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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inemaPlay ] in KIDS
글 쓴 이(By): Zaharang ( 자하랑)
날 짜 (Date): 2006년 8월  7일 월요일 오후 06시 37분 38초
제 목(Title): 봉감독 인터뷰




Film 2.0에서 인터뷰를 했었네요.

음... 이런거 무단으로 퍼오면 안되는 거였던가.

개인적으로 노*자에 대한 감독 설명이 재밌군요.

http://film2.co.kr/people/people_final.asp?mkey=2496


* * *


<괴물> 봉준호 감독 인터뷰 
 
2006.07.18 / 최은영(영화평론가)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들의 각축장이자,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처절한 가족의 
어드벤처 <괴물>은 봉준호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영화다. 만드는 영화마다 전혀 
다른 외양을 통과하면서도 일정한 흔적을 남겨놓는, 봉준호표 영화의 리듬을 
물었다.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에서 <살인의 추억>, <괴물>까지 소재는 달라도 이야기 
구조엔 몇몇 공통점이 존재한다. 가령 이야기의 시작이 늘 '실종'으로부터 
비롯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실종의 모티브는 뭔가를 찾아 나서게 되는 여정으로 이어진다. 영웅과는 거리가 
먼 주인공들이 어쩔 수 없이 행동을 감행해야 하는 과정을 겪는 것이다. 그런 
여정들이 우스꽝스러워지거나 처절해질 때 자연스럽게 드라마가 나온다. 나에겐 
험난한 여정의 과정에 놓이게 되는 못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무의식적으로 
중심에 놓는 성향이 있다. 힘든 상황에 처한 만큼 캐릭터들이 더 못나 보이고, 
늘 한계에 부딪히는 과정이 드라마의 좋은 동력이 되는 것 같다. 

합동분향소, 독가스, 깃발, 카오스에 빠진 군중, 화염병 등은 철권통치 시대의 
직접적 도상들이다. 간헐적이고 무정형적으로 등장하는 이 도상들은 시대상황에 
대한 무의식을 건드리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어느 정도가 직접적인가의 기준을 잡기는 쉽지 않다. 화염병이나 시위나 가스 
살포는, 그것만 떼어놓고 보면 직접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스토리 흐름 
속으로 들어가서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눈덩이처럼 사태가 진전되며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그런 요소들을 추려서 비춰보면 
직접적일 수도 있겠지. 워낙 못난 가족들이라 미사일이나 대포를 쏘면서 싸울 
수는 없는 거고, 민방위 훈련 수준의 총이라든가, 대학시절 만져본 화염병 같은 
것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심지어 양궁선수까지 등장한다. <반지의 제왕>의 
레골라스처럼 처음부터 배두나가 폼을 잡으면 이상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남주의 첫 등장 장면이 양궁시합 중계방송이라는 리얼한 이미지고, 거기서 점점 
괴물과의 사투 쪽으로 드라마가 옮겨오게 되면서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고 본다. 남주가 양궁 활을 들고 괴물과 싸운다는 설정은 
우습지만, 리얼한 시합 장면으로부터 시작해 현서를 찾는 과정에서 늘 실수하다 
마지막 결정적 순간에 한 건 하게 되는, 그런 텍스트 안에서의 흐름이 
중요하다. 

괴수영화라는 장르를 빌려왔지만, 장르의 틀에서 벗어난 지점들이 있다. 괴물을 
퇴치하는 사람들의 비영웅성, 괴물에 대한 동정적 묘사 등은 괴물 뒤에 
어른거리는 한국사회의 괴물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인가? 
기존의 괴물영화와 달라지는 지점, 예를 들어 영화 시작한 지 15분밖에 
안됐는데 백주대낮에 괴물이 직사광선을 받으며 등장한다는 설정이 파격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사실 그건 부분적인 것이다. 가장 큰 차이는 보통의 
괴물영화들이 마지막까지 괴물에 집중하고 괴물에 관련된 신비감을 부각시키는 
데 반해, 이 영화는 괴물로부터 출발해 캐릭터나 그 캐릭터가 놓인 상황으로 
확장해 들어간다는 거다. 평범하다 못해 모자란 사람들이 괴물과 싸우는 것 
자체도 힘든데, 그 싸움을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뿐더러 상황은 딸을 
구해보겠다 발버둥치는 이들을 오히려 억압한다. 그것이 이 영화의 실질적인 
중심이다. 

영화 속에 가족이 등장하지만, 그 가족의 모습 또한 일반적으로 보이는 뭉치는 
가족이 아니라 끊임없이 서로 흩어지는 가족이다.
괴물도 일반적인 괴물이 아니듯 가족도 마찬가지다. 느슨하게 연결되고, 개념이 
더 확장된 가족이다. 가족 모두가 현서를 향한 강렬한 원초적 감정은 있지만, 
이들끼리 연결되는 지점은 별로 없다. 강두를 향한 희봉의 감정은 1세대가 
자식에게 보이는 원초적 감정이지만, 강두나 남일, 남주의 관계는 전혀 다르다. 
영화를 보면 강두와 남주가 대화하는 장면이 거의 없다. 단지 말이 많은 남일이 
이쪽저쪽이랑 아옹다옹할 뿐이다. 실제 가족들이 그렇지 않나. 몇째랑 몇째는 
몇 년째 말도 안 하고 사는 가족들도 많다. 모든 가족이 일일 연속극이나 
디즈니 영화처럼 똘똘 뭉치는 건 아니다. 가족이라고 제시되어 있긴 하지만 
그들의 연결고리는 따로 있다. 누가 누구를 보호한다, 먹여 살린다는 개념은 
<괴물>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며 가족보다 큰 개념이다. 중반부에 등장하는 형제 
앵벌이의 경우, 큰 애가 작은 애를 보호하고 있는데 작은 애가 현서한테 
넘어가게 되고, 그 바통을 이어받은 현서는 좁은 공간 안에서 자기보다 약한 
아이를 구하려 더 처절한 사투를 벌인다. 현서가 그 아이 세주를 감싸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세주는 살아나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누가 누구를 
보호하는가 하는 고리가 계속 묘한 구조로 연결되는 것이다. 강두 입장에서 
세주는 자신과 아무런 관계도 아니지만, 딸과 같이 있지 못하는 죄책감의 시간 
동안 세주가 딸과 함께했다는 사실이 중요했던 거다. 

실제 사건에서 취한 <살인의 추억>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시대성을 상정하고 
있는 반면, 판타지인 이 영화는 보다 직접적으로 정치적 상황과 연결되는 
지점들이 있다. 독극물을 살포하는 미군이나 이라크전을 암시하는 은유 등이 
그렇다.
바이러스 관련 이야기는 이라크전을 빗댄 것이며, 미군이 살포하는 에이전트 
옐로우도 베트남전에서 살포되었던 고엽제인 에이전트 오렌지를 옐로우로 바꾼 
것이다. 그냥 상식적으로 알 수 있는, 미국이 했던 여러 상황들을 시나리오 
흐름에 맞게 구사했다. 특히 오프닝 장면은 맥팔랜드 사건을 참조한 것인데, 
한강에서 괴물이 나오는 영화에서 미군이 독극물을 한강에 방류한 사건은 
영화의 오프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실제 사건이면서도 매우 장르적이기도 
한데, 5,60년대 할리우드영화에서 괴물의 탄생과 관련된 이야기들과 맞닿아 
있다. 할리우드판 <고질라>를 봐도 방사능을 쐰 탓에 괴물로 변하지 않는가. 
그러다 보니 미국 쪽 이야기 라인이 생겼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 주인공 가족이 
직접적으로 대응하지는 않는다. 유일한 대항이라고 해야 송강호가 발가락으로 
텔레비전을 끄는 정도다. 가족들은 그저 현서를 구하겠다는 강한 일념에 집중돼 
있을 뿐이고 그런 그들 뒤로 이런 상황들이 맴도는 거다. 아주 강렬하고 
직접적인 풍자를 원하면 답답할 수 있지만, 자연스런 풍자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하지 않을까 싶은데,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는 것 같다. 

<괴물>은 서울의 맥인 한강을 하수구에서 다리 밑까지 디테일하게 그려낸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한강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건 무엇인가?
한강 자체의 상징이나 역사적 의미를 이용하려 하진 않았다. 한국전쟁 당시의 
한강이나 한강의 기적이라고 일컬을 때의 코드화된 한강의 이미지는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괴물이 나온다고 했을 때 한강은 주인공들이 매점을 하며 사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듯 일상적 공간이다. 다시 말하면 괴물이 등장하는 곳으로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공간인 것이다. <에일리언>의 우주선이라든가 스코틀랜드의 네스 
호같이 으스스하고 신비로운 공간과 완전히 반대되는, 차들이 빵빵거리고 
자전거타고 사람들이 지나가고, 매점들이 너저분하게 있는 일상적 공간인데, 
거기서 괴물이 대낮에 튀어나왔을 때 받는 충격을 상상했다. 오히려 가장 
일상적인 공간에서 출발하고 싶었고, 대신 스토리가 변해감에 따라 그 공간도 
우리가 쉽게 보지 못했던 새로운 분위기나 어드벤처의 공간인 것처럼 흐름에 
따라 변해가길 바랐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두 가지 느낌이 다 있는 거다. 
괴물이 나오기 전엔 익숙했던 시민들의 공간이 군인들이 들어오고, 
오염구역으로 선포되고, 시위대가 몰려오고, 가스가 살포되면서 점점 낯설게 
변해가는 거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가장 독특했던 공간은 보일러실이었다. 이는 표면적으로 
보이지 않는 숨겨진 비밀스런 공간이지만, 전체를 움직이고 관통한다는 점에서 
<괴물>의 하수구와 상통한다. 일상적 공간이 위에 있고 그 아래 비밀스런 
어둠의 공간이 있다는, 말하자면 공간의 수직적 위계를 즐겨 활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수구뿐 아니라 지하 공간을 좋아한다. <플란다스의 개>는 고층아파트를 
소재로 하고 있다 보니 그런 위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살인의 추억>은 
농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그렇게 적나라하진 않았지만 경찰서의 경우 
멀쩡한 사무실 아래 좁고 긴 계단을 내려가면 음침한 지하 취조실이 있었다. 
<괴물>의 경우 한강에서 찍는다고 했을 때 수평적 공간을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실제로는 수직적 공간이나 운동성을 상정했다. 현서가 하수구라는 
수직적 공간에 갇혀 있고, 그 공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수직적 시도를 
한다. 옷으로 로프를 만들어 던지고, 실제로 매우 위험한 방법으로 탈출을 
시도하기도 한다. 때로 카메라는 도저히 올라갈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위쪽 
공간을 비춘다. 요컨대 수직적 절망감 같은 것이 존재한다. 또한 이 영화에선 
직부감 샷이 빈번하다는 걸 알 수 있는데, 합동분향소에서 인물들이 한꺼번에 
쓰러지는 장면은 코믹한 장면이지만 한편으로 완전히 그들을 내려누르는 샷의 
느낌이 있다. 좁은 하수구 틈새로 떨어진 남주, 교각을 오르내리는 괴물의 모습 
등 수직적인 느낌에 주안점을 뒀다. 그래서 화면비율도 2.35:1이 아닌 1.85:1로 
찍은 거다. 

영화 초반 괴물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슬로 모션이나 수평 트래킹 등 
스타일적인 면에서 <살인의 추억>의 현장 검증 시퀀스를 연상시킨다. 
관객들에게 괴물에 대한 최초의 인상을 전달하는 장면이기에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일 텐데, 어떻게 구상했나?
카오스를 연출하는 걸 좋아한다. <살인의 추억> 초반에는 이런 아수라장이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그때만 해도 움직이는 방향 같은 건 수평적인 느낌이 
강했다. 사실 감독 입장에서 전작의 느낌을 의식적으로 이어오려고 하진 
않지만, 카오스의 순간에 관객이 어느 한 부분에 집중해 영화를 봐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때 슬로 모션을 직관적인 방법으로 쓰는 것 같다. 대혼란이 고요한 
정적 속에서 보였을 때 모든 사람의 혼란과 광분이 조용한 음악처럼 등장하는 
낯선 느낌이 좋다. 그러면 실시간으로 흘러가는 샷에 비해 관객들이 사건을 
접하는 호흡이 달라진다. 그렇다고 슬로 모션을 자주 사용하는 건 아니다. 
<괴물>은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다시 슬로 모션이 등장하지만, <살인의 추억>은 
현장 검증 시퀀스가 아마 유일했을 거다. 

영화의 샷이 전체적으로 클로즈업이 많고 프레임 안에 인물들을 꽉 채워 넣는 
장면이 대부분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스펙터클과 스케일로 압도하는 
괴수영화들과 다른 지점이다.
영화를 절반으로 나눠 가족들이 흩어지기 전과 후에 찍는 방식의 차이가 있다. 
초반에는 몰려 있다가, 후반에는 광활한 공간이 펼쳐지며 클로즈업이 보다 
임팩트 있게 쓰인다. 영화 초반에 나왔던 타이트한 샷들과 달리 배두나가 정글 
속의 게릴라처럼 다리 밑을 다니는 장면은 보다 탁 트인 느낌으로 연출했다. 

박해일이 휴대전화 발신지를 추적하는 장면에서 허름한 세탁소와 고층 빌딩을 
한 컷에 잡는 샷이 있다. 이는 서울이 지닌 두 얼굴의 이미지를 극명하게 
잡아내는 동시에, 과거와 현재가 혼재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 시퀀스에서부터 남일의 개인 로드무비가 펼쳐진다. 거기서 보인 건물은 
SK텔레콤 건물인데, 서울의 빌딩 중에서도 매우 초현대식 건물이라고 한다. 
세탁소도 세트가 아니라 실제로 거기 있는 세탁소다. 그게 신기하고 재밌더라. 
가족들이 흩어지고 나서 남일이 혼자 있는 시퀀스가 처음 등장하는데, 관객들은 
시종일관 투덜거리고 신경질 내는 그의 모습만 보다 모처럼 입을 다물고 
조용해진 남일을 보게 된다. 이 장면은 그 인물의 과거로의 여정처럼 보이길 
원했다. 처음으로 한강에서 벗어난 남일이 시내버스를 타고 서울의 뒷골목으로 
가게 되면, 옛날 분위기의 세탁소가 나오고 거기서 옛날 운동권 시절 선배를 
만난다. 그 과정에서 남일은 양복에서 복학생 스타일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현재 잘 나가는 선배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간다. 이 
부분에서도 수직적인 모티브가 있다. 남일은 과거 잘 나가던 운동권이었지만 
지금은 대졸 백수다. 직장 문턱에도 못 가본 그가 잘 나가는 선배의 인도를 
받아 위로 올라가는 거다. 그리고 위층에서 사건이 벌어지고 다시 내려와 
수평으로 도망가다 다시 개천에서 수직으로 떨어진다. 그는 결국 개천에서 
시궁창으로까지 떨어져버린다. 이 장면은 영화의 흐름에서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굉장히 낯선 느낌을 준다. 가족들이 강하게 뭉쳐 돌진하다 아버지가 
비극을 맞이하고 흩어진 이후 그동안 있었던 일이 다 꿈처럼 스쳐 지나가는 
낯선 느낌을 원했다. 갑자기 광화문이 나오면서 시내버스 타고 마스크를 한 
남일이 등장하는 것이다. 결국 사건은 다시 한강으로, 현서로 수렴되는데, 
연극으로 치면 1막이 끝나고 2막이 시작되는 그런 느낌으로 연출하고 싶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유일한 주관적 판타지는 중반부 송강호의 꿈처럼 보이는 
매점 장면이다. 잡혀간 현서가 등장하는 이 장면을 굳이 넣은 의도는 무엇인가?
처음 시나리오가 나왔을 때 본 사람 중 하나가 이거 오타인가 봐요, 어떻게 
현서가 나와요, 그랬다.(웃음) 어느 투자사에서는 관객들이 혼란스럽다고 
빼라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고 가장 찍고 
싶었던 장면이기도 하다. 가족들의 마음이 시각적으로 압축돼 있는 거다. 먹는 
것의 모티브가 많이 등장하는데, 현서가 며칠째 굶은 거지? 하면서 병원에서 
탈출해 길을 떠났던 가족들도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한다. 그게 얼마나 자괴감이 
들고 현서한테 미안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감한 방법이긴 하지만 그런 
느낌을 대사로 표현하는 것보다 이미지로 보여주고 싶었다. 다음 장면에 컷이 
바뀌면 현서가 하수구에서 혼자 손으로 물을 받아먹으려는 장면이 있기 때문에 
관객들 입장에서도 그리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전체적으로 리얼한 상황들이 흘러가는 와중에도, 별다른 연계가 없는 생뚱맞은 
인물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무기를 전해주는 정체불명의 흥신소 직원들이나, 
후반부에 등장하는 노숙자가 그랬다.
흥신소 직원들의 경우는 필요에 의한 캐릭터였는데, 주인공들이 어떡하든 
병원을 탈출해 한강에 침투, 미션을 수행하려다 보니 암거래 같은 방법으로 갈 
수밖에 없다. 영화가 진행되는 리듬이나 속도 때문에 자세히 묘사되진 않지만 
분명히 아버지가 흥신소에 연락을 했을 것이고, 그런데 운 나쁘게 어둠의 
세계와 연결된 애들이 와서 카드째 다 빼앗아 가버린다. 사실 주인공들이 
병원을 탈출해서부터의 과정은 모든 걸 빼앗기는 과정이다. 흥신소에 돈 
뜯기고, 동전 뭉치마저 공무원에게 뺏기고, 마침내는 그들의 노정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간달프 같은 존재를 잃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필연성이 있는 
캐릭터라고 본다. 하지만 노숙자의 경우는 맥락이 다르다. 할리우드 오락영화에 
보면 원래 스토리에 없었다가 갑자기 등장해 클라이맥스에서 뭔가 활약하는 
인물이 간혹 등장한다. 어떻게 보면 약간 무책임한 인물인데, 그런 인물로 
생각하고 접근했다. 전혀 뜬금없는 인물이 나타나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전체 가족의 여정에서 보면 일관성은 있다. 가족이 
마주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배신하거나 등쳐먹거나 억압하는데, 딱 한 
명 도움을 주는 사람이 아무런 연고도 이해관계도 없던 사람인 거다. 그저 
심심하니까 도와준다는 아이러니가 재미있었고, 남일 시퀀스에만 국한해 
생각해본다면 잘 나가는 대학 선배를 만나 위로 치솟았다 처절한 배신을 당하고 
내려와 수직으로 곤두박질치는데 거기서 그 노숙자를 만난 거다. 그는 남일을 
대충이나마 거둬주고 재워준다. 윤제문 씨가 리얼하게 잘해줘서 역할이 많이 
살았다. 사실 분장을 약간만 해도 너무나 잘 어울렸다.(웃음) 

캐릭터들을 좀 더 부각시키고 싶진 않았나?
<괴물>은 시추에이션이 강한 영화다. 그 시추에이션의 속도나 흐름의 리듬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인물에 대해 조금씩 알아갈 수 있게 하고 
싶었다. 도입부 시퀀스에 박해일은 아예 나오지 않고 사고 후에야 비로소 모든 
가족들이 모인다. 이미 사건이 터진 가운데 캐릭터들이 하나씩 합류하며 그 
과정에서 캐릭터의 면면을 살짝 엿보게 된다. 인물의 묘사를 멈추지 않는 
상황의 흐름 속에서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과거사를 설명하려 든다거나 인물의 
설명적인 면을 보여주려 집착하게 되면 점점 그게 내러티브의 발목을 잡고 전체 
리듬이 망가진다. 그래서 포기할 부분은 포기하고 밀어붙였다. 괴물이 등장해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 영화의 경우 그런 리듬을 놓치면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르적이지 않은 장르 영화를 두 편 찍었는데 이런 스타일이 계속될까?
나에게 장르란,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화두로 그걸 풀어가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어떤 장르에 기대거나 어떤 장르인 척하는 게 낫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영화라는 게 투자건 캐스팅이건 소통되거나 전달되는 방식에서 
장르와 같은 카테고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편의상 
모든 것을 진행시키기 위해 장르의 핑계를 대는 거지 장르의 컨벤션, 스타일을 
추구하진 않는다. <살인의 추억>의 경우 연쇄살인 스릴러인 것 같지만, 소재가 
된 실제사건 자체가 그걸 해체시킨다. 그나마 이번 영화가 가장 상대적으로 
장르적인 영화가 아닐까 한다. 일단 괴물이 나오니까. 현재 장편을 두 가지 
정도 준비하고 있는데 그에 앞서 옴니버스 프로젝트가 있다. 도쿄를 배경으로 
4명의 감독들이 20분 정도 분량으로 만든다. 연말이나 내년 초쯤 들어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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