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w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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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wha ] in KIDS
글 쓴 이(By): blanche (이 상혁)
날 짜 (Date): 1995년08월21일(월) 11시16분04초 KDT
제 목(Title): [ 정신의 정적에 대하여 ]



 질문 : 당신은 왜 정신의 정적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까? 또한 이 정적은 어떤
       
       것입니까?


 크리슈나무르티 : 우리가 무엇을 이해하려면 정적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으면 그 때문에 우리는 이것저것 고민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 문제를 이해하려고 그것을 조사하고 분석하면서 엉망으로 만들어놓습니다. 

우리는 노력이나 분석이나 비교나 혹은 정신적인 투쟁으로 문제를 이해할 수 있을

까요? 정신이 정적해졌을 때에만 이해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근이나 전쟁,

그 밖의 인간 문제를 다루려고 분투하면 할수록 그만큼 문제를 잘 이해하게 될 것

이라고 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많은 전쟁이 과거 몇 세기를 통해서 계속되어

왔습니다. 또한 개인과 개인, 사회와 사회 사이에 투쟁이 있고, 내적 외적인 투쟁이

끊임없이 현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쟁이나 투쟁을 한수 더 높은 전쟁이나 교활한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혹은 우리가 정면으로 그런 문제와 사실에 직면할

때에만 그 문제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정신과 사실 사이에서 지나친 교란을

일으키지 않을 때 비로소 그 사실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무엇을

이해하려면 정신이 정적해져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당신은 물을 것입니다. "정신은 어떻게 해야 정적해질 수 있는가?"라고.

이것이 당신의 반응이 아닐까요? "나의 마음은 혼란합니다. 어떻게 하면 진정시킬

수 있을까요?"라고 당신은 말합니다. 그러면 방식이라는 것이 정신을 조용하게 할

수 있을까요? 혹은 교의나 훈련으로 정신을 침묵시킬 수 있을까요? 그것은 가능합

니다. 그러나 그렇게 정신이 조용해졌을 때 그것이 진정한 정적일까요? 그렇지 않

고 그 정신은 관념이나 교의나 말에 의하여 둘러싸여 있을 뿐이 아닐까요? 그 정신

은 죽은 정신이 아닐까요? 이런 이유에서 정신적으로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대개

죽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신을 조용하게 하려고 훈련을 쌓으며 하나의

공식 속에 자신을 가두어놓기 때문입니다. 그런 정신은 분명히 정적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억압되고 압살되었을 뿐인 것입니다.

 정신이 정정할 때 비로소 이해가 생긴다는 진리를 정신이 알았을 때 정신이 조용해

집니다. 내가 당신을 이해하려면 나는 당신에게 반발을 해도 안 되고 편견을 가져도

안 됩니다. 그리고 나의 결론이나 과거의 경험을 일소하고 당신과 직접 마주쳐야

합니다. 이와 같이 내 정신이 조건지어 있는 나의 배경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을

때에만 나는 이해하게 됩니다. 따라서 어떻게 정신을 조용하게 하느냐 하는 문제가

사라져버립니다. 진실만이 정신을 관념화 작용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그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정신이 소란해 있는 한, 이해력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정신이 침착해지거나 정적해지는 것은 의지력이나 욕구에 의한 행

위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 정신은 폐쇄되고 고립되고 죽은

정신일 것입니다. 그 때문에 이런 정신은 적응성도 유연성도 민첩한 움직임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런 정신은 창조적일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질문은 어떻게 하여 정신을 조용하게 할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하면

우리에게 제기된 모든 문제의 진상을 볼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람이 

멎었을 때 잔잔해진 호수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

에 소란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회피하기 위하여 우리는 정신을 침묵시키

려고 하는 것입니다. 정신이 이화 같은 여러 가지 문제를 투영해왔기 때문에 정신을

떠나서는 문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신이 감수성에 관한 생각을 투영한다든가,

어떤 정적의 형태 같은 것을 실천해보려고 하는 한, 그 정신은 결코 조용해질 수

없습니다. 정신이 정적해졌을 때에만 이해가 생긴다는 것을 인식했을 때 정신은 매우

조용해집니다. 이 정적은 강제나 훈련에 의한 것이 아니며, 소란한 정신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정적입니다. 정신의 정적을 찾아서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활동

적인 생활을 떠나서 시골이나 사원이나 산중으로 은거합니다. 혹은 관념 속에 파묻

히거나 귀찮게 구는 사람들을 피하고 있습니다. 그런 고립은 정신의 정적이 아닙니

다. 관념속에 정신을 파묻거나 귀찮게 구는 사람들을 피한다고 정신이 조용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축적을 통한 고립화가 아닌 자타 관계의 전체 과정을 완전히

이해함으로써만이 정신의 정적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축적은 정신을 노화시킵니다.

정신이 축적을 하지 않고 새롭고 신선할 때에만 비로소 정신이 정지할 가능성이 생

깁니다. 그 정신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고 대단히 생기있는 것입니다. 조용한 정신이

가장 활발합니다. 당신이 그것을 실험하여 그 속으로 깊이 들어간다면 그 정적 속에

는 사고가 전혀 투영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모든 레벨에 있어

사고는 기억의 반응입니다. 그리고 사고는 창조의 상태로 결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사고가 창조성을 표현할지도 모르지만 사고 자체는 창조적이 아닙니다. 노력의 결

과로 생겨나지 않는 정신의 침묵과 정적이 존재할 때, 당신은 그 속에 엄청난 활기

와 움직임이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활기나 움직임은 사고에 의하여

혼란된 정신으로는 결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정적 속에는 정식도 없고 관념도

기억도 없습니다. 이 정적은 '나'의 전체 과정을 완전히 이해했을 때에만 경험할 수

있는 창조의 상태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정적에는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어떤 결과

로서 생겨나지 않는 정적 속에서만 시간을 초월한 영원이 발견됩니다.



    blanche = white = WHITE = JA3 = EWHA ??
    
    ........................Don't tread me b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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