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un ] in KIDS 글 쓴 이(By): cookie () 날 짜 (Date): 2004년 12월 30일 목요일 오전 06시 45분 32초 제 목(Title): [펌] 황우석이 필연적으로 실패하는 이유.. 출처: 중앙일보 독자게시판 제목이 흥미있길래 쭉 읽다가 허를 찔렸습니다. 내용은 기니까 웃기는 부분만 줄을 쳐줄까 했는데 진지하게 읽다가 그 부분을 읽어야 웃게되니 그만두죠. http://jbbs.joins.com/content.asp?board_idx=1069&page=1&tb_name=d_economy 라하트 하헤렙 이라... 필자도 심각한 투로 썼지만 웃기다는 건 아는 모양이네요. ======================================================= 결코 도달하지 못할 두 가지 과학연구 글쓴이 : 서종필 (langlois6) 글 올린 시간 : 2004-12-29 오전 1:28 조 회 : 656 추천 : 0 결코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두 가지 과학연구 조로증을 보자면 사람의 몸에는, 운명론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대체로 신진대사의 속도와 노화와 수명을 관장하는 시계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조로증은 그 보편적인 사람의 수준에 비해 그 시계바늘이 고장나 성장과 노화와 사망이 현저히 빠르게 진행되는 이상현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기왕이면 느리게 가는 고장이었으면...) 이 인체내부의 신비로운 시계장치를 규명하고 인간이 그것을 다룰 수만 있다면, 인간은 늙지않고 영원히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인체의 시계에 해당하는 이 부분을 찾아내기 위해 열정적으로 실험과 연구를 그듭해왔고, 상당부분 그 장치의 비밀을 밝혀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제는 그것을 인간이 원하는데로 다루는 것과 관련해 커다란 장벽에 부딛혀버린 것이다. 또 다른 연구로 매우 놀랄만하게도 서울대 황우석 교수가 리더하는 팀이 줄기세포연구의 엄청난 장벽을 뛰어넘어 줄기세포의 특화된 분화를 통한 불치병 치료의 가능성을 활짝 연 경우다. 핵을 제거한 여자의 난자에 세포의 DNA를 주입 세포분화를 특정장기로 증식시키는 과정에서 직면한, 8세포 분화에서 세포분화가 정지되어 버리는 전세계 과학계가 절망을 느끼던 장벽을 단번에 뛰어넘어 줄기세포의 성장실험을 성공시킨 것이다. (이 분은 어려운 연구분야를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설명과 말씀도 참 잘하신다.) 동물 실험에 의하면 500만개(1도스) 정도의 특정 장기로 분화된 줄기세포를 주입시키면 동물의 몸속에서 그 특화된 장기로 스스로 자리잡아간다고 한다. 척추신경을 제거해 하반신이 마비된 개의 실험에서 척추신경의 회생과 하반신의 회복증세가 뚜렷한 영상이 상당부분 그 실험이 성공적인 것으로 보이게 해주었다. 황우석 박사의 설명에 의하면 장기 이식이나 줄기세포 이식 과정에 항상 직면해온 문제는 인체의 거부반응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자가줄기세포 이식. 즉 자신의 세포의 DNA를 핵이 제거된 난자에 주입하여 원하는 장기의 줄기세포로 분화시켜 체내에 주입하면 거부반응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나하는 가설이다. 다행이도 황우석 박사는 이 이론을 단순하게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어떤 부작용을 만들어낼지 모를 매우 위험하고 또한 윤리적 문제가 걸려있슴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줄기세포연구의 현 단계는 사실 외계생명체 발견을 위한 천문학적 자원의 인간의 노력과 시도만큼이나 그렇게 낙관적이거나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과학자들은 자연과 천체, 그리고 인체의 구조와 원리를 밝혀내면 밝혀낼수록 그에 기하급수적으로 비례하게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진다는 사실에 직면해왔다. 과학자들은 지금 현미경과 미세 물질을 다루는 도구로 경이로운 DNA와 난자의 인공수정체를 가지고 이리 찔러보고 저리 찔러보고 전기 자극을 줘가면서 반응과 결과를 살피는 매우 원시적인 실험단계에 와 있을 뿐으로 보인다. 물론 그 정도만으로 대단한 업적이며 고도로 훈련받은 탁월한 지성의 응용력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황교수와 과학자들의 우려대로 줄기세포 이식이 인간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불가항력의 난치병의 고통과 죽음에 대항해 줄기세포의 대체적인 작동원리를 읽어가며 도전하고 싸워보는 것이다. 인간실험의 자원자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전세계 인류는 초조해하며 죽은 신경을 살려내거나 상한 심장까지도 자신의 세포를 통해 증식된 새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이 난치병 치료의 획기적인 인간실험을 지켜볼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놀라운 인간의 괄목할만한 진보된 과학실험은 윤리적인 문제 이전에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나 성과만큼이나, 놀라운 발견이라는 특정 지점의 답보상태에서 더 이상 진전되거나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장족의 발전을 이루어낸 인체 노화연구나 황우석 교수와 연구팀 그리고 전세계 줄기세포 연구에 심혈을 받쳐온 과학자들에게 매우 유감스럽지만, 두 가지 다 결코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할 수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웃습겠지만, 그것은 두루도는 화염검이 생명나무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에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외에 '생명 나무'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창조주 여호와 하느님은 법을 위반한 아담과 이브가 생명 나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고 두루도는 화염검으로 인간의 접근을 막았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잔혹한 실험이 아니라, 이미 공개적으로 선언된 쟁점의 문제와 관련된 특별한 조치였다. 그 쟁점은 창조주 여호와 하느님이 선언한 '그 열매를 먹으면 죽을 것이다'와 뱀을 통한 사탄에 의해 제기된 쟁점인 '죽지 않을 것이며, 더 탁월해질 것이다'와 관련된 것이다. 여호와 하느님은 1. 인간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하려했던 인간을 창조한 자신의 목적과 2. 그 과일을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자신이 친히 제정한 법, 3. 그리고 힘이 아니라 쟁점으로 의문을 제기한 사탄의 도전(죽지 않을 것이다) 이 세 가지 문제와 관련해 정치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게 되는데, 그것은 쟁점이 충분히 증명될 때까지 사탄과 인류에게 자치의 시간을 허락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첫 인류로부터 지금까지 6000년 정도의 세월을 통한 사탄과 인류의 갖은 정치적, 종교적, 과학적 노력과 도전과 시도와 실험이 어어졌고, 그것은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에 대한 괄목할만한 실험성과에까지 이른다. 에덴에서의 그 열매와 관련된 법은 사실상 여호와 하느님의 통치권과 관련된 것이다. 사탄은 여호와 하느님에게 '당신의 통치권이 꼭 절대적인 것이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당신의 법이나 지배 혹은 당신에 대한 의존없이도 잘 해 나갈 수 있다'고 도전을 제기했고, 아담과 이브는 그 도전에 참여한 것이다. 쟁점은 어떻게 증명되었나? 인간은 결코 창조주 여호와 하느님의 법과 통치를 떠나 성공적인 사회나 삶을 이룰 수 없다는 것으로 증명된 것으로 보인다. 가장 진보된 정치제도하에서 첨단 의학과 과학 그리고 광통신으로 더욱 밀접해진 인류사회가 지금 겪고 있는 현상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괄목할만하고 대단한 업적의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연구 역시 인류 역사와 관련된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사실상 그 도전의 일환이다. '하느님 당신없어도 우리가 해 낼 수 있습니다. 노화를 중단시킬 수 있고, 줄기세포를 통한 고장난 인체의 교체로 죽음과 질병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 당신과 당신의 대리인들이 제기하는 윤리문제만 없다면요!' 물론 황우석 교수나 과학자들 개개인의 도전과 노력의 동기가 꼭 무신론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가능하면 하느님이 도와줬으면하는 심정으로 그 일을 해내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불행이도 그리고 매우 유감스럽게도 노아 홍수로 에덴동산이 사라졌을지라도 상징적인 의미로 그 '생명나무'의 열매는 여전히 화염검이 두루 돌며 인간의 접근을 막고 있다. 그것은 황우석 교수와 같은 인간의 뜻이 아무리 숭고할지라도 여호와 하느님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우주쟁점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의 인간적인 노력에는 정상 참작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하느님과 성서를 대변한다는 종교가 인간의 질병과 노화와 죽음과 관련하여 만족할만한 기대나 답변을 못해줘왔기 때문이다. 그들의 대답은 언제나 기껏해야 죽어 지옥불에 던져져 영원한 고통을 받거나 죽어 영혼이 천당가는 납득하기 어려운 불신과 모순 투성이의 수준이었기 때문이었으며, 이 종교적 거대 대표 집단들의 역사속의 이해할 수 없는 조직적 행위가 충분히 이들에게 불신감을 심어주고 등을 돌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틀렸지 하느님과 성서가 틀린 것은 결코 아니다. 게다가 쟁점이 해결됨과 동시에 하느님이 인류에게 베풀 질병과 노화와 죽음과 관련된 치유책은 과학자들의 고통이 수반되고 위험하고 불안전한 실험이나 치료보다 훨씬 안전하고 자애로운 것이 될 것이라고 성서는 알려준다. 이미 그 안전하고 고통스럽지 않고 기적적인 치료의 시연회는 2000년 전에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눈 먼자를 뜨게 했고, 한센씨 병을 고쳤고, 죽은 나사로를 살려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병고침은 단순히 그리스도교의 부흥을 위해 있었던 기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쟁점이 해결되고 시행될 하느님의 통치권 하에서 인류에게 베풀어질 의료환경이 얼마나 안전하고 고통이 수반되지 않고 탁월한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한 프리젠테이션이었다. 물론 이 모든 성서와 관련된 종교적 이야기는 현대 의학이나 과학자들의 노력이나 가치를 폄하하려는 것이 절대 아니다. 과학자들의 숯한 도전과 불굴의 용기와 창의적 정신이 괄목할만한 의료기술의 발전을 가져온 것이 분명하며, 그 해택을 받고 있는 인간은 누구라도 그와같은 노력에 경의와 감사를 표하는 것이 마땅하다. 여기서 지적하고자하는 것은 그 노력과 도전이 직면하게 되는 결코 넘을 수 없는 현실적 장벽과 관련된 설득력있는 역사적 종교적 배경 지식과 관련된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인간의 도전과 신의 어쩔 수 없는 방어 사이의 치열한 싸움의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여러 많은 부면의 인류의 시도와 투쟁이 허락되었다. 하지만 앞서 설명된 것과 같이 여호와 하느님으로서도 도저히 허락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 허락될 수 없는 인류의 시도는 바벨탑을 짓고 지구 전역으로의 인류의 확산을 저해했던 니므롯의 꿈이 좌절된 것처럼 좌절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이 이런 일을 하기 시작하는구나. 그러니 이제는 그들이 하려고 생각하면 자기들을 위하여 이루지 못할 일이 아무것도 없겠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못하게 하자" - 여호와 하느님(성서 창세기 11장 6절과 7절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