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omicsAnim ] in KIDS 글 쓴 이(By): porori (포로리) 날 짜 (Date): 1999년 5월 1일 토요일 오전 11시 04분 53초 제 목(Title): 에반겔리온에 관해서... 에반겔리온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는 말이 많은데, 그건 안노감독이 해놓은 일종의 '안개 효과' 때문입니다. 텍스트를 읽는 독자나 시청자가 명확히 일관되게 내용을 파악할 수 없도록 장면 장면 사이에 '논리적 비약'을 감행 하는 거죠. 아주 명료하게 보이는 모순들은 교묘하게 피하면서, 극중 인물들은 아주 잘 이해하고 있다는 암시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따라서 시청자는 극중 인물이 알고 있는 것들을 자신도 이해하고 싶어 안달이 나서 내용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철저히 분석해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수가 없습니다. 결국, 특정 부분 만을 분리해서 거기에만 집중, 해석을 합니다. 특히 자신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전 지식이 있다면 무의식적으로 그 지식 자체에 얽매이기도 합니다. 혹시 안노 감독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의도하지는 않았나 하는 거죠. (신화적 용어나 인물 이름을 사용한 부분, 25-26화의 신지의 내면 분석, 마지막 써드 임팩트때의 종교적 개념들 등등) 그런데 분리하는 부분은 사람마다 각각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들이 나올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안노 감독의 '안개 효과'는 내용 자체에만 집중한다면 쉽게 파악하기가 매우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아주 의도적인 것인지는 잘 모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부도 직전까지 몰렸던 가이낙스가 취할 수 밖에 없었던 지극히 상업적인 압력, TV판 25-26화로 말미암은 네티즌 오따쿠들의 격렬한 항의와 비난때문에 열받은, 그리고 무엇보다 뭔가 어렸을때부터 이상한 컴플렉스에 사로잡힌 안노 감독의 괴팍함 등등이 복합된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에바 TV판 25,26 화를 처음 봤을때, 문득 의심이 들었었습니다. 혹시 안노 감독 자신이 초반에 해놓은 기본 설정들을 뒷부분에서 감당못해 도망간게 아닌가 했던거죠. 25,26화 같은 것을 만들어 놓고, 1-24화는 자폐아에 가까운 신지 개인의 자기 각성 과정을 그린 일종의 '환상'일 뿐이라고 한다면 시청자들이 요구하는 미스테리의 해결에서 큰 무리없이 피해갈 수가 있는겁니다. 안노 감독이 여기서 에반겔리온을 마무리했다면? 그럼 저는 에반겔리온을 그런대로 괜찮은 작품이었다고 간주할 생각이었죠. 무슨 은하철도 999의 마지막 처럼 '소년은 어른이 되었다' 수준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냥 '꿈'이나 '환상'으로 마무리 하는 것 정도는 애교로 봐줄만 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신지라는 아이가 여러 신화나 종교 교육을 착실하게 받아서 다양한 개념들이 머리속에 뒤죽박죽 섞여있는 괴상한(?) 소년이었다는 설정이라면 대충 봐줄만도 한거죠. 그런데 첫번째 극장판(new 25화), 두번째 극장판(new 26화), LD판 21-24화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알몸의 아스카를 보고 신지가 수음을 한후 자책감에 빠져있는 장면등은 차라리 27화라면 모를까 new 25화라고 보기에는 너무 큰 비약이 아닌가 했습니다. 그런데 new 26화를 보니, 안노가 뭔가 억지로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끼워넣었다는 사실을 알겠더군요. '자신의 생물학적 존재 이유 vs. 성장하면서 보고 들은 sex에 관한 왜곡된 인식' 간의 괴리감이 아주 심각했던 모양입니다. 써드 임팩트? 서로의 마음의 벽(AT-Field)을 완전히 허무는 일종의 거대한 전 지구적 제사? 불교의 해탈? 거의 넌센스라고 생각했습니다. 초기 설정과 전혀 앞뒤가 안맞는 말도 안되는 결말이라고 보았습니다. 바로 저 부분 자체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몇몇 사람들의 그런 심오한(?)해석의 여지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만, 사도가 애초에 침입한 목적이나 네르프의 애초 목적, 바뀐 목적 등등과 맞춰본다면 아무래도 감독 자신이 즉흥적으로 '마구' 만들어낸 것이라고 밖에 결론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 24화까지만 보았을 때는 릴리스의 일족(인간)과 아담과 이브 사이의 일족(사도들)간의 아담을 사이에 둔 거대한 전쟁 정도로 나아가지 않을까, 또는 나디아의 아틀란타인들을 기본 창조주로 설정해놓고 이로부터 인간 창조 과정의 실험 작품 또는 가능성들간의 실체를 위한 아마겟돈 전쟁등등이 아닐까? 했습니다만 역시 나중 결말에 비추어 보면 앞뒤가 안맞죠. LD판 21-24화에서 다정하게 지내는 레이와 신지를 보고 아스카가 질투하는 장면을 새로 삽입해놓은 걸 보고, 첫번째 극장판에서 새롭게 그려놓은 그림들이 어느 부분이었던가를 면밀히 살펴본 후, 안노 감독이 그리 '작가주의적'인 사람은 아니라는걸 확신했습니다. *** *** 복잡하게 얘기했습니다만, 저의 결론은 zeo님과 거의 같습니다. (4화까지만 보고 그렇게 판단하시다니 놀랍습니다) 즉 다소 독특한 면이 있지만, 괴퍅한 감독의 손으로 만들어진 결국엔 평범한 로보트 만화라는 겁니다. 그런대로 재밌게는 봤습니다만, '좋은 작품' 목록에는 제외시켰습니다. 메카닉 하나는 훌륭하죠. 저도 프라모델로 몇개 만들어 뒀습니다. 차라리 20세기 마지막을 장식하는 세기말적인 좋은 작품이라면 <브레인 파워드>나 얼마전에 종영한 <카우보이 비밥>에 걸고 싶습니다. 아직 초반을 보고 있을 뿐이지만, 아주 감탄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