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UFSan ] in KIDS 글 쓴 이(By): swjun (붉은노을) 날 짜 (Date): 1996년04월18일(목) 12시15분12초 KST 제 목(Title): [Re] 더 이상 개념없이 산다는 말을 들을 � 쌀벌레가 조선사람의 무거운 역사적 짐을 생각하는 것 같구나. 영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중국 등과 수많은 제 3 세계에서 민중이 봉기하여 승리한 경험이 있다. 한국사에서도 수많은 봉기가 발생한다. 그러나 어처구니 없게도 남한땅에서는 아래로부터 봉기가 성공 사례는 한번도 없다. 상층에서 권력을 교체하기 위해 근로 민중의 봉기를 유도한 후 항상 논공행상은 상층 지도부에서만 존재했다. 그런데 이러한 이유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선 근로 민중이 봉기를 할 때나 근로 민중의 봉기를 이끌 때든 근로 민중이 주장하는 잇슈는 그 당시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하고 의문이 생길 정도의 진보적 내용이였다. 계급(신분)의 철폐, 사적 소유의 철폐, 등등 제반 민주주의적 요구가 그 당시 경제적 사회 구성체에서 생각할 수 있는 내용으로는 혁신 그 자체가 아니였나를 생각한다. 흔히, 서구에서 보는 혁명 잇슈 중에 천년왕국 건설이라는 추상성 보다 현실의 제반 민주주의를 위한 봉기가 근로 민중의 주요 목적이였다. 이는 그 만큼 지배층의 수탈이 강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또한, 그렇게 솟아 오르는 금로 민중의 봉기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쓸어지고 그들이 흘린 피가 흘러 강이된 이 땅에 내가 서있다는 것이 바로 역사가 주는 무거운 짐이다. 이렇듯 역사가 주는 교훈을 보면서 나는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나는 개념속에서만 존재하는 추상체가 아니라 현실의 경제적 사회 구성체에 존재하는 실체라는 것. 과거를 회고하는 일면적 시각이 아닌 과거를 통해 미래의 실천을 준비하는 야누스의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 잃어버린 허탈함이 아니라 찾아야 할 분주함이 필요하다는 것 등이다. 나도 노수석군 장례식때 이런 생각을 했다. 그렇게 아까운 수많은 죽음을 생각하며 어찌하여 나같이 역사 앞에서 불필요한 사람이 살고 있는지. 이는 내가 위에 이야기 것과 같이 실천을 통한 삶에 방식이 아닌 관념과 생각 속에서만 살아가고 있음에 대한 반성이다. 정리된 글은 아니지만 이만 줄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