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angulKorean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요키에로타) 날 짜 (Date): 1998년 11월 2일 월요일 오후 11시 30분 59초 제 목(Title): 고종석/국어의 풍경들 8 [고종석에세이] 국어의 풍경들 8 ▶프린트 하시려면 한국어 어휘의 세 층위 우리말의 어휘는 그 기원에 따라 크게 세 층으로 나뉜다. 가장 아래에 있는 층이 고유어이고, 그 위를 한자어가 덮고 있고, 맨 위에 외래어가 얹혀 있다. 그 세 개의 층은 우리 말의 어휘를 이루는 낱말들의 기원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그 낱말들이 우리 말에 흡수된 시간적 순서에 얼추 대응하기도 한다. `토박이말'이라고도 하는 고유어는, 말 그대로, 바깥에서 들어온 말이 아닌 한국어 고유의 말이다. 하늘, 땅, 아들, 딸, 사람, 나라 따위의 낱말들이 고유어다. 고유어 가운데는 기초 어휘에 속하는 말들이 많고, 또 이 말들은 한자어나 외래어에 견주어 일반적으로 정서적 호소력이 크다. 그러나 고유어의 범위를 엄밀하게 확정하기는 힘들다. 한국어의 역사적 연구가 크게 진전하지 않은 터여서 낱말의 기원이 모호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고유어는 한자어와 (서양) 외래어를 뺀 나머지 어휘 전체를 지칭한다. 즉 한자로 표기할 수 없는 말 가운데 분명한 외래어가 아닌 말들은 흔히 고유어로 간주된다. 이렇게 느슨하게 정의된 고유어는 실상 많은 차용어들을 포함하고 있다. 예컨대 우리 공군의 상징이기도 한 `보라매'의 `보라'는 몽골어에서 차용된 것이고, 살쾡이 비슷한 고양이과의 짐승인 `스라소니'는 여진어에서 차용된 것이다. 이보다 더 흔한 것은 본디 한자어였던 것이 형태가 일그러져 한자 표기가 불가능하게 된 낱말들이다. 벼락, 서랍, 썰매, 숭늉, 철쭉, 과녁, 대추, 마고자, 봉숭아, 사글세, 우엉, 방죽, 도둑, 광 같은 낱말들은 일반적으로 고유어로 간주되지만, 실상 이 단어들은 벽력(霹靂), 설합(舌盒), 설마(雪馬), 숙냉(熟冷), 관혁(貫革), 대조(大棗), 봉선화(鳳仙花), 삭월세(朔月貰), 우방(牛蒡), 방축(防築), 도적(盜賊), 고방(庫房) 같은 한자어들이 민중의 입에서 입으로 옮겨다니다가 그 형태가 일그러진 것이다. 이런 유형의 낱말들 가운데는 `괴악(怪惡)하다'에서 온 `고약하다', `매상(每常)'에서 온 `마냥', `산행(山行)'에서 온 `사냥', `석류황(石硫黃)'에서 온 `성냥', `순라(巡邏)'에서 온 `술래', `염치(廉恥)'에서 온 `얌체', `중생(衆生)'에서 온 `짐승', `차양(遮陽)'에서 온 `챙', `가가(假家)'에서 온 `가게', `간난(艱難)'에서 온 `가난', `귀향(歸鄕)'에서 온 `귀양', `자미(滋味)'에서 온 `재미'처럼 그 형태만이 아니라 의미가 다소 달라진 것들도 있다. 한국어 어휘의 두번째 층인 한자어는 한자로 표기될 수 있는 말이다. 한자어들도 본질적으로는 외래어지만, 차용의 역사가 오래돼 우리말에 동화된 정도가 유럽어계 외래어들보다 사뭇 크다. 이 한자어 층에는 신체(身體), 부모(父母), 처자(妻子), 천지(天地), 풍속(風俗), 풍년(豊年) 처럼 한자를 매개로 중국어에서 차용한 말들 이외에, 철학(哲學), 물질(物質), 세포(細胞), 분자(分子), 원자(原子), 중공업(重工業) 처럼 19세기 말 이래 한자를 매개로 일본어에서 수입된 수많은 `문화 어휘'가 포함되고, 또 식구(食口), 권솔(眷率), 어중간(於中間), 양반(兩班), 전답(田畓), 대지(垈地) 처럼 한국에서 만들어진 한자어들도 포함된다. 한자어의 마지막 유형인 이 한국제(韓國製) 한자어는 때로 한국제 한자를 포함하기도 하는데, 예컨대 `논'을 뜻하는 畓(답)이나 `집터'를 뜻하는 垈(대)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한자다. 또 일본어에서 건너온 한자어 가운데는 정작 일본어에서는 한자어가 아닌데 그것이 한자를 매개로 우리말에 차용돼 한국어에서 한자어가 된 것도 있다. 즉 일본어에서는 훈독을 하지만, 한국어에 수입돼 음독을 하게 된 단어의 경우다. 일본어 `구미아이'에서 온 조합(組合), `하가키'에서 온 엽서(葉書), `와리비키'에서 온 할인(割引), `사키바라이'에서 온 선불(先拂) 따위의 말들이 그렇다. 이런 세 가지 유형의 한자어들은 우리말 어휘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한자어 층 바깥을 감싸고 있는 것은 (유럽계) 외래어다. `잉크', `펜', `렌즈', `커피' 처럼 영어에서 온 외래어가 가장 많지만, 포르투갈어에서 온 `빵', 독일어에서 온 `아르바이트', 프랑스어에서 온 `레스토랑' 등 원래의 국적은 다양하다. 이 외래어의 상당수는 일본어를 통해서 수입된 것이다. `텔레비전'을 `테레비'라고 줄여 말한다거나 `아파트먼트 하우스'를 `아파트'라고 줄여 말하는 것은, 이 영어 단어들이 한국어로 넘어오면서 일본에 기착한 흔적이다. 이렇게 고유어, 한자어, 외래어는 세 층을 이루며, 또는 동심원을 이루며 한국어를 만들고 있다. 에세이스트 ♠위로 기사제보·문의·의견 opinion@mail.hani.co.kr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