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gD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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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ngDuk ] in KIDS
글 쓴 이(By): smha (물하마)
날 짜 (Date): 1999년 3월 11일 목요일 오후 05시 23분 59초
제 목(Title): 청평사


웹에서 받은 자료입니다.

누군가 청평사가 좋다고 하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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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대간이 설악산으로 남진하기 이전 슬쩍 미시령으로 빠져나와 양구의 사명산과 
춘천의 오봉
산을 떨구었다. 그 오봉산(五峰山)의 본디 이름은 경운산(慶雲山),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은 
청평산이다. 언제부턴지는 분명치 않으나 다섯 봉우리가 열지어 섰다는 오봉산으로 
바뀐지는 그
리 오래지 않다.

  이 고장의 가장 유서 깊은 대찰 오봉산 청평사로 오르기 위해서는 소양호를 
건너야 한다. 춘천
시 동북쪽 동면 월곡리와 신북면 천전리 사이로 흐르는 북한강 지류를 막고 
소양계곡을 가로질러 
만든, 제방 길이 530m의 소양강댐이다. 이 댐으로 형성된 아름다운 호수가 소양호. 
소양호는 연간 
100만 명 가까운 관광객이 몰려들어 호황을 누리는데, 특히 멀리 양구.인제로 
떠나는 43.2km 구
절양장의 뱃길이 가을이면 절경을 이룬다. 이 소양호반에 자리잡은 청평사 역시 
소양강댐의 덕을 
톡톡히 본다고나 할까. 배는 쉴 새 없이 손님을 실어나른다.

  청평사를 품어안은 오봉산은 자연경관이 빼어난데다 산자락 한 끝을 그 맑고 
맑은 소양호에 터
억 담그고 있으면서 청평사 찾아가는 길손을 더욱 운치있게 반긴다. 뱃길에서 내려 
약 1km 정도
를 걸어 들어가면 어느새 절 초입에 닿고, 여기서 저 아래 뒷사람을 돌아보면 
두서넛씩 짝지어 
느린 걸음을 떼놓으며 활처럼 굽어오르는 모습 또한 그림같이 곱다. 다시 절을 
향해 시원한 계곡
을 곁에 끼고 울울한 숲길을 한가롭게 걷는 동안 마음을 새처럼 가볍다.

  시원한 물살이 떨어져 파란 못을 이루는 구성폭포를 지난다. 절을 저만치 위에 
두고 처음 만나
는 유물은 오른쪽 개울 건너 산등성이에 올라 앉아 첩첩 산중을 뚫고 빠져나가는 
골짜기를 바라
보는 아담한 삼층석탑, 일명 공주탑이다. 다시 길로 들어서면 왼쪽에 있는 오래된 
누각이 눈에 띄
고, 조금 지나면 진락공(眞樂公)부도가 있다. 선종 6년(1089)과거에 급제했으나 
관직을 버리고 이
곳 청평산에 들어와 선(禪)을 즐기며 은둔했다는 진락공(眞樂公) 이자현(李資玄)의 
부도이다.
  이들 부도를 뒤로 하고 몇 발 떼면 길 오른쪽에 그냥 별스럽지 않은 연못이려니 
하고 스쳐지나
기 쉬운 영지(影池)가 있다. 이자현이 청평사 주변을 방대한 규모의 정원으로 
가꾸면서 자연경관
을 최대한 살려 만든, 지금까지 밝혀진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고려정원의 한 흔
적이다. 사다리꼴로 가지런히 석축을 쌓고 바로 곁의 계곡물을 끌어 들인 영지 
안에는 큰 바위돌 
세 개를 놓고 그 사이에 갈대를 심었으며 연못에 오봉산이 비치도록 했다고 한다. 
거기서 조금만 
더 오르면 근래에 놓은 다리 선동교(仙東橋)못미처에 다 쓰러져가는 물레방앗간이 
있다. 역시 이
자현의 손때 묻은 고려정원의 잔영이다.

  거기서부터는 탁 트인 공간이 나오고 시야는 곧장 절터를 더듬어 오봉산 
봉우리에 꽂히게 된
다. 건물터로 추정되는 잘 다듬어진 석축엘 올라서면 하늘 높이 곧게 자라 천연의 
일주문 노릇을 
하고 있는 소나무 두 그루가 일품이다. 그 직선 앞으로 윤회를 상징하는 회전문이 
사천왕문격으
로 서 있고, 회전문에서 다시 일직선으로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이 안치돼 있다. 
대웅전 뒤편의 산
신각과 극락보전이 청평사 전각의 전부이지만, 대웅전 양 옆, 회전문 양 옆으로 
크고 작은 회랑과 
전각들이 촘촘히 들어섰을 정교한 축대와 초석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예전 
전성기의 청평사 규
모를 가늠케 한다.

  청평사는 한국전쟁 때 거의 소실된 것을, 1970년대에 전각들을 짓고 회전문을 
보수하고 범종각
과 요사채를 앉혔다. 지금은 회전문 앞과 뒤, 대웅전 사이에 반듯한 건물터들만 
쓸쓸히 남아 휑하
니 뚫린 느낌이지만, 이곳 읍지에 따르면 고려시대 청평사의 규모는 221칸이나 
됐다고 전한다.
  청평사는 고려 광종 24년(973) 승현선사(承玄, 또는 永玄禪師)가 창건하고 
백암선원(白巖禪院)이
라 불렀다. 구산선문이 한창 활발하던 그 시절 참선도량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절은 얼마 
안돼 폐사가 되었다가 문종22년(1068) 춘천도감창사(春川道監倉使)로 있던 
이개(이개)가 경운산의 
빼어난 경치에 감탄하여 옛 절터에 절을 다시 짓고 보현원(普賢院)이라 했다. 그 
뒤 이개의 장남 
이자현이 벼슬을 버리고 대를 이어 이곳에 와 머물면서 도적이 그치고 호랑이와 
이리가 자취를 
감췄다고 전한다.

  이자현은 그때 산 이름을 '맑게 평정되었다'는 뜻의 청평(淸平)이라하고, 자신이 
두 번이나 친견
한 문수보살의 이름을 따 절 이름을 문수원(文殊院)이라 했다. 또 전각 여러 채를 
짓고 견성(見
性).양신(養神)등 여덟 암자를 새로 세웠으며, 청평산 골짜기 전체를 사찰 경내로 
삼아 정원으로 
가꾸었다. 이 정원이 오늘날 고려정원의 기초이자 모법이며 가장 오래된 정원으로 
전해져 중요한 
자료가 되는 '문수원 정원'(文殊院 庭園)이다.

  원나라 태정황후는 성징(性徵).윤견(允堅) 스님 등이 바친 경전을 보내면서 이 
절에서 간직토록 
했고, 공민왕16년(1367)부터 2년여 동안엔 당대의 고승 나옹화상이 머물렀으며, 
조선 세조 2년
(1466)에는 매월당 김시습이 서향원(瑞香院)을 짓고 은둔한다. 명종 12년(1557)엔 
보우선사가 당우
를 새롭게 중건하고 능인전(能仁殿)을 수선해 절 이름을 
만수청평선사(萬壽淸平禪寺)라 했으며, 
숙종 37년(1711) 환성화상(喚惺和尙)이 전각과 요사를 중창했었다. 절 뒤편에 
고려시대 이 절에 
머물며 수도했던 환적당(幻寂堂)과 설화당 부도가 있다. 청평사터는 강원도 기념물 
제55호이다.

(이 글은  답사여행의 길잡이에서 전재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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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티 장소 물색중입니다..

좋은 곳이 있으면 추천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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