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gul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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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ngulKorean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요키에로타)
날 짜 (Date): 1998년 12월 14일 월요일 오전 05시 06분 01초
제 목(Title): 김석근/세계화시대의 민족교육 



 
정체성과 주체성 : 세계화 시대의 민족교육
 
김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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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생. 81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92년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일본 
동경대 대학원 수학.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한국정치사상연구실장(현) 
<조선시대 군산관계의 에토스와 그 특징> <개혁과 혁명 그리고 주자학> 
<한국정치학의 불모지대 : 동양정치사상> <유교와 자본주의의 선택적 친화력?> 외 
논저 다수. 주요역서 : "주자학과 양명학" :불교와 양명학" "일본정치사상사연구" 
"현대 정치의 사상과 행동" "일본의 사상"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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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감증과 과민증
 문득 우리 사회가 답을 알 수 없는 어려운 수수께끼처럼 여겨지거나 아니면 아주 
낯선 한 폭의 풍경화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정확한 현실 분석과 
진단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한 처방'이라는 사회과학의 미덕(美德)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그런 미덕마저 무의미해질 때가 더러 있다. 어떤 중대한 사건이나 사태가 
터지게 되면, 마치 그것이 모든 것이나 되듯이, 너나 할 것 없이 열심히 
떠들어대다가, 어느 한 순간 장면이 바뀌게 되면 그야말로 '내가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바뀌기 때문에. 쉽게 달아오르고 그만큼 또 빨리 잊어버린다. 


최근의 사태만 해도 그렇다. 지난해(1997년) 연말 IMF 사태라는 것이 터지자 우리 
사회의 내노라 지식인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초등학교 아동들까지 거의 온 국민이 
"IMF 운운" 하고 있다. 이제부터 '외환'문제나 '경제'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가져야 하겠다는 뼈아픈 반성과 야무진 다짐의 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아무튼 
이제 더 이상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는 없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전문가가 더 
필요하다. 지금까지 거의 까막눈 수준인 '경제 문제'에 대해, 너나 할 것 없이, 
새삼스럽고 어설프게 '공부'를 시작하는 것보다는, 역시 자신이 하는 분야에서 더 
열심히 해서 이른바 「국제경쟁력」을 키워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입장에서, 조금 심하게 말한다면, 우리 사회를 휘두르고 있는 정서는 
'불감증'과 '과민증'이라는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는지. 때로는 지나치게 
무디고, 그래서 갑작스레 당하고, 또 때로는 지나치게 반응하고, 그래서 (항상 
다른 무언가를) 놓치는 식의 양극단을 마치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한 것은 아닐는지. 


하긴 바로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것도 따라가기 힘든 판에, 지나간 일 혹은 앞으로 
올 일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겠느냐는 반론이 나올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정작 문제는, 그런 현상이 우리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해온 
'획일성'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강제되었건 
아니건 간에) 그만큼 '유행'이 심했다는 것. 그리고 아직도 우리는 지난날의 
관성(慣性)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양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그리고 '관용의 정신'을 제대로 가져보지 못한 사회의 비극을 온몸으로 
보여주고(혹은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보시다시피 이 글 제목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세계화'만 해도 그렇다. 곧 이어 
보겠지만, 그 말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해서는, 매스컴의 총아가 되었음은 
물론이고, 수많은 훌륭한 학자들이 나서서 그 말에 '심오한' 의미를 불어 넣어주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그 화려했던 자리를 신참(新參) IMF에 내주고, 
그저 조용히 한 켠으로 밀려나 있는 상황이라 한다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 


그런 까닭에, 이 시점에서 '세계화'를 말하는 것은, 철지난 유행을 뒤늦게서야 
따라가는 것처럼 보일 위험성(?)도 전혀 없지 않다. 다시 말해 수많은 '세계화' 
관련 문헌목록에 그저 한 줄 더 보태는 정도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것. 
그럼에도 굳이 이 글을 왜 쓰는가, 왜? 바로 그 점에 우리의 포인트가 있다. 
어쨌거나 '세계화'는, 그 의미를 어떻게 규정하건 간에, 이미 우리에게 어느 
정도는 기정 사실화되었다는 것, IMF사태를 통해 실감하고 있듯이 그것은 
'개방화'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형태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와중에서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다시 말해서 "나는 과연 
누구인가"하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들어야 하리라.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의 정체성(正體性, identity)과 주체성(主體性) 문제인 것이다. 


해서 이 글은 이른바 세계화 시대에 있어서 우리의,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주체성, 
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문제를 교육과 관련시켜 짚어보려는 작은 시도(斷想)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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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계화: '21세기의 『西遊見聞』'
 '세계화'라는 단어가 혹은 개념이 언제, 어떻게 우리 사회에 등장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원론적으로 그것은 
'세계(世界)'라는 단어와 '화(化)'라는 글자의 조합으로 되어 있는 만큼, 
한자문화권에서는 언제든지 조합 가능하다고 할 수 있겠다. 굳이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아주 오래 전에 그런 단어를 임의로 만들어 사용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허나 설령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에게는 그다지 의미 없는 먼 
옛날의 하나의 예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뒤에서 보듯이 그것은 말을 만드는 
방식으로서는 극히 어색한 조합이다! 

우리 사회에서 그 말이 일정한 '사회적 의미'를 가지고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동전을 새로 주조(鑄造)하듯이, 새로이 만들어진 조어(造語, 
coinage)에 속한다. '언제' 등장했는지 추적 가능하다. 세계화라는 말과 그 개념에 
대한 시니컬한, 다음의 논평이 상황을 충분히 짐작하게 해준다. "최근 
'세계화'라는 말이 대통령의 연설에서 국정의 방향으로 제시되어 정치구호화 
되었다. 그 영향으로 학계에서는 흡사 무슨 신탁(神託, oracle)을 해석하는 것처럼 
학자들이 총동원되는 희극이 전개되고 있다."(최정운 1995, 1) 


정말이지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한 편의 '희극'으로 시작되었다. 그 얼마 전에 
거의 비슷한 의미로 '국제화'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또 강조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대체 국제화와 세계화는 어떻게 다른가"라는 의문이 진지하게 제기되기도 
했다. 심지어 우스갯소리로 경상도 발음이 심한 대통령이 '세계와'라고 했는데, 
수행한 기자들이 그것을 '세계화'로 적어서 문제가 되었다는 얘기도 있었다. 
어쨌든 그런 농담 자체가 말의 탄생에 있어 그 당시 상황을 보충 설명해주는 
하나의 일화가 된다고 하겠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그런 희극이 되풀이되고 확대 재생산되면서, 또 거기에 
나름대로 의미가 부여되면서, 관객들은 점점 더 웃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희극이 희극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관객이 웃어주어야 한다. 관객들이 웃지 않는 
희극이란 전혀 무의미하다, 더 이상 희극일 수가 없는 것이다. 자연히 극의 성격은 
미묘하게 바뀌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당연한 것이지만, 말은 그 사회의 산물이다. 다시 말해 사회성을 지닌다는 것. 
우리 사회에서 한 가락씩 하는 학자들이, 세계화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또 
세계화시대의 다양한 측면들을 논의하게 되면서, 그리고 세계화를 주제로 한 
굵직굵직한 학술회의가 개최됨에 따라서, 우리는 점점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점이 중요하다. 그러다 어느 한 순간 아주 오래 전부터 사용해온 
용어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더 이상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는 것. 
세계화라는 용어는 마침내 우리의 언어세계에서 시민권을 얻게 된 것이다. 


사실 말을 만들어내는 미적인 감각이라는 차원에서 보자면, '세계화'라는 용어는 
어색한 조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세계'라는 단어는 "① 이 세상, 
② 우주, 천지, ③ 국토 전체, ④ 하나의 구획된 지역, ⑤ 불교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를 가리켜 世라 하고, 상하사방을 界라 한다, 즉 때와 장소 전체를 가리킨다. 
중생이 사는 산천국토, ⑥ 지구상에 있는 모든 국가, 萬國, ⑦ 같은 종류의 한 
무리, 또는 그 사회"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大漢和辭典』 제1권 
268∼269쪽 참조). 따라서 지구 전체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상당히 추상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에도 나타나고 있다. "그 친구는 우리와는 
'세계'가 달라", "세계관", "제3세계, 제4세계" 등등. 따라서 '하나의 독립된 
완결된 단위'라는 의미에, 동사(動詞)적인 의미를 불어넣으면서 형태상으로는 
명사를 만들어주는 '화'(化)라는 글자가 덧붙여지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그래서인지 많은 글들이 세계화 개념 자체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곤 했다. (아마 
가장 가까운 의미의 영어 단어를 들라면 역시 world가 해당될 것이다. 실제로 
world에는 ① 지구, ② 특정한 시대, 지역의 세계, ③ 인류, 인간, ④ 세상, 사회, 
풍습, ⑤ 인간의 집단으로서의 세계(예컨대 학계나 재계), ⑥ 자연계로서의 
kingdom, ⑦ 현세, 이 세상, ⑧ 천지, 우주, ⑨ (지구를 닮은) 천체 등등의 
복합적인 의미를 안고 있다. 그런 까닭에 world의 명사형 역시 없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세계화를 영어로 어떻게 표기할 것인가 하는 것. 이에 대해 
우리 발음을 그대로 옮겨 적은 'Segaehwa'를 쓰기도 하고, 또 영어로는 
globalization을 택하기도 했다. 일각에서 세계화는 globalization과는 다른 
개념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어쨌거나, 학술용어로서는 일단은 globalization으로 
정돈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되면서 종래의 국제화와 (그것의 영어식 
표현으로서의) internationalization과도 변별할 수 있게 되었다. '국제화에서 
세계화로'라는 설정 역시 가능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로서는 어쨌든 간에 우리가 세계화라는 개념을 스스로 
만들어냈다는 사실 그 자체에 주목했다(김석근, 1997). 지난날 우리 사회가 
'민중'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던 전례(前例)를 떠올리면서. 영어로 표현될 수 없는 
개념이건, 아니면 globalization이 가장 가깝건 간에,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globalization의 직접적인 번역어로 '세계화'를 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의 사회과학에서는 희귀한 예에 속한다.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개념들은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라기보다는 영어의 그것들을 번역한 것이 
아니던가. 그간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globalization을 우리말로 
옮기라고 한다면, 과연 몇 사람이나 '세계화'라 번역해낼 수 있을까. 누가 그런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지구화'라고 번역할 
것이다. 실제로 '지구화' 혹은 '지구화 시대'라고 쓰고 있는 사례도 눈에 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나로서는, 아무리 어색한 조합일지라도, 우리 스스로 
'세계화'라는 개념을 만들어냈으며, 또 그럴만한 정도가 되었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했다. 어쨌든 종래와는 달리 바야흐로 '전 세계' 자체를 사유(思惟)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이를 뒤집어 보면, 지금까지는 그러하지 
못했다는 것이 된다. 그럴 수 있는 정신적인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그러면 왜 
여유가 없었나? 개국, 식민지, 잠깐 동안의 해방공간, 이어 분단, 독재와 군부 
권위주의체제에 대한 저항, 경제성장, 그리고 민주화와 같은 거대한 국면과 
현안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감당하기 벅찬 것이었기에. 그 동안 우리는 주변을 
둘러볼 겨를도 없이 그저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왔던 것이다. 


그러다 이제 겨우 살만해서 조금 느긋하게 여유를 가져보려는 참에, 다시 말해 
우리 입장에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주체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뭔가 
해보려는 참에, 이미 앞에서 말한 것처럼, IMF사태라는 된서리를 맞았다. 상황은 
급격히 반전되어 오히려 지난날의 패턴 즉 '피동적' 혹은 '수동적' 입장에 다시금 
처하게 된 것이다. 지난 날 우리가 근대로 접어들 때(개화기), '개항' 내지 
'개국'으로 요약되던 시대와 별반 차이가 없는 그런 상황이 다시 찾아온 것이다. 
'개방화'라는 용어가 그것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굳이 말한다면 
개화기, 해방공간과 남북한체제 확립('제2의 개국')에 이은 '제3의 개국'이라고나 
할까. 

이 같은 상황의 급작스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사태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나의 기본적인 인식이다. 세계사적인 흐름에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느냐 아니면 피동적이고 수동적으로 대처하는가 하는 자세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의 변화가 현란하게 피어올랐던 세계화 논의의 
거품을 가라앉게 하는 측면도 없지 않았다. 부수적인 효과라고나 할까. 아무튼 
세계화를 단순한 삶의 지리적 공간의 확대, 국제화의 단순한 연장, 혹은 
세계자본주의체제의 공고화쯤으로 보는 소극적인 단계를 넘어서 보다 의미 있는 
개념화 작업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만큼 세련화 과정을 거친 것이다. 이미 
시사되었듯이, 그것은 근대 국민국가의 부국강병 추구를 핵심으로 하는 구한말 
개화기(19세기)의 국제화 개념과 구별될 수 있으며, 또 당연히 구별되어야 한다. 
그것은 국민국가(nation state) 형성이 기본적인 과제였다.(1) 이에 비해 다가오는 
21세기의 세계화는 '탈근대 복합국가의 복합적인 국가목표'를 추구하는 것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을 것이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19세기 말 유길준이 
『서유견문(西遊見聞)』을 썼던 것과 마찬가지로, 같은 맥락에서 오늘날의 우리는 
'21세기의 『西遊見聞』'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하영선, 1998). 

이 같은 설정은 단순히 현실 설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과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아는 바와 같이, 결과적으로 유길준의 모델은 
19세기라는 공간에서 현실화되지 못했다. 그러한 역사가 되풀이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우리로서는 모든 것이 급격하게 바뀌고 있는 문명의 
전환을 지켜보면서, 그것을 정확하게 읽어내고 또 거기에 대응하지 않으면 안된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문명의 국제정치학'적인 견지에서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세계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함의(含意)에 다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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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민족교육: 정체성과 주체성
 여기서 '민족(혹은 국민)'(nation), '교육' 그리고 두 단어의 합성어로서의 
'민족교육'에 대한 세밀한 개념정의에 대해 새삼스레 이것저것 늘어놓지 않으려 
한다. 혹 그같은 용어에 거부반응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국내보다는 
오히려 '해외에서의 한국인 교육'이라는 인상이 먼저 와 닿을는지도 
모르겠다(지난날 이런 측면이 농후했던 것도 사실이다). 허나 우리는, 앞에서 
말했듯이, 좋든 싫든 '개방'하지 않을 수 없으며, 자연히 우리는 '세계 속의 
한국'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민족교육이란 
세계화 시대에 있어서의 '우리 한국인의 정체성과 주체성' 교육 정도로 이해하면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원론적으로 말해서, 세계화가 근대 '국민국가'(nation state)라는 종래의 틀을 
넘어 사해동포주의(四海同胞主義)나 세계시민(世界市民) 같은 거대하고 낙관적인 
전망이 깃들 수 있는 여지를 완전히 배제해버리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우리는 
EU와 같은 지역단위체를 목도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변화는 아주 서서히 장기간에 
걸쳐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냉정하게 보자면, 그같은 이상주의는 당분간은 거의 
현실성 없는 몽상(夢想)처럼 여겨진다. 역시 현실적으로는 '자주적 세계화를 위한 
지구주의적 민족주의'를 목표로 설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하영선, 1998, 15쪽). 
그래서 민족과 민족주의는 여전히 의미를 갖는다. 게다가 국가간의 거리감이 
줄어들면서, 오히려 국적(國籍) 즉 '어느 나라 사람이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해지는 
측면도 없지 않다. 언제부턴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외국인들을 많이 접하게 
되면서 우리가 (특히 국내에서) 그들을 대하는 시선은 묘하게 이원화되어 있다. 
영미권이나 유럽권의 외국인을 대하는 시선과 3D업종을 마다하지 않는 
동남아시아인들을 보는 그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해서 세계화 추세는 한편으로 우리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필요성을 인지시켜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과 관련하여 약간의 우려를 떨쳐버릴 수 없게 만든다. 
우리의 아이덴티티가 정립되어 있지 않거나 미약할 경우, 심각한 사태가 초래될 수 
있는 가능성마저 없지 않다는 것. 세계화가 내실 없는 한갓 공허한 구호에 머물고, 
외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수(追隨)로 내달리게 될 때, 그 끝간 데 거기서 우리는 
자의식 없는 국제미아, 문화적 보헤미안으로 변해가고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측에도 허점은 있을 수 있다. 우리는 흔히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 하면서도, 정작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 
다잡아 물으면 말문이 막히기 쉽상이다. 더구나 우리의 실상을 들여다보게 되면 
'정체성과 주체성'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마저 없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한국적인 것은 이런 것이다, 한국인의 정체성은 이런 식으로 
확립되어야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처지도 못된다.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아니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모범답안을 
내놓자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서 주체적인 세계화를 이루어 가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과도 같다. 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자신의 경험과 입장을 토대로 삼아 
논의를 펼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다소 자의적이긴 하지만, 여기서는 
① 전반적인 교육으로서의 한국사와 한국사상 분야, ② 필자 역시 한 사람의 
구성원이기도 한 한국정치학계에서의 한국정치사, 한국정치사상 분야, ③ 그리고 
「문화적 유산으로서의 한자(漢字)」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하고자 한다. 


우선 전반적인 민족교육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역시 한국사와 한국사상사 
'교육'이라는 측면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자기 나라의 역사와 사상 그리고 문화에 
대한 애정과 그것을 감식할 수 있는 눈을 길러야 한다는 주장에는 누구나 
동의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상 그런 것이고, 실제로는 그런 것 같지 
않다. 영화 「서편제」니 '문화유산답사기'니 해서 관심이 높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중적인 '인기' 전선에서 그런 것일 뿐이다. 음악, 
미술, 건축, 공예, 문화재 등 눈과 귀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분야는 그래도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나, 아예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역사, 사상, 철학 분야는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안타깝게도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듯한 조짐마저 보인다. 

범위를 한국사 분야로 좁혀보게 되면, 어렵지 않게 '역사 문맹(文盲)이 늘고 
있다'는 지적을 들을 수 있다. 현재 우리의 중, 고등학교에서 국사가 독립된 
교과목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2000년부터 국사과목이 없어질 
운명에 처했다는 전언(傳言)은 차라리 서글프기조차 하다. 한국사는 사법시험 
과목(필수)에서도 사라졌으며, 심지어 대학의 교양과목에서조차 일시에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전국 4년제 대학의 중국문학 전공 교수가 385명, 독일문학 
전공교수는 353명인데 반해서, 한국사전공 교수는 280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 학계의 한국사 연구의 현주소와 그 위상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중앙일보』 '98년 4월 24일자). 심지어 우리 말과 글도 제대로 모르는 
유치원 아이들에게 '조기교육' 운운하며 영어과외부터 시키고 또 자기 나라 
역사에는 무관심하면서 열심히 토플과 토익 점수 올리기에 골몰하는 것을 
보노라면, 전혀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딘지 모르게 본말이 
전도되었다는 느낌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지난 시절을 돌이켜 보면, 한 때 '국적(國籍)있는 교육'이라는 구호와 더불어 
한국사 교육이 강화되고 국민윤리 과목이 개설 - 그 과목의 한 부분은 한국의 
전통사상에 할애되었다 - 되었던 적이 있다. 그 때 그들은 고시(考試)의 
필수과목으로 채택되기까지 했다. 허나 그 시대를 산 사람들에게 그들은 지극히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 같은 것을 느꼈다. 나만해도 
그랬지만, '교련'과 함께 제일 재미없는 과목, 그러나 졸업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학점을 따야만 하는 별 볼 일없는 필수과목일 뿐이었다. 아마 정통성 미약한 
정권이 약점을 커버하기 위해서 억지로 만들어낸 허울좋은 명분 - 실제로 그런 
측면도 없지 않아 있었을 것이다 - 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요즈음은, 다시 말해 군부통치에 종지부를 찍고서 '문민정부'에 이어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지금은, 한 번쯤은 그 '국적 있는 교육'과 한국사 교육의 
강화라는 정책이 가진 의미를 한 번쯤은 다시 음미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 그렇다고 해서 우리 사회 일각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회고(懷古)나 
복고(復古) 경향에 공감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국수주의적 발상과는 더욱 
거리가 멀다. 우리는 군부통치 그 자체에 대한 혐오감 때문에, 그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내세우는 것 그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간주해버렸던 것은 아닐는지. 
군부통치가 남긴 부정적인 유산은 당연히 청산되어야 하지만, '과거청산'이라는 
명분 아래 살려두어도 좋을 아니 당연히 살려두어야 할 그런 부분까지도 깡그리 
없애버린 것은 아닌지. 


다음으로 우리 학문의 한 분과로서의 '한국정치학' 분야로 눈을 돌려보기로 하자. 
정치학이 한국의 사회과학에서 가장 서구적인 것을 추구해온 분과 중의 하나라는 
데 큰 이견(異見)은 없을 것이다. 해방 이후 50년간의 한국정치학에서 가장 연구가 
뒤져 있는 분야가 한국정치사, 정치사상사라는 사실은 단순한 아이러니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진덕규, 1983; 김석근, 1996). 과연 그 분야에 우리가 자신 있게 
(영어로 번역해서) 세계에 내놓을 만한 연구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미 딴 자리에서 자세하게 논의한 바 있으므로(김석근, 1996),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말하기로 하자. 일생동안 그 분야를 연구해오신 한 원로 선생님께서 
언젠가 다음과 같이 탄식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아니, 세칭 일류대학의 
정치학과에, 그래 그 나라의 정치사, 정치사상사를 제대로 전공한 교수가 한 
사람도 없는 그런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어?" 그리고 내가 이번 학기(98년 1학기) 
한 대학 정외과에서 '한국정치사상사'를 강의하면서 받은 한 학생(4학년)의 
리포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전공으로 처음 들은 
'정치학개론' 수업에서는 그 어디에도 한국정치학자의 말은 들어 있지 않았으며, 
이후에 이어지는 정당론, 정치변동론, 고대정치사상, 근대정치사상 …… 등은 모두 
우리 것이 아닌 서구에서 수입되어온 것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사실에 
아무런 의의도 느끼지 못한 채 그냥 그것들을 이해하려고 바둥거렸으며 시험 
때마다 암기해야 했다. 그리고 3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처음 수강한 
'동양정치사상'이란 과목은 이전까지 대하던 것들과 사뭇 다른 것이었지만 (우리 
것임에 불구하고) 나에게 그저 외워야 할 한문이 많은 고리타분한 과목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이 우리의 현주소인 것이다. 


다행히도 최근 사정은 급속하게 달라지고 있다. 동양, 한국사상 전공자들과 서양 
전공자들이 한 데 어울려 논의하는 풍경, 역사와 정치학의 만남을 모색하는 그룹, 
『서유견문』과 『독립신문』 등을 통해 지난 상황을 추체험(追體驗)함과 동시에 
독자적인 사회과학의 뿌리를 내리려는 모습 등등. 그런 움직임 속에서, 나는 우리 
학문의 비전과 미래를 읽어내고 있다. (계간 『전통과현대』의 존재의의 또한 바로 
그 점에 있으리라). 다만 조금 더 바란다면, 그런 움직임이 뜻있는 몇몇 사람들의 
과외 활동에 머물 것이 아니라 캠퍼스내의 정식 커리큘럼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으면 한다는 것. 다시 말해 가능한 한 빨리 제도화 수준 역시 진전되어야 
하며, 그렇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굳건한 우리 학문의 구축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극히 '개인적인' 견해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문화적 유산으로서의 
'한자(漢字)' 문제에 대해 말하고 싶다. 지금은 다소 수그러졌지만,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에 힘입어 '유교자본주의' ,'유교문화권' 등의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어 
왔다. 그같은 논의에 대해, 일단 환영하면서도 내심으로 약간의 불만(?) 내지 우려 
같은 것도 없지는 않았다(김석근. 1995b). 지나치게 유교에 포커스를 맞춤으로써 
동아시아의 다양한 문화적 전통(토착민간신앙, 샤머니즘, 노장사상과 도교, 불교 
등)을 사상(捨象)시키거나 과소평가할 수 있는 위험을 수반하기 때문에. 우리는 
거의 습관적으로 유, 불, 도 삼교라 불러왔으며, 지금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 이에 
비해 그 후에 등장한 '한자문화권', '한자문명', '한자를 사용하는 민족' 등의 
개념에 대해서는 상당한 정도의 호감을 표시한 바 있다(김석근 1995a). 그래도 
어느 정도는 객관적인 문자를 기준으로 한 것이기에. 먼 옛날, 인도에서 불교가 
전해졌을 때 수많은 불교 경전이 '한문'으로 번역되었으며, 또 그것이 
'동아시아불교'의 근간을 이루었다는 사실은 조금만 주의하면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설령 한자를 읽는 방식은 나라마다 다를지라도 - 바로 이점이 '한자가 
과연 우리 것인가' 하는 의문에 대한 어느 정도의 답이 될 수 있다고 본다 - , 
그것이 싣고 있는 의미는 거의 다르지 않았다. 말은 통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지식인들 사이에 필담(筆談)이 가능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근대 이전의 유럽 
지식인들 역시 학문적 언어로서의 라틴어를 공유하지 않았던가. 


나의 입장을 밝히자면, 한글을 사랑하는 것과 한자를 읽고 쓰는 것은 서로 양립 
불가능한 제로섬게임(zero-sum game)은 아니라는 것, 오히려 그들은 
상호보완적이라 생각한다. 더구나 개화기 이전의 많은 자료들은 거의 대부분 
한문으로 쓰여져 있지 않은가. 학문의 연속성과 계승이라는 측면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적어도 내가 맡은 수업만큼은, 어떻게 해서든 『論語』, 
『大學』, 『道德經』 등을 읽어나가는 기회를 만들어보려고 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안타깝게도 '한문'(즉 문장)이 아니라 그 이전의 단계 다시 말해서 
'한자'가 문제였다. 나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해서 이번 학기는 아예 
과감하게 모험을 한 번 시도해보기로 했다. 


한 대학에서의 나의 동양정치사상 수업 첫 시간, 강의실에 들어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 번 씨익 웃고서는, 흑판에 휘갈기기 시작했다. '金樽美酒千人血, 
玉盤佳肴萬姓膏, 燭淚落時民淚落, 歌聲高處怨聲高'(금준미주천인혈 
옥반가효만성고, 촉루낙시민루락, 가성고처원성고: 금 술잔에 넘치는 좋은 술은 천 
사람의 선혈이오, 옥쟁반에 닮긴 맛있는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촛불의 
눈물(촛농)이 떨어질 때 백성들의 눈물이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드높더라!). 그리고는 한 사람씩 이름을 부르면서, 어디에 나오는지 물은 다음, 한 
번 읽고 해석해보라고 했다.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역시나'였다. '출전은 
『춘향전』, 작자는 이몽룡'이라는 답이 먼저 나왔고, 다시금 전체가 합심해서 
짜집기를 한 끝에 겨우 대략적인 의미에 가까이 갈 수 있었다. 


그 때 나는 대략 다음과 같은 말을 한 것 같다. "아마 한국 사람 치고 
『춘향전』을 모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거야. 그런데 우리 대학생들이, 
그것도 정외과 학생들이, 이 도령의 시(詩) 한 수를 놓고 이렇게 쩔쩔 매다니, 좀 
문제가 있는 것 아냐. 백년 전만 하더라도, 당시의 지식인 엘리트들은 당연히 
한문으로 글을 썼지. 그런데 그 후예인 우리가 그걸 읽지 못한다니, 이런 난센스가 
또 어디 있을까?" 심지어 자기 부모님 함자, 자신이 다니는 학교 이름도 한자로 못 
읽고 쓰는 상황을 지적할 때는, 그들도 수긍하노라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들 
역시 언론매체의 보도를 통해서 알고 있노라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베트남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베트남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한자문화권에 속했으며, 실록과 같은 옛 공식 자료는 모두 '한자'로 쓰여졌다는 
것. 중국, 한국과 마찬가지로 엘리트 충원의 주된 통로가 과거제였으며 - 이 
점에서 같은 한자문화권에 속하면서도 일본은 달랐다 -, 그것은 1918년까지 
존속했다는 것. 우리는 1894년 갑오경장 때 폐지되었으니, 지구상에서 가장 
늦게까지 존재했던 셈이다. 그런데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게 되면서, 그들이 
안겨둔 알파벳화된 문자(국어)를 쓰게 되었으며, 그로부터 80여 년이 지난 오늘날 
문자해득률이 거의 90%에 달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자를 아는 사람은 0.01%도 채 
안된다는 놀라운 사실 등등. 


다행히도 그들은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나로서는 신이 났다. 그래서 지난해 여름 
베트남 갔던 얘기 보따리마저 풀어놓았다. (그 여행에 대해서는 계간 『전통과 
현대』 97년 가을호에 실린 이한우 기자의 「대우 세계경영의 현장을 가다」를 볼 
것). 베트남에 가서 한자를 찾아보기 위해 무척 애를 썼는데, 딱 두 군데서 볼 수 
있었다, 하나는 사원(寺院), 다른 하나는 장의사(葬儀社)! 만난 베트남 사람들에게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모두들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밤 
가볍게 한 잔 하러 간 술집에서 경험한 사례: 내 옆에 앉아있던 아가씨가 
자기소개를 하면서 - 학생들은 이 부분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시했다! -, "My name 
is Hwa. Its meaning is flower" 하기에, 나는 아름다운 여인의 속치마에 난초를 
쳐주었던 옛 선비의 은근한 풍류를 떠올리면서, 그녀 손바닥에 왕희지(王羲之)체로 
꽃 화(花)자를 써주었다, 허나 안타깝게도, 대학까지 나왔다는 그녀는 그것이 자기 
이름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더라는 것 등등. 


"물론 우리 사회는 아직 베트남 정도는 아니지, 그러나 이대로 몇 십 년 간다면 
어떻게 될까. 조금 심하게 말하면, 거의 비슷해지지 않을까. 난 정말 걱정스러워. 
그래서 말인데, 이번 학기 '동양정치사상' 수업 시간은 두 파트로 나눠서 말야, 
제1부는 내가 강의를 하고, 제2부는 여러분들의 상식과 한자 실력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千字文』을 같이 공부할 생각이야. 여러분 의견은 어때?" 
열심히 듣고 있던 학생들이 갑자기 『천자문』 소리를 듣자, 여기저기서 약간은 
묘한 웃음을 터뜨렸다. 아마 대학 강의, 그것도 정치사상 강의에서 
『천자문』이라는 아주 초보적인 책을 하겠다는데 대한 의외성 때문이었으리라. 
"아니, 여러분, 『천자문』을 아주 우습게 아는 모양인데. 여러분 중에 『천자문』 
배워본 사람, 그리고 외울 수 있는 사람 손 한 번 들어봐." 나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여러분도 아다시피 『천자문』은 옛 사람들이 제일 먼저 공부했던 
책이지. 그런데 그것을 단순하게 한자 일 천자를 하나하나 모아놓은 것쯤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구. 네 글자씩 해서 한 구(句)를 이루고, 그런 구가 250개가 
되고, 그래서 일종의 이어지는 문장처럼 되어 있어. 내가 보기에는, 그런 방식을 
통해서, 그것이 만들어질 당시의 소박하나마 철학이나 세계관 같은 것을 나름대로 
담고 있다구. 마치 오늘날 초등학교 교과서를 한 번 생각해봐. 먼 훗날 우리 
자손들이 그것을 잘 분석해보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이념이나 철학 같은 것을 
찾아낼 수 있지 않겠어. 그와 거의 다를 바 없다구." 이어 『천자문』이 영어, 
독일어, 불어, 이탈리아어, 라틴어, 몽고어 등으로 번역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에 얽힌 일화(逸話)를 몇 가지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나는 말야, 이 나이(?)에도 『천자문』을 하루에 한 번씩은 
왼다구." 마침내 교실은 조용해졌다. 


"그럼 불만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다음 시간부터 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어떤 책, 어떤 판본이라도 관계없으니, 하여튼 『천자문』을 
구해오도록." 그러자 저쪽에 있던 한 녀석이 "저어, 선생님" 하면서 번쩍 손을 
들었다. 동료들과 나의 의아해하는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큰 소리로 그는 
말했다, "그런데, 저어, 선생님, 제가 노트에 써오면 안됩니까?" 즉각적으로 
그에게 날아든 것은 '우우'하는 다른 학생들의 가벼운 야유(?)였다. 허나 내게는 
정말 신선했다. "어, 그래. 그런 방법도 있구만, 그 짜식 거참 맘에 드는데." 


그리하여 수업은 옛날의 서당(書堂) 기분을 내가면서 흥미롭게 진행되고 있다. 
사족(蛇足)을 하나 덧붙이자면, 그들이 나의 강의보다는 『千字文』 시간을 더 
재미있어 하고 또 수업태도도 더 진지하다는 사실에 대해서 서운해해야 할지 
아니면 고마워해야 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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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궁즉변, 변즉통(窮則變, 變則通)"
 당연한 것이지만, 앞 절에서 말한 것들은 극히 개인적인 관심사와 관련된 것일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쨌든 우리 교육의 일 부분을 이루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교육 분야에 눈을 돌리자면, 어찌 그것뿐이겠는가. 필시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으리라. 문외한(門外漢)이 보기에도 공교육을 유명무실화시키고 있는 
사교육, 거의 천문학적인 숫자에 달하는 과외비, 마치 첩보영화를 보는 듯한 비밀 
고액과외, 언제 어디서나 시험에 유용한 지식을 단기간에 전수해주는 '화끈한 
싸부님들', 그런 싸부님의 수제자들답게 오로지 점수밖에 믿지 않는 학생들, 그 
점수 높은 학생들을 독점(혹은 과점)하기 위해 벌이는 일부 대학의 눈치싸움, 
학부제를 둘러싼 갈등과 거기서 빚어지는 시행착오, 교수 채용에 얽힌 어두운 
이야기들 …… 등등. 


나는 학교라는 틀 내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이 교육의 전부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아이들을 키워보면 알지만, 그들은 가르치는 것 - 그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 외에도 많은 것을 보고 배운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그들 경험세계의 
주요 핵심을 이루게 된다. 감수성 예민한 그들에게 모든 것을 제쳐두고서 '일류대 
진학'을 지상목표로 강요하는 한, 그리고 그 사회의 메커니즘이 실력과 정당한 
경쟁보다는 학연·지연·인맥 등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한,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실천(praxis)해 가는 창조적인 인재 배출이라는 교육 원래의 목표에서 점점 
더 멀어져갈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이른바 '정치권'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 어떤 형태로건, 
하나의 생생한 사례가 된다고 생각한다. 정말이지 가관(可觀)아닌가. 정치란 원래 
그런 것이라 아무리 양보하더라도 너무 심하지 않은가. 이념도 없고, 명분도 없고, 
논리도 없고, 지조도 없다. 그저 번득이는 욕망과 동물적인 수준의 승부욕 뿐이다. 
일생동안 쌓아온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아침에 뒤집어버리는 걸 보면, 뭐라 
할 말이 없다. 어떤 자리나 달콤한 권력을 향해서, 마치 불을 향해 정신없이 
날아드는 불나비와 다를 게 뭐가 있을까. 그러고도 아무렇지도 않다니, 나는 정작 
그게 더 심각한 문제라고, 그리고 어떻든지 그것이 우리의 현 수준이라 생각한다. 
이런 판국이다 보니 심지어 권력과 무관한 세계(예컨대 학문 등)에서조차도, 그 
자체의 논리보다는 (사람들 사이의) 힘의 논리가 더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들은 부끄러운 줄 모르고 유치찬란한 모습을 연출해 보이면서, 젊은 
세대들에게는 뭘 배우라고 할 것인가. 또 과연 뭘 배울 수 있을까. 기껏해야 
출세지향주의 혹은 살아남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기회주의 아니면 잘해야 
'저래서는 안된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그런 탓에, 나는 정규 교육과 입시제도 개선 같은 측면도 중요하지만, 보다 
바람직한 교육을 위해서는 우리 사회체제가, 그리고 우리의 의식구조가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고 단언한다. 교육 환경과 사람들의 생각이 근원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 능동적으로 그리고 주체적으로 바꾸어 가야 
한다는 것. 바야흐로 원대한 구상과 깊이를 지닌 위대한 철학이, 사상이 그 모습을 
드러낼 때가 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 그저 눈가림만 하고 있거나 이리저리 
미봉(彌封)만 하고 있을 때, 지난 '19세기의 비극'의 망령이 되살아오지 않을 
것이라, 누가 감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으랴. 


"극에 달하면 변하라, 그러면 통할 것이다!(窮則變, 變則通)" 그렇다, 이제 우리는 
주체적으로 변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세계화 내지 개방화 추세가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강력한 메시지는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1998. 5. 5.)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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