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gD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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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ngduck ] in KIDS
글 쓴 이(By): Milkyway (=밀키웨이=�€)
날 짜 (Date): 1995년10월11일(수) 11시45분21초 KST
제 목(Title): 바람을 맞는다는 것......


## 바람을 맞는다는 것

자정에 만나기로 한 사람을, 새벽 4시까지 기다린다는 것은

어쩌면 바보같이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바람의 기억이 유난히 차가운 이들에게는 그런 막연한 기다림이, 어쩌면

오리털파카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자위적 배려와(그래도

나는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는..) 상대방의 갑작스런 출현에 대한 준비(혹시,

상대방에게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등등....

특히나, 싸늘한 바람을 맞아본 사람일 수록 

다른 사람을 바람맞히거나 맞음으로써, 내가 실망하거나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한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런 것 같다.

.... 언젠가, 나도 싸늘한 바람에 감기?걸려 고생했던 적이 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비가 엄청나게 퍼붓던 어느 여름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 가만히 앉아 있을 때, 나는 뭐가 그리도 좋던지...

거울을 보고, 옷을 차려입고, 지갑을 확인한 후에  그 빗속을 바람같이

뚫고서... 어떤 사람과 만나기 위해 신촌까지 나갔다.

약속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신발도 다 젖고 옷도 많이 축축해졌지만, 그래도

그런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드디어... 약속시간 정각!

그 사람과 나는 만났고(그때가 3번째였던가 아마..?) 늦은 점심으로

간단히 서양식 빈대떡을 하나 먹고나서, 의자가 그네처럼 줄에 달려있던...

나에게는 그냥 하얀색으로밖에 기억되지 않는 어느 카페로 들어갔다.

즐거운 맘에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

  "저~~ 있잖아여~~~, 저 조금 있다가 아르바이트 가야해요..."


??? 왠 아르바이트? 나는 순간 당황해서 작은 눈이 똥그래졌다. 

이제 만난지 3시간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이게 무슨 소리람...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이렇게 말했다.

  "꼭 오늘 가야만 하는거니...?  오늘은 비도 많이 오고 그런데..나중으로 
   미루면 안돼?"

'비도 많이 오고..'라고 날씨 핑계를 댄 것은 아마도 '나'자신이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것을 피하려는 어떤 자존심 같은 이유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아르바이트를 가야만 한다고 다시 대답했고, 다른 모든 약속을

제쳐둔채 빗속을 아랑곳 하지 않고 거기까지 갔던 나로서는 조금...서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솔직하게 다시 말했다.

  "그냥.... 오늘은 나랑 함께 있으면 않될까.....?"

하지만, 나는 그사람의 같은 대답을 세번째 들어야 했고.....

결국 얼마 후 나는, 그 비내리는 황량한 신촌 벌판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지고 말았다.  여러 이유들이 나를 슬프게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 사람에게 있어서 '나'라는 존재가치가  2시간의 아르바이트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나를 극한의 한 점으로... 매우 초라하게 만들었다.

적어도, 나는 그 사람을 그렇게 대하지는 않았건만......

그 시간 이후, 그날 맞은 차가운 여름비와 바람?의 탓인지 감기몸살로 며칠

앓아 누웠다. 아픈 와중에 정신 없이 며칠이 훌쩍 지나고 난 후, 어느 맑게 

개인 아침. 학교 교정에서 나를 쓰다듬고 가는 바람을 맞으면서....

조용히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

............
.......


겨울바람이든, 여름바람이든....

바람을 맞는다는 것은, 조금은 슬픈 일이다.

이젠 바람을 맞기도 싫거니와, 또한 내 자신이 그런 바람같이 야속한 사람이

되는 것도 싫다.


새벽 4시까지의 기다림......

아마도, 나에겐 그 여름날의 기억이 남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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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_ _  ~~~~~   | Let the morning show me the sunlight in your eyes.  |
  \**\ ____\/\\.........| Let the night whisper me the words of your unfailing|
X*######+~~~\_\\        | love. For...I trusted up my soul to you. =Milkyway= |
    \__\     @Cessn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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