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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icsAnim ] in KIDS
글 쓴 이(By): blueBi (파란비)
날 짜 (Date): 1998년02월02일(월) 15시21분46초 ROK
제 목(Title): 아르미안의네딸들의주인공을통해본여성캐릭


 제목이 너무 길어서 짤렸네요.. 제목은 불멸의 신화 <아르미안의 네딸들>의
 네주인공, 그들의 인생을 통한 신일숙의 여성캐릭터 읽기..
 이 글은 만화잡지 'Nine'에 실린 신진아님의 글입니다..


   <여성만화 시대>
 
 대본소만화에서 순정만화 잡지 시대로 접어든지 10여년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잡지들이 창간되고 폐간되었지만 IMF시대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앞다투어 선보인 
 두 잡지는 적극적인 광고와 마케팅으로 만화의 위상을 실감케해주었다.
 특히 서울문화사의 나인은 순정만화라는 타이틀을 던지고 발전된 순정만화계의
 흐름을 반영 '여자'만화라는 카피와 함께 형식적인 변신을 시도하였다. 50년대
 의 "정"을 주제로 한 순정만화와 60,70년대 엄희자로 대표되는 순정(소녀)만화에서
 여성만화의 가능성을 피운 것은 80년대 초부터이다. 황미나를 필두로 신일숙,
 김혜린, 김진 등의 거목들이 정말 말그대로 새 역사를 창조했고 양적,질적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15년 남짓한 기간 동안 어느 매체보다 장대한 발전을
 이룬 순정만화는 여성만화로의 개념을 정립했고, 지난해 11월 명지대 사회교육원
 산하 만화학회에서 주최했던 세미나의 토론 주제는 '여성만화의 캐릭터는 과연 서구
 적인가' '여성만화는 오직 감성뿐인가' 이다. 순정이 아니라 여성만화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순정만화가 곧 여자만화라는 이미지의 연상을 
 고려할 때 같은 의미의 다른 표현이라고 볼 수 있지만 확장된 개념임을 부인할순
 없다. 또한 이는 성숙한 독자와 작가들의 자발적인 고민의 결과물이 아닌가.
 이제는 순정만화의 시대가 아니라 여성만화의 시대인 것이다. 이와같이 공식적인
 용어 전환에 독자들의 동의를 구하면서 여성만화시대를 연 대표적인 작가 신일숙
 탐색을 시작하도록 하겠다.

   <신일숙, 그녀의 주체성 강한 여성 캐릭터>

 신일숙은 여성 만화계의 대표 주자이자 상업성과 작품성, 인기 면에서 단연
 앞서는 작가이다. 데뷔작 <라이언의 왕녀>의 왕녀 라이아나는 그저 아름답기만
 하거나 남성의 세계에서 보조자 역할을 담당하던 기존 여성 캐릭터와 달리
 나라를 위해 사랑을 버리고 한 나라의 군주로서 우뚝 서는 강하고 냉철한 여성이다.
 이와 같이 여성만화의 전형을 깨고 등장한 주체성 강한 여성캐릭터는 그녀의
 화려하고 섬세한 그림체, 뛰어난 스토리 구성력과 함께 그녀의 작품을 언급할 때
 빠질 수 없는 핵심요소이다. <사랑의 아테네> <프쉬케> 등에서 볼 수 있는 사랑을
 갈구하는 아름다운 여성들 또한 그녀의 작품을 장식하는 또 다른 여성 캐릭터.
 그러나 신일숙의 여성 캐릭터는 전자의 이미지가 더 강하며, 후자의 여성 캐릭터
 들도 수동적으로 사랑을 받아들이기보다 스스로 찾는 적극성을 보여준다.
 90년대 들어서야 TV나 광고에서 주목하기 시작한 여성의 주체성을 신일숙은
 80년대 중반에 '전사의모습'으로 이미 독자에게 선보였다. 80년대 상황에서
 자아를 찾기 위한 여성은 전사가 될수 밖에 없었으리라. <아르미안의 네딸들>의
 샤르휘나와 마누아 그리고 <1999년생>의 크리스 등이 태표적인 80년대의 여전사
 캐릭터들이다. 특히 <아르미안의 네딸들>은 여성만화계에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방대한 스케일과 짜임새 있는 스토리, 갑옷을 입고 검을 든 여자 주인공의 등장은
 당시 독자들에게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작가 스스로 여자의 일생과 같은 의미로
 생각하는 이 작품을 네 가지 대표적 여성상을 제시하며 신일숙의 도발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첫사랑에 실패하고 운명에 순종한 여자 '스와르다'


 '영원히 이 사랑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한 채..새로운 길을 떠나갑니다. 신의 뜻이
  그렇다면 말없이 순종하렵니다.'
 자신의 가치를 사랑에 모두 건 스와르다는 작가의 말대로 가장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지 못한 인물이다. 리할의 사랑이 돌아서자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페르시아
 왕의 청혼을 받아들인 스와르다는 첫사랑을 극복하지 못한 어리석음으로 목숨까지
 잃게 된다. 그녀의 인생은 남편의 사랑이 존재하는 동안 최고의 명예를 누리지만
 남편의 사랑이 증오로 변하는 그 순잔 모든 것이 끝나버린다. 이러한 스와르다의
 삶은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남성에 의해 선택되고 버려지는 여성의 아름다움이
 여성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행운 또는 불행으로 작용했던 사회현실을 보여준다.
 또한 가장 아름답고 착하며 순종적이었던 여성이 비극적인 삶은 마감함으로서
 이러한 요소들이 여성에게 행복을 안겨준다는 신화를 깨고 있다.

     -인내와 용기로 행복의 열매를 얻은 충실한 내조자 '아스파샤'

 '당신의 아내로서 당신과 함께라면 이 세상 끝까지라도 기꺼이 갈거에요..바헬..
  저를 데려가줘요'
 아스파샤는 스와르다와 같이 사랑이 인생의 목표였지만 스와르다와는 대조적으로
 네 자매중 가장 행복한 삶을 산 인물이다. 스스로 사랑을 선택하고 그 사랑을
 긴 세월동안 참고 지켜온 그녀는 결국 남편의 사랑을 얻고 원하는 위치에서 행복한
 삶은 누린다. 스왈다가 첫사랑에 함몰되어 비극을 맞았다면 아스파샤는 첫사랑의
 기억을 과감히 버리고 변화된 상황에 맞게 자신을 변화시킴으로서 그를 얻게 된다.
 물론 남편의 기억상실을 사랑을 잃어버렸을 때의 아스파샤는 생의 목표를 상실한
 채 타인에게 전적으로 자신을 의지하며 자식도 포기하는 나약하고 비주체적인
 모습으로 독자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의 운명을 인내와 지혜로 헤쳐간 그녀의 모습은 동양 여인의 인고의
 삶을 연상시키며 숙연함까지 들게한다. 물론 그녀의 뛰어난 인술과 끈기, 지혜로
 인술인으로서의 자신의 삶은 개척했어도 참 잘 해냈을거라는 아쉬움이 남지만
 말이다.

 
    -운명을 향한 의지의 끊임없는 도전 '마누아'

 '내 운명을 조종하는 것은 나 그러니까 결국은 내가 감당해야한다. 결코 후회하진
   않겠다. 운명의 신따위는 이 않아! 나는 나 자신만을 믿는다'
 마누아는 샤르휘나의 타고난 운명을 거부하며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모든
 개인적인 가치를 희생하는 인물이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녀는 자신의 의지대로 레마누가 되지만 고독하고 불행한 여인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일관되게 자신의 의지를 고수하고 실천하는 그녀는 샤르휘나와는 또 다른
 전사이다. 선택받은자, 샤르휘나를 극복하고자하는 그녀의 처절한 투쟁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기득권을 가지는 사회통념을 거부하며, 여성에게 불리한 사회환경
 속에서 끝까지 싸워 나갈 수 밖에 없는 여성의 현실을 투영한다. 한편 자신의
 인생을 남편의 성실한 내조자로 선택한 아스파샤가 행뵉� 결말을 맞이한 것과 달리 
 자신의 길을 걸었던 마누아가 고독과 아픔 속에서 생을 마감한 것은 전통적 측면
 에서의 여성 행복론과 상통한다. 아직 여성 자아 실현이 힘겨운 현실이다.

   (이항대립으로 본 마누아와 샤르휘나의 상징적 의미)

      마누아 <----------> 샤르휘나
      선택받지못한자 <----->선택 받은 자
      현실 <----------> 이상

   -고난과 극복 그리고 운명의 주인공 '샤르휘나'

 '이것이 나의 운명이라면..오너라! 운명. 정면으로 상대해 주겠다. 절대로 겁쟁이가
  되지 않는다.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을테다!'
 <리니지>의 데포르쥬 왕자를 연상시키는 샤르휘나는 불새의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선택받은 구원자이다. 자신에게 닥친 현실을 열심히 헤쳐나가지만 목적 의식이 
 뚜렷하지 않아 카리스마를 가진 마누아에 비해 개성이 약하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자유로움과 사람의 의지를 가진 샤르휘나는 인생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
 는 사실을 길고 긴 방랑을 통해 말해준다. 그렇게때문에 샤르휘나가 운명을 극복
 했는가 아닌가라는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그러나 에일레스와의
 운명은 그가 신보다 더 강한 남성이라는 점에서 강한 여성은 강한 남성에게
 끌린다는 통념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한편 샤르휘나는 운명적으로 마누와와 대립관계에 있지만 '아르미안'으로 상징되는
 여성을 지킨다는 점에서 이 둘은 동지적 관계이다. 마누아가 아르미안으로 상징되
 는 여성의 힘을 확장시켜 나가려고 했다면 샤르휘나는 객관적 현실속에서 희망없는
 약자의 미래를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구원한 인물이다. 이와 같이 샤르휘나는 그
 당시 높은 가치를 찾아가는 여전사 그 자체로 충분한 의미를 가졌던 캐릭터이다.

   (이항대립으로 본 아르미안과 페르시아의 상징적 의미)

      아르미안 <-----------> 페르시아
      모계상속(여왕) <------------> 부계상속(황제)
      여성중심 <------------->남성중심
       약소국 <-----------> 강대국
      여왕:남편과아들을인정하지않음 <---->황제:일부다처

      <모계 상속의 아르미안과 부계 상속의 페르시아>

 부계상속이 제도화된 도시국가에서 모계상속의 아르미안은 강대국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있는 약소국이다. 아르미안은 페르시아보다 여성의 자유과 권리가
 보장되어 있지만 여왕에게 엄격한 지도자 상을 요구한다. 그예로 페르시아가 일부
 다처제로 황제의 사생활을 인정하는 반면 아르미안은 여왕의 가정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제도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누리기 위해 더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하는 현실을 말해준다.
 한편 리할은 아르미안의 여성상에 대해 다소 당황한 기색을 보여주는데 일반 남성의
 보편적인 여성관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나는 페르시아인으로 태어나 페르시아인
  으로 자랐다. 그러므로 당연한 귀결, 남자는 여자보다 우월하고 여자는 남자의
  보호아래 살아가야 한다는 사상이 머릿속에 박혀있다. 여자는 남자보다 유약한
  존재,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하지만 그렇지 않은 여자도 있는 것인가'
 마누아를 용서하지 않는 리할의 모습 속에 남성 중심의 사회가 마누아로 상징되는
 여성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함을 알 수 있다.

       <발전된 그녀들을 기다리며>

 80년대 신일숙의 주체성 강한 여성 캐릭터의 행렬이 90년대 들어 다소 주춤한 듯
 하다. <라이언의 왕녀> <아르미안의 네딸들>에서 <1999년생>, <나의 이브>등으로
 계속 전형파괴를 실천하던 여성 캐릭터의 모습을 최근작 <리니지>의 로엔그린
 공주가 이어받은 듯하지만 그 힘이 많이 약해졌다. 물론 작품 속에 캐릭터가
 존재하는 것이지만 만화가 얼마나 캐릭터 중심의 매체인가? 80년대를 휘젓던 
 신일숙의 여전사들이 각자의 한계를 딛고 얼마나 성숙된 모습으로 나타날지
 기대해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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