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FSan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HUFSan ] in KIDS
글 쓴 이(By): riceworm (@~쌀벌레~*)
날 짜 (Date): 2002년 8월 12일 월요일 오후 06시 12분 59초
제 목(Title): 국립극장- 안숙선'수궁가'완창 관람후기






금요일 퇴근길.. 발걸음도 총총..
비도 오락가락하고 오늘따라 왜그리도 무거운 짐이 많은지

양쪽 팔뚝에 가방 걸치고, 양손엔 들고... 우산까지
이런 차림으로 수궁가 관람을 할 수 있을런지...


허위허위 볼일보느라 저녁도 못먹었다.
공연시작 한 시간 전.
커다란 모카빵 한덩어리 겨우 사서  전철역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꼬깃꼬깃 떼어먹고 
있었다.

배고파~~  허기져~~
그럼 아무리 훌륭한 공연이어도 귀에 안들어올텐데...
민생고가 나의 우아한 관람분위기를 깰 위기였다.

친구와함께 여유롭게 국립극장으로 가는 셔틀버스에 올랐다
45인승 버스안에 가득차도록 사람들이 탄다.

나 앉아있는 옆을 지나쳐가는 한 머슴아가 낯이익다.
가만 생각해보니 예전에 신림동에서 살던 때에 
관악구청 뒷산에 올라가 그 추운겨울 바람을 맞아가며 손이 트도록 장구를 배우고
한 면이 거울인 지하방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춤사위를 익혔던
봉천놀이마당.  그 굿패의 상쇠였던 재욱이다.

벌써 몇해가 지났는데 그래도 용케 기억이 나네..
그 일행중에 또 내가 아는 사람이 없나 두리번 두리번 돌아보았다.
유난히 안숙선씨의 소리를 좋아하던 춤패 순애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저녁 어스름에 조명마저 은은한 국립극장.
하늘극장이라니 이름도 참 이쁘기도 하지.
야외공연이라 내심 걱정이 되기도 하다.

공연시작하기 아직도 40분이나 남았는데
몇몇 골수팬(?)들은 이미 중앙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며칠내내 퍼붓던 빗줄기는 잠잠하고
저녁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주니 기분은 캡이다.

수궁가 완창이라니..
내가 또 다음 기회에 판소리 오나창을 들을 날이 몇번이나 있을까 싶어서
놓치고 싶지 않은 공연이었다.

이런 소리에 그리 익숙지 못한 내 귀를 단련하기 위해서
인터넷에서 박동진님의 수궁가 음반을 미리 듣고는 왔지만
사실 그 가사 내용은 하나도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내심 가사는 못알아들어도 그냥 좋은 분위기, 조명, 바람속에서 
한동안 잘 쉬었다 가자 싶었다.


약속된 공연시각 9시 정각.
토끼, 자라, 다람쥐, 호랑이 등등의 분장을 한 어린이들이 나와 앙증맞은 창으로 무대는 
시작되었고
그로부터  이어진 장장 3시간여의 소리.

귀로만 들었을 때에는 하나도 못알아들었던 내용이
이젠 안숙선님의 표정과 손짓과 함께하니 조금씩 조금씩 귀에 들어오기도 한다.
워낙 가사가 한자어로 되어있어서
엄마 아빠 손잡고 온 꼬마관객들은 이해가 되려나..

워낙 안숙선님의 왕팬들만 모인 자리인지
공연 관람 분위기는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자칫 산만해지기 쉬운 야외무대인데도
무대에서의 손가락 하나 까딱임도 놓치지 않으려는 관객들의 집중력은
참으로 대단했다.

한 시간여 지났을까
그냥 견딜만하던 빗방울이 조금더 굵어져 얼굴에 떨어지면 깜짝깜짝 놀랄때쯤에
관객들이 하나둘씩 스스스~   입장할 때 나눠주던 비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 비옷 비닐이 내는 소리 스스스~
이것이 공연에 방해가 될까 조마조마하며 조심스런 움직임이 일자
역시 프로다운 안숙선님,
얼른 재치를 발현해서 뒤로 살짝 돌아서서 노래를 계속하신다.
그사이 우리는 얼른 하늘색 비옷으로 갈아입고
몇 초 되지 않는 순간이지만 서로를 배려하려는 참 따뜻한 마음이 묻어나는 풍경을 목격했다.

빗방울이 점차 거세지자 
관객들은 비맞는데 혼자 비를 피하기 미안하다며
차양이 쳐있지 않은 노천중앙으로 내려오는 안숙선님,
그러는 모습에 깜짝 놀라며 비맞으시면 안된다고 우산 받쳐주러 달려나가는 왕팬 할아버지.

다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인데 어쩜 그 모습이 그리도 예쁠까
세시간여 보는 내내 무대위의 진짜 프로에게 내 시선은 꽂혀있었지만
내 주변에 앉은 여러 젊은 관객들도 내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요즘 젊은이들..
이런 공연 따분하다고 안좋아할거라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고정 팬들이 많은 모양이다.

디지털 카메라로 모습을 찍고
소형 녹음기로 열심히 녹음도 하고
또 함께 온 여자친구에게 열심히 설명해주기도 하고...

공연이 펼쳐지는 무대 반대편에는 빈대떡과 동동주가 마련되어있으니 나눠먹자고 한다.
공연봐야지 먹긴 뭘먹나 싶었는데
정말 공연 중반쯤되니까 기름에 살짝 구운 빈대떡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판소리의 장단을 맞춰주는 고수는 토끼와 자라가 수궁에 도달하고 클라이막스 부분일 때
바톤터치를 해서 교체되었다.  
여러시간동안 계속해서 고수를 하는 것이 힘들어서 그런 모양.
처음 고수는 이태백님이라던가.. 그리고 새로 바뀌신 분은 인간문화재라 하던데 이름은 잘 
못들었고..

고수가 바뀌니 판 분위기로 사뭇 다르다.

줄거리를 얘기하자먼 한마디로 끝날것 같은 이야기를


관객중에는 역시 판소리를 배우고 부를줄 아는 사람들도 꽤 있는듯
적절한 타이밍에 '얼씨구'하고 추임새를 넣는다.

나도 그렇게 추임새 잘 넣었으면 좋겠다.
언제 추임새를 넣는지
어떻게 넣는지

흥이나면 나는대로 넣으면 된다고 그러지만
만약 그랬다가 혼자서 삐죽 삐져나오는 '얼씨구'가 되어버리면 어떡해
소심한 추임새, 끝소리가 기어들어가는 얼씨구가 아니라 시원스럽고 호탕한 얼씨구.

참 부러웠다.
특히 이날 공연에서는 열정적인 어르신 관객들을 많이 뵐 수 있어서 더욱 인상깊다.

자정이 넘어서야 공연이 끝나고 동대문까지 나가는 셔틀버스에서 나누시는 말씀들 들어보니
저 멀리 전라남도에서도 이 공연을 보러왔다고하고
건강이 안좋아 불편한 와중에도 꼭 보고싶었던 공연이라 왔노라고
환담들을 나누신다.


나도 나중에 나이들어서도
이렇게 좋아하는 공연, 가고싶은 곳 찾아다닐 수 있을지

참 멋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은 것 같다.
그리고 그 못지않게 우리 것을, 우리 소리를 사랑하는 젊은이들도 많은 것 같다.


그 야밤에 택시도 안잡혀서 데리러 오라가라 생난리를 피우며
겨우겨우 귀가하니 1시가 넘었지만

뭔지모를 뿌듯함과 신기함에
쉽게 잠이 들 수 없던
기분좋은 밤이었다.




      v v
    ..@"@..            나비가 되고픈 푸른 애벌레의 꿈이여
     ((~))
      (  )                        하늘에 닿고픈 미물의 욕심이여......
     (  _)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