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w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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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wha ] in KIDS
글 쓴 이(By): july ()
날 짜 (Date): 1994년04월21일(목) 12시56분43초 KST
제 목(Title): 추억의 마리포사...


지금은 없어졌지만(아마 92년도 가을에 문을 닫았던가?) 그린하우스 건너편 

골목으로 쭉 들어가서 지금의 하나은행 자리에 마리포사라는 커피전문점이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커피전문점들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지만 당시로는 

드물게(내가 아는 한은) 여러가지 종류의 원두커피를 맛볼수 있는 곳이었다.

내가 입학할 무렵만 해도 그 근처의 카페들은 하나같이 칸막이가 되어있는 

구태의연한 모습이었는데 마리포사는 칸막이없이 그리 밝지도 그리 어둡지

도 않은, 그런 은은한 모습으로 나를 매혹시켰다고나 할까?

신입생들의 미팅이 성행하는 다섯시 이후가 아니면 언제나 한가하고 조용한 

음악이 흐르던 곳, 졸업생들이나 교수님쯤으로 보이던 지긋한 나이의 사람

들도 편안하게 찾던 곳..(그리고 여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편리함을 

제공하던 그 화장실...:)

88년부터 92년 9월까지 무려 4년 반동안 그 곳만을 애용했기에 이제는 학교 

앞에서 약속을 할때면 딱히 정할만한 장소가 없어져 버렸다..할 수 없이 대

용으로 이용하는 곳이 웬디스이니..쩝...

암튼..그만큼 좋아하던 곳이기에 추억도 많다...




확실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88년 4월 11일...네 번째 과팅을 하던 날..

마리포사 근처의 베르사이유인가 하는 곳에서 4 대 4로 상대편들을 만났

고..동전고르기로 파트너를 정하기로 했는데 역시 내가 고른 백원짜리 동전

은 네 개 중에서 최고였다..아마도 첫 눈에 반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경우는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싶은데...

여덟명이 떼지어 중국집에 몰려가서 저녁을 먹고(이때 내 파트너는 얘기를 

하느라 저녁을 거의 못 먹었다..난 듣느라..:)..그리고는 뭘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서 거리를 헤메다니다가 누군가의 '찢어지자'는 제안에 걸어왔던 길

을 거슬러서 마리포사로 향했었다...

국민학교때는 너무 수줍음을 타서(음..지금 이 말을 믿는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중고등학교 6년을 쭉 여학교만 다닌데다가 여대에 와서 남자들의 생

활이란걸 거의 모르던 나한테..신입생 환영회에서 선배들이 억지로 술먹이

는 얘기라던가 하는 것들은 얼마나 신기하던지..결국 열시 반이 되어서 종

업원이 문을 닫는다고 할때까지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얘기를 듣다가 집에 

돌아오니 열두시...버스 정류장에 나와서 날 기다리시던 아빠는 다음날부터 

내 통금시간을 일곱시 반으로 정해버리셨다...




그리고 수업이 일찍 시작해서 아침을 못 먹고 가던 날 공강시간에 가서 먹

던 마리포사 토스트..

열한시에 문을 열자마자 들어가서 제일 좋아하던 자리를 골라 앉아서 숙제

두 하고 친구한테 편지도 쓰고 잡지도 뒤적거리면서 보내던 시간들..(시간

을 그렇게 허비해서는 안 된다는걸 알게 된건 훨씬 후의 일이고..:)

하늘색 상의에 짙은 청색 하의로 된 제복을 입고 있던 종업원들은 언제나 

친절했다..(가끔 커피를 리필해주기도 했으니까..후후..)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아마도 90년도 가을이던가?

그 날이 여성학 마지막 수업이 있는 날이었는데 그 시간 전의 다른 과목들

은 전부다 휴강이어서 수업시간 전에 또 마리포사에 갔다가 그만 일어나기

가 싫어져서 그냥 눌러앉아 버린 것이다..

시간이 좀 흐른 후에 친구들한테 출석은 불렀는지(물론 안 부를 것이라 생

각했기에 빠져먹었겠지만...)..시험문제 얘기를 했는지 물어보려고 슬슬 강

의실로 갔는데....

윽~! 강의실이 빈 것을 보고 돌아나오려는데 뒤에서 들리는 소리..

" 학생~ 수업 끝났어요.." 바로 우리 여성학 강사선생님인거다...더군다나 

울엄마 대학 동기....

으...차라리 가지 말걸...괜히 다 끝나고 갔다가 얼마나 창피하던지....

쫍...

그래도 평소에 강사선생님한테 아는 척을 해 두어서인지..아니면 시험을 엄

청 잘 본건지..성적은 잘 나왔다...



아..마리포사가 없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오늘처럼 심심(이건 결코 할 일이 

없다는 뜻은 아님)한 날은 커피 한 잔을 시키고 넋을 놓고 앉아 있을 수 있

을텐데..



마리포사를 그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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