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angulKorean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사과같은내) 날 짜 (Date): 1999년 1월 7일 목요일 오전 04시 44분 41초 제 목(Title): 고종석/국어의 풍경들-수의 곡예사 . [고종석에세이] 국어의 풍경들-17/수의 곡예사 '들' ▶프린트 하시려면 성(性)도 그렇지만 수(數) 역시 한국어 문법에서는 체계적인 범주가 아니다. 단수(홑셈)와 복수(겹셈)를 나타내는 형태가 구별되기는 하지만, 그런 수 표시가 문법적으로 중요한 구실을 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한국어에서 `의자'라는 단수 명사와 `의자들'이라는 복수 명사가 형태적으로 구분된다고는 할 수 있지만, 그것이 문법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저 의자는 빛깔이 고운걸”이라는 문장과 “저 의자들은 빛깔이 고운걸”이라는 문장을 보자. 여기서 `의자'와 `의자들'은 그 형태만이 아니라 의미도 다르다. 그러나 그 차이가 문장의 다른 요소들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만약에 이 문장들을 프랑스어로 옮긴다면, `의자'가 `의자들'로 변하는 것에 따라 `의자'를 꾸미는 `저'도 변하고, `의자'를 서술하는 “빛깔이 고운걸”도 변할 것이다. 그래서 한국어에서와는 달리 프랑스어에서는 수가 체계적인 문법 범주다. 한국어 체언의 복수는 흔히 접미사 `들'을 덧붙여 표현한다. 예컨대 사람들, 친구들, 책들, 의자들, 우리들, 너희들, 이것들, 저것들 식이다. 단, 수사는 그 자체가 수를 나타내므로 `들'과 결합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들' `둘들'이라는 말은 우리 말에 없다. 또 복수를 표시하기 위해 체언에 `들'을 덧붙이고 안 붙이고는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대체로 수의적(隨意的)이다. 예컨대 “사람들이 많이 모였네”라는 뜻으로 “사람이 많이 모였네”라고 말할 수도 있다. 실제로 양화사(量化詞)를 포함해 구체적으로 수를 나타내는 말이 드러나 있는 경우에는, 이 `들'을 안 붙이는 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 예컨대 “여러 사람이 다쳤대”가 “여러 사람들이 다쳤대”보다 더 자연스럽다. 마찬가지로 “그 날 시위로 많은 학생들이 퇴학을 당했어”보다는 “그 날 시위로 많은 학생이 퇴학을 당했어”가 더 한국어답다. 또 “저기 의자가 많은걸”이라는 문장이 “저기 의자들이 많은걸”이라는 문장보다 더 자연스럽다. `이'나 `저'나 `그' 같은 지시 관형사 뒤의 명사는 `들'이 꼭 붙어야 복수가 되지만, 그 명사 앞에 양화사가 붙으면 `들'을 꼭 붙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이 꽃”의 복수는 “이 꽃들”이지만, “이 많은 꽃”이라고만 말해도 “이 많은 꽃들”의 뜻이 된다. 그런데 한국어의 복수 표지 형태 `들'은 통사적 측면에서 아주 재미있는 특성을 하나 지니고 있다. 즉, 복수로 만들 체언에 덧붙을 수 있는 이 `들'은, 이밖에도 이야기의 상황에서 앞에 나왔거나 전제된 주어가 복수라는 걸 나타내며 여러 위치를 떠돌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많이들 먹어라”거나 “웃지들만 말고 자세히 얘기해 봐”라거나 “조용히 합시다들” 같은 문장에서 이 `들'은 전제된 주어, 즉 이 말을 듣는 사람이 복수라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많이들 먹어라”는 “너희들 많이 먹어라”의 뜻이고, “웃지들만 말고 자세히 얘기해 봐”는 “너희들 웃지만 말고 자세히 얘기해 봐”의 뜻이고, “조용히 합시다들”은 “여러분들, 조용히 합시다”의 뜻이다. 마찬가지로 “잘들 해 봐”는 “너희들 잘 해 봐”의 뜻이고, “집에서들 놀고 있더군요”는 “그 아이들은(그 사람들은) 집에서 놀고 있더군요”의 뜻이며, “안들 들어오냐?”는 “너희들/그 사람들 안 들어오냐?”의 뜻이다. 이런 `들'의 자유자재는 주어가 생략되면서, 생략된 주어가 복수라는 걸 나타내기 위해 빚어진 현상으로 해석된다. 언어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들'의 복사(複寫 copying)”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주어가 생략되지 않은 경우에도 이 `들'이 관성으로 그냥 남아 있기도 한다. 예컨대 “그 아이들은 집에서 놀고 있어요”를 “그 아이들은 집에서들 놀고 있어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주어가 생략되지 않았으므로 이 경우의 `들'은 있으나마나한 군더더기이지만,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않고 마치 주어가 생략되었을 때처럼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 `들'은 여러 자리에 동시에 나타날 수도 있다. “그 아이들은 집에서들 놀고들 있어요”라거나 “가방들 챙기고들 빨리들 갑시다들”처럼. `들'의 이런 용법은 유형론적으로 한국어와 아주 비슷한 일본어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한국어만의 독특한 현상이다. 이 접미사 `들'은 “아이들” “참새들”처럼 동일한 개체가 복수라는 걸 뜻하기도 하지만, 한 개체를 대표로 삼아 그와 어울리는 무리들을 아우르기도 한다. 예컨대 갑수와 을숙과 병서와 정희가 늘상 어울려 다닐 때, 그들을 한꺼번에 “갑수들”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또 불완전명사(의존명사)로서의 `들'도 있다. 이 `들'은 둘 이상의 명사를 열거할 때 맨 뒤에 쓰는 말이다. 예컨대 “갑수, 을숙, 병서, 정희 들(*여기서 들은 띄워야 합니다*)”이라고 말할 때의 `들'이 그것이다. 에세이스트 ♠위로 기사제보·문의·의견 opinion@mail.hani.co.kr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