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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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snuiwa (큰바우얼굴()
날 짜 (Date): 1996년04월28일(일) 10시29분42초 KST
제 목(Title): 고고학으로 본 구약 속의 역사 (14)






     이스라엘의 광야생활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하고 율법을 수여받은 이스라엘 백성들

은 부푼 꿈을  안고 가나안을 향하여 전진했다. 그들이 가나안의  남쪽에 있는 

바란 광야의 가데스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지파 수대로 열두 명의 정탐꾼들을 

가나안에 보내어  40일 동안 땅을  탐지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부정적인 


정탐꾼들의 보고로 인하여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순종함으로써 40년의 세월 동

안 광야에서 방랑하다가 모두 죽고 말았던 것이다.

   가데스 지역에는 오늘날 세 개의 샘이 있는데, 그  중 한 지역은 지금도 가

데스라고 불려지고 있고, 가장 좋은 샘은 '아인 엘  쿠데이랏'(Ain el-Qudeirat)

이라고 하는 곳이다.  이들 샘이 있는 지역에서 모세와 그의  백성들이 머물렀

을 것이다.

   출애굽한 구세대가  죽고 신세대가 성장하자,  모세는 에돔 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왕의 대로(大路)를 통과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부탁하였다

(민 20:17). 왕의 대로는 요단 동편 지역과 아라비아 사막  사이에 남북으로 길

게 형성된  도로로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부터 다메섹을  거쳐 길르앗 지역을 

통과하여 홍해 아카바  만의 에시온 게벨에 이르는 도로이다. 이  도로는 대상

들의 이동 경로로 애용되어  왔으며, 로마 제국 시대에 포장되기도 하였고, 오

늘날 여전히 요르단 정부에 의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에돔 왕의 거절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회하여 요단 건너편 아모리 

왕 시혼의 땅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시혼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의 대

로를 지나는 것을 거절함으로써 전쟁을 하게 되었고, 결국 정복당하고 말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세를  몰아 시혼의 땅 북쪽에 위치한  바산 왕 옥(Og)도 

정복한 후 모압 평지에 진을 쳤다.

   이때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  백성을 심히 두려워하여 강변 브돌에 사는 

발람을 청빙하였다. 여기에서의  강은 유프라테스 강을 말하며  유프라테스 강 

상부 지역에 브돌이  있음을 확인되었다.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여러 

사물의 징조를 보고 점을 치거나 예언하는 점술사, 곧 바루(baru)의 활동이 성

행하였는데 발람의 행동은 고고학적 조사 결과로 나타난 바빌로니아의 바루의 

행동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기도 전에 왕궁

을 형성하고 있던 에돔과 모압이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것이다.

   넬슨 글룩(Nelson Glueck)이라는 고고학자가 1930년대와 40년대에 걸쳐 트

랜스 요르단 지역을 탐사하였다.  그는 토기 파편을 중심으로 암몬과 모압, 에

돔의 고대  유적들과 거주 연대를  조사하였는데, 주전 13세기 이후에나  도시 

및 왕국의 존재가  인정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견해에  따라면 이스라

엘의 가나안 정복은 에돔이나 모압의 왕국 성립 이후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출

애굽의 시기도 주전 13세기 이후로 늦추어질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출애굽 연대를  무한정 늦추어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페

트리(W.F. Petrie)가 1896년  테베에 있는 메르넵타(Merneptah) 왕의  무덤 사

원에서 그가 이룬  업적을 찬양하는 글귀가 적힌 기념비를 발견하였다.  이 기

념비는 메르넵타 석비 또는 이스라엘 석비(The Israel Stele)라고  불리는 것으

로써, 고대 이집트의 기록물 가운데 최초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언급된 석

비로 유명하다. 이후로 성경 외에서 이스라엘이란 명칭은  400년쯤 지난 후 앗

시리아와 모압 석비에서나 나타나고 있다.

   이 석비에는 리비아와 하티(힛타이트)를 비롯하여 팔레스타인의  여러 도시

들이 점령된 사실과 함께,  "이스라엘 민족은 황폐해졌다. 그의 후손은 멸절되

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은 아직 정착된  국가의 형태로 표현되고 

있지 않지만, 메르넵타  왕이 그 정복을 자랑스러워 할 만큼  위협적인 세력으

로 존재하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전쟁은 메르넵타  재위 5년(B.C. 

1220)에 이러어 졌으므로  아무리 늦어도 1220년 이전부터 이스라엘이 팔레스

타인에 정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상인, 1996, {고고학으로  본 구약속의 역

사}, 예인, pp. 6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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