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Ewha ] in KIDS 글 쓴 이(By): child (:: 아리 ::) 날 짜 (Date): 1999년 10월 8일 금요일 오후 11시 17분 18초 제 목(Title): Re: 하루키에 열광하는 사람은 불안해 보 예전 썼던 글인데 제 스스로 펐습니다......:) ----------------------------------------------- [ books ] in KIDS 글 쓴 이(By): child (:: 아리 ::맧) 날 짜 (Date): 1998년01월05일(월) 01시10분14초 ROK 제 목(Title): 하루키.....(위 두 글에 대한 Re) 하루키를 이해하는 것은 일본사회의 현실을 살펴봐야한다고 생각 합니다. 제 생각에는 하루키의 냉소는 단순히 개인주의적이라는 말로는 다 표현하기 힘듭니다. 얼마전에 일본리포트 비슷한 TV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소제목이 꿈이 없는 일본의 젊은이들이였을 겁니다. 소위 일류대에 다닌다는 젊은이들조차도 '아니, 저게 꿈이야?'할 정도로 무력한 모습을 가 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일본 젊은이들의 전체 모습은 아니 겠지만, 적어도 일본에 있어서의 '하루키 열풍'은 그러한 일본 젊 은이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일본사회는 일본인들에게 어떻게 비추어지고 있을까요? 아니, 일 본인 '개인'에게는 어떻게 비추어지고 있을까요? 제가 일본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에 함부로 말하기 곤란하지만, 제 단편적인 느낌은 그렇습니다. 이미 완성되어버린 시스템, 사회라는 공적영역으로의 탈주가 불가능한 사회. 고도자본주의가 삶의 곳곳을 막아놓은 일본의 현실에서 숨통을 틀 수 있는 공간은 극히 개인적인 공간밖에 없습니다. '사회'라는 밖 로 나갈 수 없으니 안으로 깊숙히 침잠하는 수 밖에요. 이른바 '오 타쿠' 라고 불리는 타입도 이렇게 볼 때, 당연한 현상이며, '일본적 개인주의'의 또 다른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오타쿠가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극단적인' 개인주의 삶이라면 하루키의 매력은 이미 몇 십년 전에 개인주의적 탈출구,해방을 모 색했다는 점일 것입니다. 전공투. 하루키가 나오면 항상 나오는 얘기죠. 소설 속의 무기력, 허무는 이 거대한 공공영역에서의 좌절이라고 생각됩니다. 무기력 한 허무에 따르는 것은 자살, 아니면 냉소겠지요. 비록 하루키의 냉소가 매력적으로 들리지만, 그것은 결과에 불과한 것이고 정말 읽어야할 것은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현실 속에서 또다른 희망을 찾아가는 방법, 그리고 사랑의 방법이겠죠. 하루키의 소설을 변역한 유유정씨는 <댄스 댄스 댄스>의 해설에서 '재생'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분명히 하루키는 허무적이지만, 허무가 주는 아닙니다. 허무한 인간이 뭐하러 이리저리 자꾸 싸돌 아다닙니까? 주인공들은 허무하지만, 계속 허무하고 싶지는 않은 것입니다. 송두율교수가 한 말이 화두로 떠오릅니다. 큰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 이제는 작은 이야기에도 주의를 돌릴 때다. 하루키의 주인공들은 큰 이야기에서 좌절했고 허무해졌지만, 인간은 원래 허무에 길들여 지지 않는 존재이기에 계속 탈주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작은 이야기에서 탈출구를 찾아 헤매는 것은 모험이고 여행입니다. 왜냐 하면 지금까지 작은 이야기들을 구별짓고 질서화시키고 있던 큰 이 야기가 붕괴했기 때문이죠. 이제는 새로운 사랑의 방법, 타인과의 새로운 소통을 탐험하는 것이 <댄스댄스댄스>의 이야기라고 생각됩 니다. 따라서 키워드는 허무,냉소가 아니고, 또 유유정씨가 말한 '재생'보다는 신생(새로 태어남-젠장, 한자가 안되네)이 낫지 않을 까요?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있어서 하루키는 무엇일까요? 전 우리 사회 의 하루키를 부정적으로 봅니다. 하루키는 와봤자 별게 못되는 불 청객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우리가 일본의 시스템을 따라가고 있 고, 여러가지로 비슷한 성정을 가졌기에 계속가면 정말 하루키를 이해하게 될 지 모르지만, 아직은 우리가 그렇게까지 숨막혀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의 답답함은 '더이상 할 게 없어서' 가 아니라, '할 게 있는데 우선 산적한 다른 문제를 해결해야 하거 나' 아니면 '도데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때문입니다. 87년 이후, 급격한 대량소비문화로의 전환과 문화부분의 일부 자 유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놀 수 있는 자유가 생기긴 생겼는데, 뭐하고 놀아야하나 등등이 막막한 것입니 다. 그리고 그전까지 '우리'가 주류였지만, 이제는 '개인'도 생각 할 때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때 등장한 것은 하루키입 니다. 하루키 소설에 나타나는 특유의 '세련된 개인주의와 냉소'는 우왕자왕하는 젊은이들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갑자기 열린 텅 빈 공간을 채우려는, 이제는 우리로 충분하지않고 '나','개인'이 채워질 자리를 우왕자왕하는 사이 치 고들어온 찰나의 불꽃에 불과했지만, 이리저리 헤메는 이들에게는 그 찰나의 불꽃이야말로 하늘이 내린 신탁에 다름아니었죠. 멋지다 . 세련됐다. 뭐, 이런 것이었죠.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하루 키는 멋지고 세련된 것이랑은 거리가 멀죠. 이렇게 볼 때, 한국에서의 하루키 열풍은 문화의 부재현상이 가져 ~~~~~~~~~~~~~~~~~~~~~~ 온 군중심리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별별 일을 다 겪은 사람 ~~~~~~~~~~~~~~~~~~~~ 도 있으니 몽땅 한 부류로 취급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겠죠. 생각해보면 결국 한국에 유행하게된 것은 무엇입니까? 한 때 표절 시비까지 불러일으켰던 바로 그 하루키의 '문체','분위기'뿐 아닙 니까? 아, 중간에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만, 저는 우선 한국에서의 하루 키에 대해서만 말하고 싶습니다. 윗분들의 말씀도 그런 측면에 초 점이 있고 또 저도 아직 하루키의 책들 모두를 아직 못 읽었기에 하루키의 문학 전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 다. 어쨌거나 하루키의 탈주는 우리 사회에서 자유를 꿈꾸는 이들이 한번쯤 전율해 볼만한 탈주일 것입니다. 하지만, 전 그것이 적절한 탈출구라고 여겨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탈출구는 될 수 없죠. 적어 도 아직은. 우리가 우리 사회로 인한 진지한 고민과 고통, 방황, 좌절 끝에 난산한 허무가 아니고,개인주의가 아니고 우리의 냉소가 아닙니다. 그리고 영원히 우리 것이 될 수 없는 냉소였으면 하는 냉소입니다. 덧말 - 하루키를 좋아하는 분들이 열받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군중 심리란 말이 좀 그렇지만, 뭐, 다 나쁘다고 하는 소리 아닙니다. 99명이 어떤 것을 좋아하면 괜히 그걸 까대는 한 명이 있지 않겠습 니까........:) 아, 전 세현이 아닙니다.....X-) 난 끊임없이 누군가를 찾는다. metheus@iname.com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