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From   : Liszt (장 진 웅)
Date   : Sun Nov 15 11:58:52 1992
Subject: 소나기(15년 후): Part 5(마지막)


퇴근길에 개울가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소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며칠을 그렇게 기다렸으나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퇴근길에 돌아오니 할아버지가 나들이 옷으로 갈아
입고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어디 가세요? 할아버지? 서울집에 아버지 만나러 가세요?''

``아니다... 건너 마을 박초시가 고향 떠난다고 송별회를 하자는구나...
읍내 캬바레를 세내서 질펀하게 놀기로 했지 뭐냐... 옛날에 배운
지루박하고 탱고는 안까먹었는가 몰르것다... 할멈은 쫓아오지마...
쪽팔리니께...''

개울물은 날로 여물어 갔다.

청년은 저녁 무렵 전에 없이 개울가에 나가 보았으나 소녀는 보이지 않았다.

무심하게 개울물만 흘러가고 있었다.

소녀에게 주려고 따다 놓은 선반위의 사과는 시들어가고 있었다.

그날 저녁 청년은 자리에 누워서도 소녀생각 뿐이었다.

``내가 그애를 사랑하는 것 같은데... 사랑하는 것 같은데...''

그러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허허... 참 세상일두...''

읍내에 놀러 갔던 할아버지가 언제 오셨는지 약간 술기운을 풍기며,

``박초시 댁도 말이 아니여... 그 많이 번돈을 다 날리더니 대대로 살아오던
집까지 남에게 넘기고 또 악상까지 당하는 것을 보면...''

희미한 형광등 밑에서 바느질을 하던 할머니가 물었다.

``자식이라고는 그 계집애 하나뿐이었지요?''

``하나뿐이었어... 그앤 꽤 오랫동안 앓는 걸 약도 변변히 못써보았다는군.
지금같아서는 박초시네두 대가 끊긴 셈이지... 그런데 그 나이도 많지 않은
처녀애가 여간 으뭉스럽지가 않어. 글쎄 죽기 전에 웬 남자 난닝구를 입고
있었다지 뭐여!''

``넘사스럽게 처녀가 왜 남자 난닝구를 입고 있었을까?''

``무슨 말못한 사연이 있는걸거여... 그리고 죽기 전에 숨을 몰아쉬며 겨우 이말을
유언으로 남겼대두만...''

``뭐라구 그랬는데요?''

`` `난닝구는 역시 쌍방울표가 캡!!!' 이라고...''

유년의 아픈 사랑이 미처 가기 전에 청년의 사랑은 그렇게 또 쓸쓸하게
개울가를 떠났습니다. 소나기가 차갑게 내리는 계절에 말입니다.






                                   끝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