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gul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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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ngulKorean ] in KIDS
글 쓴 이(By): sjyoun (예리큰아빠)
날 짜 (Date): 1998년 7월 23일 목요일 오후 01시 48분 54초
제 목(Title): 신동아]옥의 티, 말의 티 



                   작가 李潤基의 문화칼럼 ⑮

                       옥의 티, 말의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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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데뽀」와 「테레비」

   방송 출연하러 방송국 들어가다가 로비에서 기가 팍 꺾이고
   말았다. 「효과」를 「효꽈」로 발음하지 말 것, 「실질」을
   「실찔」로 발음하지 말 것. 「성과」를 「성꽈」로 발음하지
   말 것 따위의 주의 사항이 적힌 팻말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직원들 겨냥하고 걸어놓은 팻말인 듯했지만, 출연자 자격으로
   들어가는 나로서는 주눅이 드는 주의 사항이 아닐 수 없었다. 
   가만히 「효과」 「실질」 「성과」를 발음해 보았다. 
   정확하게 「효꽈」 「실찔」 「성꽈」가 되었다. 나보고 하는
   소리 같았다. 

   우리말 중에는 내가 정확하게 발음하지 못하는 단어가 많다.
   내가 경상도 출신이어서 그렇다. 흔히들, 영어 단어
   발음하다가 실수하면 부끄러워하면서도 우리말 단어
   발음하다가는 실수해도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고들 하는데, 
   들을 때마다 나보고 하는 소리 같다. 내가 「대구」라고
   말하면 서울 사람들 귀에는 「데구」라고 들린다고 한다. 서울
   사람들이 「대구」 「대전」 하는 소리가 내 귀에는 「다구」,
   「다전」으로 들린다. 경상도 중에서도 남부 사람들이
   발음하는 「생활」이 내 귀에는 「쎄할」로 들린다. 광주
   광역시 사람들이 발음하는 「광주」가 내 귀에는 때로
   「가앙주」로 들린다. 부산 지역 사람들은 「방법」보다는
   「방뻐」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우리말에서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상용어가
   영어니까 영어 사용권이면 어느 나라든 발음이 같은 것 같지만
   아니다, 천차만별이다. 「물」을 뜻하는 「워터」를
   미국인들은 「워러」라고 발음한다. 하지만 영국인들 발음을
   가만히 들어 보면 「오우타」에 매우 가깝다.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은 「맥주」를 뜻하는 「비어」 「아기」를 뜻하는
   「베이비」를 「비이야」 「바이비」에 매우 가깝게 발음한다.
   미국내에서도 지방에 따라 발음이 조금씩 달라서 북부에서는
   「베이비」 「버스」라고 하지만 남부 텍사스 사람들은
   「바이비」 「부스」에 가깝게 들리게 발음한다. 나는 미국의
   남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입 속에다 사탕을 한 알 넣고
   말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고는 한다. 그래서 사탕을 넣고
   있지 않다면 남부 사람일 것이라고 단정하고는 한다.

   그러므로 내가 말의 티로 시비하는 것은 특정한 단어의 발음이
   아니다. 발음에 관한 한 내게는 시비할 자격이 도무지 없다.
   문제는 단어 자체다. 그런 단어를 쓴 사람의, 그 단어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이다. 잘못 쓴 단어 하나는 잘못 끼워넣은 4분
   음표 하나와 같다. 잘못 쓴 4분음표 하나가 교향곡 전곡을
   타락시킬 수 있듯이 잘못 쓴 단어 하나가 모처럼 날잡아 하는
   말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글본새
   말본새에 까다롭게 구는 것을 늘 미안해 하면서도 나는
   적절하지 못한 표현이 나오면 책을 덮어 버리고 출연자가
   부적절한 말을 쓰면 채널을 돌려 버린다.

   『그 사람 「무데뽀」야』

   텔리비전에서 이런 대사를 들은 적이 있다. 만화에는 자주
   등장하고 신세대 소설가들의 소설에도 더러 등장한다.
   우리말이 아니라 일본어라고 하면, 그래요? 몰랐어요, 하는
   신세대들이 꽤 있는 것을 보았다. 「무데뽀」는
   「막무가내」를 뜻하는 일본어다. 한자 빌려 쓸 때는
   「무철포(無鐵砲)」라고 쓰기도 한다. 이런 말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것은 오래 써 버릇해서 말의 결이나 맛이 우리
   정서에 상당히 가까이 접근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곧 수술 들어갈 테니까 「단도리」해』

   중년층에서 잘 쓰는 말 중에 「단도리(段取)」가 있다. 「일을
   진행시키는 순서나 방도, 절차」를 뜻하는 일본말이다. 가령
   「결혼 단도리」라고 하면 「결혼 절차」를 뜻하는 말이 된다.
   하지만 우리에 섞여 쓰일 때는 「단단히 준비하는 일」 정도의
   뜻을 지니게 된다.

   『엄마, 커피 끓여서 「마호병」에 담아주세요』

   「마호병」은 「마법병(魔法甁)」을 뜻하는 일본어다.
   일본어인 줄 모르고 쓰는 사람이 많은 것을 확인했다.

   가깝게는 6월13일 마침에 방송된 「행복찾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나래비」로 서 있네......』
   리포터로 등장한 탤런트의 발본새다. 「나라비」는 「주욱
   늘어선 줄」을 뜻하는 일본어, 「줄서다」를 뜻하는
   「나라부」의 명사형이다. 우리말 「나란히」와 비슷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자주 쓰는 말 중의 하나다.

   『「소라」 색 갑사 치마, 열 닷 새 무명 속곳 위에 차악 바쳐
   입고…』

   정경이 눈에 잡힐 듯하지만 「소라 색」은 하늘을 뜻하는
   「소라(空)」이니 「하늘색」이라고 하면 좀 좋을까.

   얼마 전 한 탤런트가 텔레비전에 나와 당시의 대통령 당선자의
   「감색 양복」을 「곤색 양복」라고 했다가 언론의 말
   몽둥이에 조리돌림 비슷한 것을 당한 일이 있다. 그
   탤런트에게 허물이 없지 않으나 결국은 말 다루고 글 다루는
   사람들 잘못이다. 하지만 이런 말 쓰임새에 관한 한 이와 전혀
   다른 측면이 있다. 3,4년 전 한 평론가가 수필에서, 학자가
   어떻게 글에다 일본인들이 조어한 「테레비」 같은 말을
   당당하게 쓸 수 있느냐면서 도올 김용옥 박사를 「깐」 일이
   있다. 이것은 아니다. 알고 쓰는 것과 모르고 쓰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도올이 「테레비」가 일본인들이 조어한 말인
   줄을 모르고 썼을 리 없다. 그러므로 그의 글을 읽을 때는 그
   「테레비」라는 단어에 묻어 있는 말의 껍진껍진한
   땟자국까지도 함께 읽어야 한다.

   도올은 「테레비」 「무데뽀」 같은 일본식 조어나 일본어는
   물론 「쪼잔하다」 「씹히다」 「디립다 까다」 「좆대가리」
   「씹대가리」 따위의 비어, 속어를 쓰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와 이것을 시비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그가 쓰는
   언어는, 써도 되느냐, 써서는 안 되느냐는 시비 너머, 그
   시비를 끌어안고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의미 공간에
   존재하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 「빵꾸」와 「만땅」

   「히로뽕」이 「필로폰」의 일본식 발음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일반인은 물론이고 일부
   신문까지도 아직 「히로뽕」이라고 쓴다. 신문이 몰라서
   「히로뽕」이라고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째서 이렇게
   줄기차게 쓰이는 것일까?

   언어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있는 사람 치고 「빵꾸」가
   일본식 조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어로
   제대로 쓰자면 「펑쳐(puncture)」가 되어야 한다는 것도
   웬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런데도 이 말은 「히로뽕」처럼
   좀체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터진 튜브 손보기」라는 뜻을
   지닌 「빵꾸 나오시」라는 일본어도 여전히 쓰이고 있다. 많은
   운전자들은 「휘발유를 연료 탱크에 가득 채워 주세요」라는
   말 대신에 「만땅」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 자동차를
   급유기 앞에서 세우고 있는 사람에게는 「꽉 채워 주세요」도
   너무 길다. 미국인들도 「필허업(Fill her up)」이라고
   짤막하게 말하는데 「만땅」은 이보다도 더 짧고 명료하다.

   말 다루고 글 다루는 사람이 노력하지 않으면, 「히로뽕」,
   「빵꾸」, 「만땅」 같은 말들은 좀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필로폰」은 「히로뽕」이라고 불리면서 속된
   말로 「홍콩가게 하는 약」, 「뿅, 가게 하는 약」이라는
   자조적인 의미 공간을 확보한다. 이 자조적인 의미 공간을
   하루 아침에 북북 문질러 닦아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빵꾸」라는 말은, 타이어가 터지는 순간에 나는
   소리까지 아우르고 있다. 「만땅」은 「찰 만(滿)」 자와 연료
   탱크를 뜻하는 것으로 보이는 「땅」을 간단하게 아우르고

   지금은 별로 안 쓰이지만 한동안 「아주 좋은 것」이라는
   뜻으로 「대낄」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일본어에서 이
   말의 뿌리를 캐어보려던 나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말과 관련된, 특별한 추억이 하나 있다.

   60년대 초 중학교 3학년 교과서에는 『홍길동전』의 일부가
   실려 있었다. 제세히 기억할 수는 없어도, 「길동이 천문을
   보니 운수가 대길(大吉)하여…」 이런 대목이 있지 않았나
   싶다. 말장난 좋아하던 우리 반 악동들은, 좋은 것을 볼
   때마다 「야, 대길이다!」 하고 탄성을 지르고는 했다. 우리는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줄기차게 그 말을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남들은 인정해주지 않지만, 당시의
   급우들과 나는 「대낄」이라는 말은 우리가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만일에 우리가 이 말을 전파시킨 것이라면,
   우리말에 더없이 큰 허물을 지은 셈이 된다.

   이런 말은 곧 사라졌으면 좋겠지만 사라지게 하려는 끈질긴
   노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좀체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질 때가
   되어도, 오래오래 뒤에서 자조적인 울림을 지어내면서 떠
   다니는 것이 바로 이런 말이다. 소설가 이문열은 올해 만 쉰
   살이니까, 그가 군복무할 때는 60년대 말과 70년대 초 그
   어름일 것이다. 그런데도 그의 소설을 읽으면
   「군다이(軍隊)와 요료(要領)」라는 자조적인 일본어 표현이
   인용문에 등장한다. 군대살이는 요령껏 해야 한다는 뜻일
   터이다. 90년대의 군인들도 여전히 때로는 「곤조(根性)」도
   부리고, 「쇼부(勝負)」도 칠 때는 친단다. 남대문 시장에서는
   군용 「반합(飯哈)」이 아직까지도 「항고」라고 불린다. 반합
   뚜껑은 「항고 따까리」다.

                 ● 「빠소꽁」과 「헤아누도」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일본인들은 「개인 컴퓨터」를 뜻하는
   「퍼스널 컴퓨터」를 「파소콩」, 「문서 작성기」를 뜻하는
   「워드 프로세서」를 「와프로」라고 부른다. 「하부 구조」를
   뜻하는 「인프라스트럭쳐」를 「인프라」라고 맨 먼저 줄여
   부른 사람들도 일본인들이다. 「음모(陰毛)가 나오는 누드」를
   일본인들은 「헤아누도」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누드의
   천국 일본에서도 음모가 나오는 누드 사진은 규제를 받는다.

   일본인들, 특히 일본 언론인들이 급조해서 쓰는 이런 일본어
   조어에 대한 나의 인상은 부정적이었다. 무원칙하고 무정견해
   보였기 때문이다. 경망스럽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일본인들이 왜 그렇게 조어했는지 그 까닭은 어렴풋이
   짐작한다.

   지금 외국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엄청나게 많은 말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연전에도 바로 이 칼럼에서 걱정한 적이 있지만,
   이렇게 쏟아져 들어오는 말 대신에 쓰일 우리말의 대체 명사를
   개발하지 않으면 21세기의 우리 명사 사전은 쑥대밭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앤서링 머신(answering machine)」은 「전화
   자동 응답기」 「오토 텔러(auto-teller」는 「현금 자동
   지급기」, 「디쉬 워셔(dish washer)」는 「식기 세척기」,
   「리모콘(remote controller)」는 「원격 조종기」로
   번역한다. 본딧말이 아우르는 기능을 전폭적으로 수용한
   기능적인 역어들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역어는 살아남기
   어려울 것으로 나는 본다. 의미를 아우르면서도 영어 본딧말이
   지닌 물흐르는 듯한 매끄러움까지 획득해야 역어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 같은 비전문가가 일본인들이
   쓰는 「파소콩」 「와프로」 「인프라」 「헤아누도」 따위의
   말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우리도 하루 빨리 대체 명사를
   개발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글 다루고 사는 사람의 하나로
   책임을 느낀다.

   「이지메」라는 일본어만 해도 그렇다. 일본말의 「이지메」를
   우리 언론은 「집단 괴롭힘」, 「집단 괴롭히기」 등으로
   번역하는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역어는, 「집단이
   한 개체를 괴롭힌다」는 것인지 「집단을 괴롭힌다」는 것인지
   그 의미가 불분명하다.주체와 객체가 명확하게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설사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고 하더라도 이
   역어는 살아남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뜻이 전해지기는 해도
   「이지메」 같은 매끄러움을 획득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대체 명사를 찾아내지 못하면 한 동안 「들어온
   말」을 그대로 쓰는 경향이 있다. 그들이 지금 쓰고 있는,
   한국어도 아니고 일본어도 아닌 「기무찌(김치)」,
   「부르고기(불고기)」, 「가루비(갈비)」가 때가 되면 어떤
   말로 대체될지 나는 퍽 궁금하다.

                     ● 도우미를 구합니다

   한동안 「모라토리움(지불유예)」이라는 말이 유행하더니 ,
   「IMF」가 안 들어가면 말이 아니되는 이 시대에 또
   「비아그라」라는 말이 들어와 고개 숙인 남성들 입에
   오르내린다. 「비아그라」는 비아그라에서 끝나지 않는다.
   「비아그라」 개발의 파장이 만만찮다는 뜻에서 그렇다. 조금
   있으면 「비아그라를 먹이다」는 뜻을 지니는
   「바이어그레이트(viagrate)」라는 말이 만들어 질지도
   모르겠다. 「비아그라를 빼앗다」를 뜻하는
   「디바이어그레이트(diviagrate)」라는 말이 생겨 「기를
   죽인다」는 뜻으로 쓰이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말이 들어와 우리말을 밀어내고 우리말의 기를
   죽이는 시대에 나는 우리말이 지닌 희망의 싹을 미국에서
   보았다.

   「도우미 구함」

   뉴욕, 정확하게 말하면 뉴욕이 내려다 보이는 소도시 포틀리에
   있는, 한 한국 음식점에 붙어 있는 구인 광고다. 영어의
   「헬퍼 원티드(Helper wanted)」에 해당한다. 그 구인 광고
   쪽지를 보는 순간 어찌 그리 좋던지. 나는 「서클」을 몰아낸
   「동아리」를, 잊혀져 가던 말 되살리기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 영어의 본바닥에서까지 「헬퍼」를 몰아낸 「도우미」를
   조어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는다. 나도 「도우미」 같은
   말을 만들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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