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다



저희가 전에 소경 되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예수께서 진흙

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 어떻게 보

게 된 것을 물으니 가로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

다" 하니 바리새인 중에 혹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

나님께로서 온 자가 아니라" 하며 혹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

을 행하겠느냐?" 하여 피차 쟁론이 되었더니, 이에 소경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

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

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한대, 유대인들이 저가 소경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이는 너희 말에 소경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되어 보느냐?" 그 부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

가 우리 아들인 것과 소경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그러나 지금 어떻게 되어 보는

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저에게 물어 보시

오. 저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

로 저희를 무서워함이더라. 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저가 장성하였으니 

저에게 물어 보시오'하였더라. 이에 저희가 소경 되었던 사람을 두번째 불러 이

르되,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줄 아노라"대답

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

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저희가 가로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저희가 욕

하여 가로되, "너는 그의 제자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

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그 사람

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이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

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

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 내어보내니라.


성경은, 우리가 신령한 세계를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을 통하여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절뚝발이는 영적으

로 절뚝발이 된 자의 모양을 우리에게 나타내주고 문둥병자는 죄인된 우리의 모

습을, 열병은 괜히 주님보다 앞서서 인간적인 열심을 내는 부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소경은 영적으로 눈이 어두워 전혀 영적인 세계를 분별

하지 못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세상에는 앞을 못보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육신

적으로 눈이 가리워져서 앞을 못보는 사람도 불쌍하지만, 영적으로 눈이 어두워

서 신령한 세계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정말 불쌍한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9장에

는 날 때부터 소경되었던 자가 눈을 뜨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고 8장에는 간음

한 여자가 예수님 앞에 나와서 죄 사함을 받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으며 그 앞

의 7장에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앞에 놓고 마음에 혼돈을 일으키는 모습을 기록하

고 있습니다. "이가 선지자다" "아니다. 그리스도가 어떻게 갈릴리에서 나겠느

냐? 그리스도는 베들레헴에서 난다고 했다"고 하면서 온통 혼돈을 일으키고 있습

니다. 즉, 8장의 죄 사함이 이루어지기 전에, 다시 말해서 구원함을 받기 전에 

사람들의 마음에 혼돈이 온다는 이야기입니다. 진리의 빛이 비추어졌을 때, 지금

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진리의 빛이기 때문에 옳다고 귀하다고 느끼면서도 한쪽으

로는 '아닐는지 몰라' 하는 그런 혼돈 속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7

장은 혼돈에 빠져 예수님이 죄인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고 그렇다고 참 

선지자라는 확신도 없는 뒤죽박죽이 된 상태로 결말없이 각각 다 집으로 돌아가

는것으로(요 7:53) 끝이 납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 상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

니다. 즉, 죄 사함을 받기 전에 우리의 마음에 혼돈이 온다는 것입니다. 멸망으

로 가는 사람이 자기가 멸망으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고 옳다고만 생각하고 계속 

그 길에 머물러 있다면 혼돈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멸망으로 가는 사람이 참된 

진리를 만나게 될 때, 혼돈을 일으키게 됩니다. 만약 여러분의 마음에 가지고 있

는 것이 참된 진리라면 무엇에 부딪힐지라도 혼돈이 될 수가 없습니다. 진리는 

확실한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흔들릴 수가 없지요. 어떤 이야기에 흔들리고 있다

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라 거짓된것이라는 증거입니다. 만약 흔들릴 것이라면 빨

리 흔들려서 정착이 되어져야 합니다. 이 땅에서 흔들리는 것은 빨리 흔들려져서 

다시 정착이 되면 되지만, 그 나라에 까지 가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흔들린

다면 그 때는 고칠 수도 없고 돌이킬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

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막 2:10)고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죄 사

함을 받는 것은 이 땅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혼돈 가운데서 8장의 

간음한 여자가 구원을 받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것은 우리가 죄 사함을 받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난 후, 9장에서 날 때부터 눈 먼 소경이 눈을 뜨는 이야기

가 나오는데 이것은 죄 사함을 받고 나면 영적으로 눈이 밝아진다는 이야기입니

다. 여러분, 9장에서 이 소경이 눈을 뜨고 나니까 금방 환하게 압니까? 모릅니

까? 이 소경은 아마 학교도 안 다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눈이 뜨여지니까 

서기관들이나 대제사장들이 이 사람을 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확실

하게 거듭나게 되면 영적인 눈이 뜨여져서 참과 거짓을 분명하게 구별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드리려고 하는 이야기는 소경으로 있다가 눈을 뜬 사람의 부모에 관한 

것입니다. 이 부모에게 유대인들이 와서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났다하는 너희 아

들이냐? 그러면 지금 어떻게 되어 보느냐?" 하고 물었어요.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세 방향으로 물었습니다. 즉, 이 사람이 당신들의 아들이며, 소경으로 태어난 것

이 사실이며, 어떻게 눈이 뜨여졌느냐하는 것이지요. 그 부모들이 말하기를 "이

가 우리의 아들인 것과 소경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그러나 지금 어떻게 되어 보

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저에게 물어 보시오 저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자기들의 아들인 것과 소경을 난 것은 인정하는데 눈을 뜨게 된 것

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것이지요. 왜 부모가 그렇게 대답했습니까? 몰라서요? 아

닙니다. 왜 부모가 모릅니까? 눈을 뜨는 장면을 보지는 못했겠지만 실로암 못에 

가서 씻고 눈이 뜨여져서 기쁨으로 집에 돌아온 아들을 만났습니다. "아버지! 어

머니!제가 눈을 떴습니다!" 그 부모와 얼마나 감격적인 순간을 가졌겠습니까? 그 

어머니가 아들을 껴안고 아마 울었겠지요. 아버지가 묻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눈

이 뜨여졌느냐?" "예, 아버지, 예수라는 분이 눈에다 진흙을 바르더니 실로암 못

에 가서 씻으라고 하기에 씻었더니 내 눈이 뜨여졌습니다" 이 정도는 충분히 상

상할 수 있지요? 이 부모는 어떻게 눈이 뜨여졌는지 분명히 알았습니다. 최소한 

"내가 보지는 않았지만, 우리 아이가 말하기를 예수라는 분이 눈에 진흙을 발라

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해서 씻었더니 눈을 뜨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정도는 대답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왜 그

랬을까요? 무서워서? 예, 맞습니다. 22절에,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음으

로 저희를 무서워함이더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양심은 '예수가 내 아들의 눈을 

뜨게 했다'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서워서 거짓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인간들은 자기 자신을 자기가 방어하려고 하는 습관 속에 빠지게되

었습니다. 인간들이 자기 자신을 방어하려고 하는 마음을 가진 그 날부터 인간의 

마음 속에 두려움이 작용하기 시작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 속

에도 많은 두려움이 엄습해 온 사실이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명백하게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으로 부터 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어떤 문제에서든지 간에 두려워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으로 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 두려움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왜 사단은 우리에게 두

려움을 일으키려고 합니까? 어느 성경학자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사람이 죄

를 지어도 그것이 죄인 줄로 양심에 느끼는 죄가 있고, 양심에 느끼지 못하는 죄

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 살인하게 될 때, 그것은 나쁜 것

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아도 율법이 없어도 간음

하거나 도둑질하는 것이 나쁜 것이라는 것을 인간들은 잘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이 나쁜 것인지를 알지는 못합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 잘못된 줄로 그들은 느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

까? 그들은 하나님이 되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에 거슬리는 것이 

어떤 것인 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않는 사람도 인간이기 때문에, 

내가 남을 때렸을 때, 마음이 아픈 것은 내가 남에게 맞은 경험을 갖고 있기 때

문에, 내가 느낀 그것 때문에 마음에 가책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내가 남의 물건

을 도둑질했을 때, 왜 그것이 나쁜 것이라고 느끼느냐 하면 남이 내 물건을 도둑

질해서 물건이 없어지면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나쁜것인 줄 알

고, 간음이 왜 나쁘냐 하면 내 아내가 남에게 욕을 당했을 때 마음에 고통을 느

끼기 때문에 간음이 나쁜 것인 줄을 알고, 살인이 나쁜 것임을 아는 것은 내 가

족이 남에게 맞아 죽을 때의 마음의 아픔을 알기 때문에 살인이 죄라는 것을 압

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다거나 다른 신을 섬긴다든지 안

식일을 지키지 않는다거나 하는 하나님을 향한 죄를 우리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

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피

해를 보는 것에 대해서는 가책을 느끼지만 우리가 피해를 보지 않는 것에 대해서

는 죄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려워하는 것이 죄악인 줄 

잘 모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두려워 한다고 해서 이것이 피해가 되지 않거

든요. 그런데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 보니까 지옥가는 죄 가운데 제일 먼저 나

오는 죄가 두려워하는 죄라고 기록되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

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인간들이 죄를 짓게 되는 가장 근본적인 것은 두려움 때문입니

다. 어떤 사람이 처녀를 강간하고 난 후,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강간하고 

사람을 죽이는 일이 있습니다. 왜 죽입니까? 자기가 범한 죄가 발각이 되어 형벌

을 받을까 두려워서 죽이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 속에 정욕은 강간을 하게 했고 

두려움은 살인을 하게 한 것이지요. 사람들이 도둑질을 왜 합니까? 돈이 없을때 

닥칠일을 생각하면 두려워서 도둑질을 하고 강도를 하는 것입니다.요즘 아이들은 

바캉스 가려고 그러기도 합니다만, '우리 아이가 대학에 합격해도 등록금이 없으

면 대학에 못들어 가겠지? 우리 아이가 대학에 못가면 어떻게 하나'하면서 그 두

려움 때문에 강도를 하는 것입니다. 왜 거짓말을 합니까? 정당하게 이야기하면 

되는데 '이렇게 말하면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하며 두려워서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두려워하는 것이 죄가 아닌것 같지만 대부분의 죄악은 두려움에

서 일어 나더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성경 속의 부모가 예수님이 그 아들의 눈을 

고친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말하지 못한 것은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예

수님이 우리 아들을 고쳤다고 이야기 한다면 유대인들이 나를 유대교에서 출교를 

시키겠지'하는 두려움이 그 마음에 임했을 때, 그는 마음에 없는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구원받은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 오셔서 모든 두

려움을 온전히 쫓아내어 주었지만 사단은 끊임없이 그 마음 속에 두려움을 집어

넣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한번 살펴 보십시오. 사단이 틈만 있으면 여러분의 

마음에 두려움을 집어 넣고 있습니다. 두려움이 여러분의 마음 속에 들어 왔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속에 충만해 있어서 그 두려움이 사라지면 괜찮은데 

그 두려움이 마음에 남아서 살아 있다면 여러분의 마음을 나약하게 만들어서 아

주 형편없는 겁쟁이 그리스도인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26절,'저희가 가로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눈을 뜨게 하였

느냐?' 이제 소경되었던 사람이 하는 이야기인데 들어보십시요.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확실히 수준의 

차이가 나지요? 그 앞에서는 더 합니다. 24절 - 25절,'이에 소경 되었던 사람을 

두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것은 내가 소경

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저쪽은 많이 공부를 하고 많은 사람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고 이쪽은 거지 소경이었는데 이

런 지혜가 어디에서 나왔겠습니까? '그가 죄인인 것은 내가 모르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을 있다가 지금 본다' 그 말이지요. 그 다음 28절, 29절, '저희가

욕하여 가로되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고 하니

까 이 소경이 뭐라고 합니까? 30-34절, '그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이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

다.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

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함

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 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얼마나 담대하고 경우에 맞는 이야기인지 그들이 말을 못하도록 

막아요.

마귀는 두렵게 해서 우리 속에 위축감을 줍니다. 그래서 두려워서 주저앉는 사람

은 그것으로 끝나버리고, 반대로 믿음으로 담대히 나간 사람들은 그 때마다 하나

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능히 승리하도록 인도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

면 주님이 여러분에게 귀한 열매를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 믿음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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