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의 일이다. 7월 초 무더운 여름밤이었다. 보충 수업 끝나고 밤늦게 버스타고 집에 도착해서 버스에서 내리려고 하는 찰나 (우리집은 버스의 종점이었다) 같이 버스에 타고 있던 어떤 여자가 갑자기 나에게 안겨왔다. 긴 파마 머리에 20대 초반인 듯한 예쁘장한 여자였다. 버스 실내가 어두워서 얼굴을 자세히는 못봤지만... "저... 걷기가 힘들어서 그러는데요 저 좀 부축해 주세요......" 그러면서 마구... 저돌적으로 내 가슴을 파고 드는 것이었다... 순진한 나는 당연히 무척 당황을 했고... "네 그러지요..." 하면서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얇은 옷을 통한 그녀의 가슴이 내 손 등에 닿았다. 그녀는 목소리도 또렸했고 어디가 아픈 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 뭔가 좀 이상했다... 어쨌든 나는 그녀를 부축하고 어두운 밤길을 100 미터쯤 걸었다... 그녀는 내가 붙잡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처럼 나에게 기대왔고 양팔로 내 허리를 감싸고 매달렸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한 손으로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내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낑낑 대며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그녀는 갑자기 "이젠 됐어요!!" 그러더니 나를 뿌리치고는 혼자 어둠속으로 사라져갔다... 난 한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다가 집을 향하여 왔던 길을 되돌아 가면서... '날 유혹했던 거였나?', '근데 잘 안 되니까 그냥 포기한 건가?', '어유 바보~~~ 난 왜 이렇게 멍청할까' 등등 별생각을 다했다. 집에 와서는 내 몸에 닿았던 그녀의 부드러운 몸의 감촉, 그녀 머리카락에서 나던 향기 등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잠도 잘 안 왔다... 그리고는 잊혀진 기억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 대학 시절 초창기... 나는 다시 이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우리 과 여학생 한 명이 소주 딱 한 잔 마시고는 다 멀쩡한데 다리가 풀려서 걸음을 제대로 못 걷는 걸 본 것이다. '마자... 그 때 어둠 속으로 사라지던 그녀도 저렇게 갈 지자 걸음을 걸었었지...' 그러고 보면 참 아무일도 아니었는데 어린 마음에 별 생각을 다 했었나보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그녀를 집 앞까지 잘 좀 부축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