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angulKorean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요키에로타) 날 짜 (Date): 1998년 10월 27일 화요일 오전 10시 57분 40초 제 목(Title): 고종석/국어의 풍경들 7. 1번부터 6번까지는 역사보드에 있어요. 이 시리즈는 이 보드에 앞으로 퍼오겠습니다. [고종석에세이] 국어의 풍경들 7 ▶프린트 하시려면 누구나 이런 수수께끼 문제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남자에게는 있고 여자에게는 없는 것, 그러나 엄마에게는 있고 아빠에게는 없는 것. 진지한 독자라면 이 수수께끼를 듣자마자 `범주'니 `집합'이니 하는 골치아픈 개념들에 대해 잠시 생각한 뒤,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단 말이냐”고 핀잔을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수께끼는 수수께끼에 불과하다. 이 수수께끼를 푸는 데에 필요한 건 건전한 상식이 아니다. 이 수수께끼의 답은 `ㅁ 받침'이다. `엄마'와 `남자'에는 우리가 보는 대로 `ㅁ 받침' 이 있다. 그러나 `여자'와 `아빠'에는 우리가 보는 대로 `ㅁ 받침'이 없다. 이 `ㅁ 받침'의 유무가 엄마와 남자를 한편으로 묶고, 아빠와 여자를 다른 편으로 묶는다. 이와 비슷한 유형의 수수께끼는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하늘과 땅 사이에는 뭐가 있을까? 그 답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과'다. 한나라당과 국민회의 사이에 있는 것도 증오나 경쟁이 아니라 `과'다. 또 이런 수수께끼는 어떨까? 오스트리아,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마케도니아, 아르헨티나, 리투아니아, 룩셈부르크, 슬로바키아, 이 여덟 나라의 공통점은? 아무리 심오한 지리학 지식도 이 수수께끼를 푸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수수께끼는 외국 사정에 대한 지식을 재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니 말이다. 답은 이들 나라의 이름이 모두 다섯 음절(글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 수수께끼들의 공통점은 질문의 핵심 단어들이 어떤 개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기호로서의 자기자신을, 곧 말 자체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엄마와 남자에게는 있지만 여자와 아빠에게는 없는 것”이라는 수수께끼에서 엄마, 아빠, 여자, 남자가 가리키는 것은 어떤 속성을 지닌 대상들의 집합이 아니라, 자기자신 곧 `엄마' `아빠' `여자' `남자' 라는 말 자체다. 여덟 나라의 공통점을 묻는 수수께끼에서도 마찬가지다. 오스트리아가 가리키는 것은 중부 유럽에 자리잡은, 이런저런 특성을 지닌 나라가 아니라 자기자신 곧 `오스트리아'라는 말 자체다. 언어학자들은 단어가 이런 식으로 쓰일 때, 곧 단어가 언어기호로서의 자기자신을 가리킬 때, “`자기지시적'으로 사용되었다”고 말한다. 자기지시적으로 사용된 낱말은 어떤 개념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언급의 대상일 뿐이다. “전원주가 김창숙보다 훨씬 더 예쁜걸!”이라는 말도 자기지시의 세계에서는 전혀 엉뚱하지 않다. `전원주'라는 이름이 `김창숙'이라는 이름보다 훨씬 더 예쁘다는 뜻이므로. 나는 첫 번째 수수께끼를 낼 때 독자들에게 정직하지 못했다. 세심한 독자라면 내가 수수께끼를 낼 때는 “남자`에게'는 있는 것”이라고 말했고, 그 답을 해설하면서는 “`남자'에 는 `ㅁ 받침'이 있다”고 말했다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한쪽은 `에게'고 다른쪽은 `에'다. 현대 한국어에서 조사 `에게'는 짐승이나 사람에게 쓰인다. 관념이나 식물이나 무생물에 `에게'와 똑같은 기능으로 쓰이는 조사는 `에'다(나는 벌써 위 문장에서도 사람`에게'와 무생물`에'를 구별해서 썼다). 사람이나 짐승을 가리키는 명사를 유정명사(有情名詞)라고 하고, 식물이나 무생물을 가리키는 명사를 무정명사(無情名詞)라고 한다. 유정명사 뒤의 `에게'가 무정명사 뒤에서 `에'로 되는 현상은 `에게'의 여러 기능에 두루 일관되고 있다. 예컨대 <1> 행동이 미치는 상대편을 나타낼 경우: 경숙`에게' 물을 주다; 소`에게' 물을 주다; 꽃`에' 물을 주다 <2> 행동을 일으키게 한 대상임을 나타내는 경우: 드라큘라`에게' 물리다; 호랑이`에게' 물리다; 호랑이 이빨`에' 물리다 <3> 딸린 대상을 나타내는 경우: 사람`에게'는 두 팔이 있다; 호랑이`에게'는 네 발이 있다; 장미`에'는 가시가 있다. 그러니, 내가 문제를 낼 때 남자`에게는'이라고 말한 것은 겉보기엔 문법적으로 정확했지만(보통의 문맥에서라면 `남자'는 유정명사이므로), 내심 정직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정직했다면 문제를 낼 때도 남자`에는'이라고 말해야 했을 것이다. 내가 사용한 `남자'는 자기지시적이었고(즉 `남자'라는 말 자체를 가리켰고), 따라서 그것은 유정명사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내가 만일 수수께끼를 낼 때도 정직하게 남자`에는'이라고 말했다면, 민감한 독자들은 내 말투가 어딘지 이상하다는 걸 느꼈을 것이고, 이내 내가 말하는 `남자'가 특정한 부류의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님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독자들이 그걸 미리 눈치챌까봐 자기지시적인(곧 무생물적인) `남자'에 짐짓 생명을 불어넣어, 곧 의인화해서, 남자`에게는'이라고 말한 것이다. 에세이스트 ♠위로 기사제보·문의·의견 opinion@mail.hani.co.kr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