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쓴 이(By): hangulo (한글로 정광현) 날 짜 (Date): Thu Jan 7 14:14:25 KST 1993 제 목(Title): 왜 한글 이름패를 거절할까? 안녕하세요? 한글로 정 광현 입니다. 다음글은 한글 학회에서 매달 나오는 책자인 "한글 새소식" 1992년 12 월호에 나온 글입니다. >> 왜 한글 이름패를 거절할까? >> - 오 동춘 (시조시인, 문학박사) 오늘의 푸른 하늘엔 우리별 제1호도 흐르고있다. 바야흐로 눈부신 과학 시대다. 과학을 외면하고 살아갈 수 없다. 자연히 우리의 삶도 과학적인 살림을 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지고 바람직한 행복을 이룰 수 없다. 글자는 생활의 도구이다. 삶의 연장인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글자는 24자모로 온갖 말을 다 적을 수 있는 한글이 으뜸글자임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오늘 같은 속도 시대, 산업 정보 시대, 지식 폭발 시 대에 가장 편리하고 빠른 과학적 글자를 써야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나 아갈 수 있다. 가장 과학적인 우리 한글로 한글 문화를 꽃피워 나아가야 할 시대적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까지 우리가 어려운 한자의 노예로 살아가야 한 단 말인가? 누구보다도 한자를 많이 배운 세종 스스로 한자의 어려움을 알고 쉬운 한글을 만들어 한글 사랑이 곧 나라 사랑임을 15세기에 외치지 않았던가? 주 시경 선생이 나라 사랑이 곧 국어 사랑임을 '한나라말'에서 일깨우 고, 서 재필 박사가 쉬운 한글로 신문을 발행하여 온 국민이 다 기쁘게 읽는 신문이 되게 하자고 '독립신문'에서 일찍부터 외쳐 왔으나, 오늘의 우리 글자살이는 국한 혼용의 불구자 노릇을 하고 있다. 어느 나라가 버 젓한 제 나라 글자를 두고 남의 나라 글자와 함께 섞어 쓰는 나라가 있던 가? 한국과 일본말고는 없다. 일본은 '가나' 50자 만으로 글자살이가 안 되니까 약자까지 만들어 한자 2천 자 정도를 숙명적으로 써야 하지만, 우 리는 한글로 개 짖는 소리, 바람소리, 학울음, 닭 울음 소리까지 못 적는 말이 없다고, 세종을 도와 한글을 만든 정 인지가 '훈민정음' 뒷글에 떳 떳이 말하지 않았던가? 세종 당시는 촤 만리 일파가, 왜 중국한테 글자 만든다고 물어 보지도 않고 몇 사람의 벼슬아치가 오랑캐 글을 만들어 반포하려 드느냐고 강력 히 세종의 한글 반포를 반대하여, 중국을 등에 지는 사대주의를 볼 수 있 었다. 그런데 오늘날은 일본은 한자 쓰는데 우리는 왜 못쓰느냐고 일본을 등에 업는 친일 사대주의를 내세우며 환갑, 고희 지낸 식민지 교육받은 한자 기성 세대가 끈질기게 한글 전용을 반대하고, 우리 국어의 발전과 어문 정책에 큰 혼란을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한자는 우리 나 라 사람이 만들었다고 시끄럽게 굴고 있다. 참 어리석은 소리가 아닐 수 없다. 일제 시대 조선어 말살 정책을 펴 우리 말과 우리글을 송두리째 빼 앗아 가고, '조선어 학회 사건'을 조작하여 우리 애국 지사와 학자들을 마구 옥에 가두어 한징, 이 윤재 선생은 광복의 감격도 못 본 채 함응 감 옥의 이슬로 사라지는 비극도 겪지 않았던가? 포악한 정치를 하기 위해 연산군이 한글 탄압을 하고 일제 시대 조선 총독부가 한글 말살을 하여 우리의 민족 정기를 꺾으려고 온갖 시련을 다 겪게 하며 지식인들을 변절시켰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한글은 분명 히 흰옷겨레의 밝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몰상식한 폭군이나 독재 정치에 의해 수많은 수난을 겪어 왔던 것이다. 또한 말글의 중요성을 깨치지 못 한 겨레의식 때문에 우리 한글이 지금도 괴로움을 겪으며 절름거리고 있 다. 한글 사랑이 나라 사랑임을 절실히 깨달은 제헌 국회가 1948년 10월 1 일 제78차 본회의에서 법률 제6호로 한글 전용법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 해 10월 9일 한글날에 만관 다수가 모여 한글 전용법 공포식도 가졌다. 그 내용은, "대한민국의 공용문서는 한글로 쓴다. 단 얼마동안 필요한 때에는 한자 를 병용할 수 있다." 로 되어 있다. '단 얼마동안' 이라는 기간이 44년이 흘렀으며, 이제는 오히려 곁방살이가 온방살이 차지하듯 한글 전용법을 뒤집고 한자, 영어, 한글 세 글자를 섞어 쓰자는 국,한,영 혼용법 주장이 거세게 설치고 있으 며, 이런 법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제13대 국회에 청원되었던 사실까지 있 다. 얼마나 한심하고 답답한 일인가? 당연히 한글 전용법이 실천되어 이 눈부신 과학 시대의 글자살이가 우리말 우리글로 해와 같이 빛나야 할 것 아닌가? 어느 누구보다도 한글 전용법을 앞장서 실천해야 할 우리 국회가 오히 려 가장 한자투성이의 진서 사상에 젖어 시대에 뒤떨어진 글자살이를 해 온 것이다. 제헌 국회 이래 오늘의 제 14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국회 본회 의장의 새까만 한자 이름패는 꼭 중국 국회를 보는 느낌이 아닐 수 없다. 뻔질나게 외유를 다니는 국회의원들이 다른 나라 글자살이의 모습을 보지 못해서 그토록 한자 이름패를 고집해 온 것일까? 국민의 대변 기관인 우 리 국회가 한자 이름의 숲속에서 한글 전용법을 이토록 외면할 수 있을 까? 뒤늦게나마 이런 사실에 늘 가슴아파하던 우리 뜻있는 어른들이 한글 이름패를 만들어 제 14대 국회에 기증하고자, 없는 돈을 수백 만 원 들여 국회 의원 299명의 한글 이름패를 한글 반포 546돌을 맞는 10월 9일을 앞 두고 10월 8일 국회로 가져갔던 것이다. 한글 문화단체 모두모임 회장 안 호상 박사 이름으로 박 준규 국회 의 장께 국회 의원 한글 이름패를 전달하려 했으나 거절하여 대신 국회 의원 한글 이름패를 원 광호 의원에게 전달한 것이다. 제 14대 국회에 이르기 까지 누구 하나 한글 이름패에 관심을 쏟고 앞장서는 이가 없었으나 제 14대 국회에서 한글 세대인 원 광호 의원이 스스로 한글 이름패를 만들어 자기 사무실에도 달고 본회의장에도 두고 있어 한글 이름패 사용에 횃불 이 되고 있다. 그는 우리 말글 사랑이 겨레의 얼을 사랑하는 일이오 나라 사랑임을 바른말 연구원을 운영하며 일찍 깨쳐 알고 우리 말,글,얼 사랑 에 앞장서 왔던 것이다. 원 광호 의원이 받은 한글 이름패를 의사과장이 보관하겠다고 나설다. 그럼 인수증을 써 달라 하니 그렇게는 할 수 없다 하여 믿을 수 있는 원 광호 의원 사무실에 한글 이름패를 보관하기로 했다. 이 날 한글 문화단 체 모두모임 회장 안 호상 박사님을 비롯하여 허 웅, 주 영하, 전 택부, 문 제안, 김 계곤, 김 승곤, 최 기호, 윤 물맑, 리 대로, 차 재경, 오 동 춘 등의 회원이 모여 국회 의원 299명의 한글 이름패를 전달하고 원 광호 의원 안내로 국회 의장실로 갔다. 오다가 본 국회 정문 현관에 왼쪽엔 세 종대왕, 오른쪽엔 이 순신 장군 조각이 서 있었다. 국회에 드나드는 국회 의원들이 세종 임금의 한글 사랑이나 이 순신의 순국 정신을 잘 알고 있 을 텐데도 왜 국회가 오늘까지 한자투성이의 국회가 되었을까 의심스러웠 다. 오래 잠자던 국회가 중립 내각 구성으로 활기를 띠고 각 상임 위원회가 열려 바쁘다는 이유로 박 준규 의장의 스승인 안 호상 박사님이 국회 의 장은 만나지 못하고 대신 국회 사무총장을 만났다. 안 호상 박사님은 바 른 글자살이를 강조하고 한글 이름패를 원 광호 의원에게 보관중이니 꼭 사용하라고 당부하고 나왔다. 국회 사무총장은 국회가 국회 의원 명패를 한글로 한다고 의결해 주면 국회 예산으로 한글 명패를 만들 것이라 했 다. 1948년 법률 제6호로 한글 전용법이 공포되었으니 새삼스런 국회 의결 이 필요없다. 국회의원 이름패가 한자 전용법이 되어 새까만 한자투성이 의 숲을 이뤘는가? 중국도 일본다 아닌 분명 한국 땅인데도 왜 국회 의원 한글 이름패 전달이 거절로 끝났을까? 왜 이 당연한 일이 부당한 일처럼 외면될까? 참 분하고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동명이인 문제는 지엽적인 문제다. 근본은 우리 국회가 우리 말,글,얼 사랑의 정신과 그 실천의 자세가 어떤가가 더 중요한 문제이다. 기쁘게도 많은 국회 의원들이 한글 이름패를 원하고 있다. 관례가 법률 보다 앞설 수는 없다. 우리 제14대 국회가 완전히 한글 이름패로 새로 태 어나 참으로 국민의 손뼉을 받는 국회로, 나랏일 많이 하는 존경과 신뢰 를 받는 국회로 국회상이 쇄신되길 빈다. 이에 관련된 몇가지 기사를 더 올리겠습니다. 많은 생각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 한글이 제자리를 찾는날을 기다리며... ☆한글로☆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