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snuiwa (큰바우얼굴() 날 짜 (Date): 1996년04월25일(목) 10시18분55초 KST 제 목(Title): 고고학으로 본 구약속의 역사 (3) 가인과 문명의 시작 창세기의 원역사를 고고학적 시대와 접목시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작업 이 아니다. 현재 인류 문화는 도구 재료에 의해 구석기 시대, 중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로 발전해 왔으며, 생계 수단에 의하면 수렵 채집 경제로부터 농업 생산 경제로 변화해 온 것으로 여겨진다. 가인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음을 볼 때 그가 살던 당시의 모습이 신석 기 시대 이후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농업의 시작은 차일드(G.V.Childe)가 명명한 것처럼 "신석기 혁명"으로 일컬어진다. 급격한 환경 변화와 갑작스런 인구 증가는 농경 생활을 야기시켰고, 그로 인해 혁 명적인 문화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변혁을 성겨Е의 낙원 추방 사건과 연관시켜 보는 것도 무의미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인류는 하나님이 마련해 주신 천연적인 식량으 로 살아가다가 낙원 추방 이후 이마에 땀을 흘리며 땅을 경작해야만 했는 데, 문화사적으로 수렵 채집 집단이 농경 집단으로 바뀌면서 유사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다. 흔히 수렵 채집 사회는 먹을 거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는 비참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 거주에 가장 가혹한 지역으 로 손꼽혀지는 칼라하리 사막의 부시맨을 연구한 리차드 리(Richard Lee)는 부시맨들이 우리의 통념과 같이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아니라 하루 몇 시 간만의 활동으로 자신들의 생계를 충분히 해결하고 하루의 대부분 시간을 여가 활동에 보내고 있음을 관찰하"여 수렵 채집 사회를 "원천적으로 풍족 한 사회"라고 주장한 것이다. 어쩌면 인류는 원천저으로 풍요한 에덴에서 추방된 후 셩계의 안정을 위 해 땀을 흘리면서 농사를 지었을 것이다. 농경은 생활의 안정과 더불어 정 착 생활로 이끌었다. 정착 생활은 인구의 증가를 가져왔고, 증가된 인구 가 운데 직접 생산에 참여하지 않는 일부 사람들은 점차 잉여 생산물을 보관하 거나 필요한 자원을 교환하는 데 종사하는 전문적인 장인 집단으로 발전하 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궁극적으로 사회의 계층화를 유발시키고 도시의 발달과 국가 발생에 이르는 문화적 진전을 낳게 하였다고 보여진다. 성경은 가인이 놋 땅에 정착하여 성을 쌓고 여러 대에 걸쳐 다양한 직업 을 가지며 번성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은 도시의 시작과 직업 의 분화에 관한 문화사적인 암시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이들이 하나님을 떠나 살면서 문명이 시작되었다 는 점이다. 가인이 야웨의 앞을 떠나 놋 땅에 거하였고(창 4:16), 아담의 다 른 아들인 셋의 후손에 이르러서야 야웨의 이름을 부른 것이다(창 4:26). 이 런 점에서 오늘 문명이 얼마나 하나님을 찾고 사모하게 해주고 있는지 생각 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가인의 후예가 세운 세계 최고의 도시는 어디일까? 현존하는 최 고의 도시는 여리고로 여겨진다. 주전 9천 년경부터 여리고에는 사람이 거 주하였고 7천 년경에는 성벽과 망대로 둘러싸인 거주 지역이 나타난다. 이 보다는 좀 �뮐嗤� 터어키의 남쪽 코냐 고원에 위치한 촤탈 휘익에서 주전 6,500년에서 5,650년에 걸쳐 존삭한 고대 도시가 발굴되었다. 이곳에서는 40 개의 신전이 발견되었는데, 많은 남녀 노소의 신들이 숭배되었고 신전의 제 사장들을 중심으로 통치되는 신정 체제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야웨 하나님을 떠난 인류들은 각지로 흩어지면서 문명을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한상인, 1996, {고고학으로 본 구약속의 역사}, 예인, pp. 22∼ 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