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uksung ] in KIDS 글 쓴 이(By): gazebo (YoungBlood) 날 짜 (Date): 1998년 10월 22일 목요일 오전 03시 40분 16초 제 목(Title): 실습일기 10.21 -오늘은 결국 그 사람을 보내고 말았다. 예감했던 일이지만 가슴이 아리기만 하다...- 내과 끝난 후로 사실상 기가 모두 소진해 버려 차마 일기를 쓸 엄두가 안났다. 이제는 조금씩 힘을 되찾아 가는 기분이다. 정형외과와 진단 방사선과를 실습끝내고 지금은 정신과 4주 과정을 하고 있다. 이번주는 강남 시립 병원에 파견.... 오늘로 이틀째이지만 마치 2주가 흐른 듯한 착각이 든다. 열쇠로 열고 들어가서 반드시 열쇠로 잠가야만 하는 곳...바로 정신과 폐쇄 병동인 것이다.... 어제는 너무 낯설고 좀 경계가 되기도 해서 의국과 사무실을 왔다 갔다했는데... 오늘은 레크레이션을 준비해야할 것도 있어서... 환자들과 이야기도 하고 접촉을 많이 했다. 내가 지정 받은 환자는 한명은 조울증 환자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분열병 환자였다... 이 조울증 환자는 말을 안시켜도 지나치게 말이 많고 항상 떠있는 모습이다. -조울증이라는 것은 요즘 용어로는 양극성 장애를 말한다. 즉 조증과 우울증이 번갈아 나타나는 정서 장애를 말한다.- 다른 환자들의 일에도 참견하기를 좋아한다.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꼭 코미디언이나 연극배우를 보는듯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잘 연출한다. 다른 한 환자는 시선을 주면 애써 피한다. 자꾸 잘려고만 하고 약의 부작용탓인지 말도 상당히 어눌하다. 오늘도 제대로 대화를 시도해 보다 실패하고 말았다. 아직 난 대화 기술이 부족한 모양이다. 어제 산책시에 탈출을 기도한 환자가 있어서 병동 분위기 가 조금은 경직되어있다. 레크레이션을 준비하는데 자꾸 맘에 걸렸다. 오후에는 보호자들이 많이 면회를 왔다. 환자들은 들뜬모습보담은 상당히 차분한 자세로 그들을 맞았다. 갖힌 생활이라 그들에게 면회는 면회이상의 것이었으리라... 정신병이라는 것..... 환자자신에게도 그 가족들에게도 이보다 더 불행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엇다. 개인을 파괴시키고 가정을 파괴시키고 이세상에서 신에게 부여 받은 가장 소중한 이 두가지 것을 모두 흔들어 놓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정신병인 것이다. 더군다나 요즘 밝혀지는 상당부분은 이 질병이 유전성이 강하다는 것을 시사하기 때문에 자손들에게 까지 악영향을 미치기 까지 한다. 하지만 너무 부정적으로 보지 않을 것이 그래도 정신분열병이나 조울증등 주요한 정신병장애는 확실한 치료는 아니지만 상당부분 증상을 호전시키고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일 수있는 약들이 이미 존재하며 계속 개발중에 있기 때문에 그나마 희망을 가져 볼 수있겠다. 점심시간부터의 고민과 손놀림으로 대단치는 않지만 레크레이션의 준비를 모두 끝냈다. 이제 환자들만 오면 되는데 예정시간의 30분이 지나도록 환자들이 안보이는 것이다. 순간 차라리 안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가 준비한 것이 유치해 보이기도 했고 내가 진행할 부분에서 익숙치 않은 쇼맨십이 필요할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참고로 난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노래와 율동을 같이 하는것에는 영 닭살이다.- 그 때 같이 준비한 동료가 이말을 했다."왜이렇게 안오지 빨리 왔으면 좋겠어. 힘들여 준비했는데 즐거운 시간 가질 수있으면 좋은데..."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부끄러움이 있었다. 너무 소극적으로 내 자신만 생각했던 거다. 나를 위해 준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준비한 건데 너무 창피한 감정만 생각했구나... 그애는 참지 못하고 환자들을 데리러 병동에 올라갔다. 잠시후 열댓명정도의 환자들이 내려왔다. 병동에는 27명정도의 환자가 있지만 모두 도주나 다른 심각한 행동의 우려로 인하여 이 사람들만 내려온 것이다. 환자들을 모두 앉히고 오락회를 시작했다. 처음은 내 동료의 동요와 춤....웃고 있는 환자들을 보며 이런 재능이 있는 동료를 보내주신 신께 감사했다. 다음은 편을 가르고 가족오락관 같은데서 많이 하는 '이구동성'이라는 게임을 시작했다. 내가 진행을 맡았는데 처음의 어색함도 잠시 난 어느새 그들과 함께 웃고 즐기고 있었다.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었고 마지막으로 '철인 3종 경기'-밀가루 쟁반의 사탕먹기,빼빼로로 양파링 옮기기, 엉덩이로 풍선 터뜨리기-을 진행하였다. 우리들이 보기엔 유치하기 짝이 없을것 같은 이 경기에 그들은 사뭇진지하게 즐겁게 임했다. 서로 밀가루 묻힌 얼굴을 보며 한바탕 웃기도 하고 응원도 하고 초등학교때의 운동회 장에 다시 온듯한 착각이 들었다. 한 환자는 너무 기분이 고양된 나머지 자기 차례가 끝났는 데도 경기장에 뛰어들어 혼선을 빗기도 하였다. 이 환자는 조울증 환자였다. 오락회가 끝나고 무사히 환자들도 병동에 돌아갔다. 모두들 밝고 즐거운 모습.... 병원문을 나서며 친구가 말을 꺼냈다. "저 사람들 너무 순수하고 맑지 않니?..... 너무나 맑아서 너무나 상처를 잘입고 그래서 이렇게 병이 생긴 거겠지....정말 너무 가슴 아프다...." "그래.... 참 불공평 한 것 같지?.....나도 가슴이 아프구나..." 동감을 하면서 ,그런 마음을 느낄 줄아는 친구의 순수함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책에는 정신병이 생기는 여러가지 기전과 병리 현상에 대해서 기술되어있지만 이 순간에 그어느 것도 맞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아니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나도 순수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가을 찬바람과 더불어 조금은 깨끗해진 두마음이 노을속으로 총총히 걸어갔다......... ************************************************************* Rainy Days....... Never Say Good Bye....... gazebo.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