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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YU ] in KIDS
글 쓴 이(By): BADA (내좋은사람)
날 짜 (Date): 1996년01월22일(월) 01시05분57초 KST
제 목(Title): [퍼온글] 삼성전자 김광호 부회장



 삼성 전자 대표이고 � 삼성 그룹 부회장인 김광호씨는 �

 우리 한양대 공대 선배 이기 때문에  여기에 그에 대해 

 난 기사를 소개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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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삼성전자>  김광호 부회장, 세상에서 가장 신나는 남자


 '세상에서 제일 돈 잘 버는 남자' '하루 평균 4백50억원씩 벌어들이는 경
영의 귀재'. 지난해 1조원에 육박하는 순익을 내 '한국에서 가장 돈 잘 버
는 경영자'라는 별명을 얻었던 김광호(55) 삼성전자 부회장이 올해는 2조
5천억원 이상의 순익을 낼 것으로 예상되면서 그를 수식하는 애칭도 이렇
게 달라졌다.

 김 부회장은 최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반도체 호황 등에 힘입
어 삼성전자의 매출은 당초 계획보다 20%정도 늘어난 16조 2천여억원에 달
하고 세후 순익은 2조 5천억원을 훨씬 넘어설 전망"이라고 밝혔다. 스스로
도 "이익이 상상외로 엄청나게 불어났다"고 말하는 김 부회장은 이로써 '
신기록 메이커'라는 타이틀을 또 하나 얻게 될 것 같다.


 256메가D램 세계 최초 개발, 메모리 분야 세계 최고, 국내 제조업체 사상
최초로 1백억달러 수출 돌파 등 '최초' '최고'의 직함을 수두룩하게 지닌
그가 이번엔 세계 최대의 순익규모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김 부회장은 기술적인 감각과 아랫사람을 휘어잡는 카리스마, 그리고 일
에 대한 열정 등 3박자를 두루 갖춘 경영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성공의 비
결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반도체 투자를 결정한 이
병철 선대회장 덕분"이라고 겸손해 하면서도 "기술발전의 흐름을 남보다
먼저 읽어내는데는 조금 소질이 있는 것 같다"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실제로 그가 반도체의 핵심기술인 N모스와 C모스, 트랜치와 스텍기술의
갈림길에서 C모스와 스텍기술을 선택키로 방향을 잡고 재빨리 투자에 나선
것은 삼성전자가 일본 기업들을 제치고 반도체 황제로 등극하는데 결정적
인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회장은 엔지니어 출신이지만 조직을 장악하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
녀 타고난 경영인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그는 한마디로 '밀어붙이는 스
타일'이다. 한번 이거다 싶으면 '쟁취'할 때까지 혹독할 정도로 강력하게
밀고 나가는게 그의 특성이다. 덕분에 아랫사람들은 고달프지만 그의 판단
을 믿기때문에 군소리 없이 따를 뿐이다.

 훤칠한 키와 선이 굵은 외모, 우렁찬 목소리 등도 그의 조직장악에는 보
탬이 되는 요소다. 얘기를 나누다 보면 상당히 솔직하고 시원시원하며 격
의 없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마음에 안들면 망설임 없이 '육두문자(?)'를
써가며 호통도 치지만 이를 고깝게 여기는 부하직원은 거의 없다고 한다.
솔직 담백한게 그의 큰 장점이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
와 만나 얘기를 나눌때도 전혀 거리낌없이 직설적으로 의사를 표시해 배석
한 스텝진들로부터 "그만 말씀하십시오"란 말을 수차례 듣기도 했다. 그럴
때면 오히려 "괜찮아. 이런건 (신문에) 써도 돼"라고 말하기 일쑤였다.


 기술자와 경영인으로서 타고난 자질을 지닌 김 부회장은 일에 대한 열정
도 남달랐기에 행운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서울고와 한양공대를 나와
64년 동양방송(TBC)에 방송엔지니어로 입사, 삼성그룹과 첫 인연을 맺은
그는 69년 삼성전자 창설멤버로 자리를 옮겼다. 72년 TV생산담당 과장이
됐을땐 선발업체인 금성사를 따라잡기 위해 하루 4시간이상 잠을 자본 적
이 없을 정도로 혹독하게 일했다고 한다. 결국 입사 10년만인 78년 TV사업
본부 이사로 승진하는 행운을 얻었지만 기쁨도 잠깐. TV공장에 불이 나 수
십억원대의 피해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때 김 부회장은 꼬박 45일동안 집
에도 가지 않고 정신없이 공장 복구에 몰두해 이병철 선대회장이 "저놈을
그냥 두면 쓰러지겠다"며 해외여행을 보내버렸을 정도였다.

 79년에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반도체 사업부로 자리를 옮기면서 김 부회장
의 '반도체 인생'이 시작됐다. 누적적자로 자본금은 이미 잠식된 데다 일
거리가 없어 직원들도 빈둥거리던 '한심한' 상황에서 '더 이상 나빠질 게
없다'는 생각으로 시계칩부터 하나씩 공략해나가 결국 83년 64KD램을 국내
최초로 개발하는 개가를 올렸다. 항상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면서도 앞을


밝게 보는 김 부회장의 특성이 유감없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때부
터 김 부회장이 이끄는 반도체팀은 2년이 멀다 하고 한단계 높은 신기술
제품을 쏟아내며 '반도체 신화'에 한걸음씩 다가섰다. 84년 256KD램, 86년
1메가D램, 88년 4메가D램, 90년 16메가D램, 92년 64메가D램(세계 최초),
94년 256메가D램(세계 최초) 등 신제품 개발행진을 계속했다.


 지난해 기업 이미지 광고에 직원들과 함께 출연하면서부터 김 부회장(당
시 사장)은 일반인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스타'가 됐다. 김 부회장이 광고
출연을 결심한 것은 사장과 사원은 직책만 다를 뿐 모두 한 식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만큼 김 부회장은 사원들을 허물없이 대해 사내에서도 인기
가 높다고 한다. 물론 야단도 많이 치고 웬만한 성과에는 만족 못하는 깐
깐한 성격때문에 김 부회장을 무서워하는 직원들도 많다.


 김 부회장은 술도 성격대로 호탕하게 마신다고 했다. '노털카찡띠오...(술
잔을 놓치도, 털지도, 카소리를 내지도, 찡그리지도, 입에서 띠지도, 오래
끌지도 말라)'를 외치며 '폭탄주'를 앞장서서 돌리기도 한다. 그러나 술고

래는 아니다. 김 부회장은 "술에 취해 정신을 못차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고 했다. 언젠가는 술자리에서 폭탄주가 정신없이 돌길래 2~3잔쯤 마시다
몰래 빠져 나왔는데 술에 취해서 실수하는 것보다 술먹다 튀어서 욕먹는게
낫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술회했다. 술자리를 적당한 선에서 즐기되 고주
망태가 되는 일은 사양하겠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김 부회장의 취미는 골프. 핸디 20정도로 썩 잘 친다고 할 수 없는 편이
지만 핸디를 줄이는데 연연하지도 않는다. 그는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리
고, 상대방에게 실례를 범하지 않을 정도로만 치면 되는 것 아닌가요"라고
반문한다.

 김 부회장은 엄격한 동시에 인정이 넘치는 경영자로 알려져 있다. 93년에
는 TV사업부 과장시절 함께 일했던 여사원들과 함께 만남의 시간을 갖고
올해는 전직 임직원들을 모두 초청해 '기업동창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김
부회장은 "손이 부르틀 정도로 열심히 일하며 함께 고생한 옛 사우들을 오
랜만에 만나니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웠다"고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돈 잘 버는 남자, 김 부회장은 가끔씩 자신의 생각을 잘
따라주거나 옳은 말을 하는 부하직원을 보면 "나는 저런 스텝이 있어서 참
행복한 사람"이라며 흐뭇해 하기도 한다. 그는 "항간에서는 삼성전자의 초
고속 성장이 마치 복권에 당첨된 양 운수가 좋아서라고도 말하지만 성장의
뒷면에는 20여년간 쌓아온 피나는 노력과 막대한 투자가 숨겨져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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