향해 “탱크를 녹여 쟁기를 만들자”고 외칠 일
이다. 세계가 한 나라가 되고 있다면서 무기가 왜 필요해? 민족어를
말하면서도 얼마든지 ‘세계시민’이 될 수 있다.

인류가 세계시민이 되기 위해 ‘해제’해야 할 것은 민족어가 아니라
무장이다. ‘달러벌이’ 군수산업이다.

이제까지 나는 약속대로 마르크스주의 사상 반 자락만 갖고서 한국
자유주의자들을 씹었다. 마지막으로 자유주의자들이 영어로 쌓은
‘세계 제국’, 팍스 카프탈리카를 꿈꾸고 있는 이 때에 무기를 없애
고 국경을 열고 인류가 진정한 의미의 ‘세계시민’이 되기 위하여
랄랄라.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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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後�   �碻碻碻�  �碻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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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後後�    �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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