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Ewha ] in KIDS 글 쓴 이(By): july () 날 짜 (Date): 1994년11월03일(목) 23시43분46초 KST 제 목(Title):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있고 싶을때 혼자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얼마나 큰 행복일지... 다른 주에 비해서 한 시간 가량이나 늦게 오후 다섯시에야 수업이 끝났다.. 오늘 번역한 부분이 다른 때보다 어려워서 애들이 헤메기도 했고..교수님께서도 다른 날에 비해서 잡담(잔소리?)를 많이 하셨고.. 어제 밤샘을 해서 집에 돌아가 자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지만 언제부턴가 목요일 수업이 끝난 후에 전공생들끼리 간식(?)을 먹으러 가는 것이 습관이 된지라 일행을 쫓아갈 수 밖에.. 근데 오늘은 아무래도 간식으로 끝나지 않을 듯, 오리지날 분식에 가서 떡볶이를 먹자나? 대부분의 여자애들(?)과는 달리 나는 떡볶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순대는 좋아하지만.. 대학교 일학년때 몇 번 가보고는 안 가던 오리지날 분식..항상 천장이 낮고(실제로 천장이 낮았던 건지는 확신할 수 없다. 다만 내 느낌에 그랬다..) 캄캄해서 토굴속에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는데...이게 웬 일? 주위의 다른 가게들을 압도하는 새로 지은 건물, 환한 불빛. 격세지감. 당연히 값은 옛날에 비해서 엄청나게 비싸졌고..그래도 즉석 떡볶이와 튀김과 맛탕을 먹으면서 화기애애..오랜만에 좀 어려진 듯한 기분을 내보고.. 집에서 애기가 기다리고 있는 은주 언니와 다른 볼 일이 있다는 희경이 언니는 먼저 가시고..남은 애들끼리 차나 한 잔 마시고 가자고 해서 난다랑에 갔다.. 생각보다는 깔끔하고 괜찮은 분위기..담배피는 기지배들(!)만 없으면, 아님 최소한도 환기만 잘 된다면 더할나위없을 정도.. 남자친구, 사랑, 결혼, 性...원래도 똘똘한 애들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어쩜 저렇게들 하나같이 확실한 자기 생각을 가지고 뚜렷한 가치관을 확립하고들 있는 것일까..감탄하면서 듣기에 여념이 없는 나..근데 자꾸만 눈이 감긴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일곱시 오분전..화장실에 다녀와서 이제 슬슬 일어나자고 하는데 애들이 별 반응이 없다..얘기는 계속 진행돼서 강아지 키우는 일까지..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는 정희는 혼자 있기가 무섭고 외롭다고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데, 학교에 개를 데려올 수는 없으니 그게 문제..안 그래도 효정이네 개가 얼마 안 있어서 강아지를 낳을 거라고는 하는데.. 대강 얘기가 정리되어 가고 전부들 커피도 다 마시고...근데 정희 이것이 피곤한데 좀 쉬었다 가자나? 으..빈 방에 가봤자 할 일도 없으니깐 계속 여기서 개기자는 얘기다...나야말로 피곤해서 정신이 다 없는데.... 결국은 거기서 나온 시간이 여덟시. 먼저 나오기가 뭣해서 그냥 같이 있기는 했지만 정말 짜증이 난다...내가 이기적이라서 그런건지는 몰라도 내가 친구들한테 해줄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섰다는 느낌. 그리고 피곤해서 도저히 견딜수 없는 몸.. 요즘 들어서는 안 그래도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어서 피곤했는데.. 한 반년 전까지만 해도 학교 내에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어디를 다니건 맘이 편했는데, 요즘은 열댓명 밖에 안 되는 아는 사람들을 학교 안에서 어디를 가건 자꾸만 부딪혀서 혼자 있을 수가 없다..그냥 얼굴만 보고 있어도 좋은 사람하고가 아닌 이상은 난 사람 만나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암튼...그래서 여덟시가 넘어서 또 며칠 후인 외사촌 동생 진영이의 생일선물을 사러 아트박스와 씽크빅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면서 일기장을 고르고.... 한 30여분을 아무리 골라도 맘에 쏙 드는 것이 없어서 결국은 로열티 무는 거라 좀 찜찜하지만 베네통 것으로 사고 말았다... 그리고는 집에 오니 열시가 넘어있고..시간이 너무 늦어서 밥을 먹을 수도 없고.. 그래도 글을 쓰는 것이 내 즐거움의 하나이니 잠을 자야 하는데도 난 또 컴퓨터 앞에 앉았고...마약처럼 잠깐동안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설탕을 많이 넣고 꼬냑 까지 한 숟가락 넣은 진한 커피 한 잔, 속이 쓰린 것 같아서 계란 프라이 한 개.. 살이 찌는 건 다 이유가 있는거다.. 이제 생일카드를 쓰고, 선물을 포장하고, 보내는 김에 외할머니한테도 편지 한 장 쓰고 자면은 또 열두시가 넘을텐데...내일 소포를 부치면 아무리 빨리 가도 11월 9일이 넘어야 LA에 도착할테니 그것도 문제고....토요일날 사촌동생 결혼식에 예쁜 모습으로 참석하려면 잠을 잘 자 둬야 할 텐데 큰일이다..그래도 밤샘한 얼굴치고는 양호한 편이라 다행인가... 피곤하다...요즘들어서 엉망이 되어가는 듯한 생활과....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그렇지만 안 보고 살 수도 없는 사람들과...(그렇다고 내가 그들을 미워하는 건 결코 아니지만..)...점점 나를 옥죄어 오는 여러 문제들.... 그냥...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서 여행이라도 가고 싶은데.....이번 방학에 또 책을 새로 쓰실 예정인 교수님께서는 서울을 떠나지 말라고 벌써부터 엄명을 내려 놓으셨고.... 사는게 다 이런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