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김 경 수) 날 짜 (Date): 1996년02월11일(일) 17시43분23초 KST 제 목(Title): 꿈 꾸는 자, 요셉 (* 작년 이 맘때 제가 회지를 통해 후배들에게 쓴 글입니다. 혹, 당시의 저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분들께 도움이 될까 해서 올립니다. 그리고 이 글이 제가 한국에서 올리는 마지막 글입니다. 조만간 미국에서 자리를 잡은 뒤에 계속해서 이 kids를 통하여 여러 분들과 함께 믿음의 소망을 나누고 싶습니다.*) 꿈 꾸는 자, 요셉 사랑하는 나의 후배들에게 비록 지면으로나마 함께 말씀을 나누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합니다. 또 나의 처지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가운데에 서 이 글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하심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이는 시련 가운데에서 나의 말과 생각이 정화되고 걸러져서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 더욱 분명히 드러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최근 제가 기도하고 묵상하는 인물인 꿈 꾸는 자, 요셉에 대하여 깨달은 바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물론 여러분 중에는 이미 요셉에 관하여 성경을 통해 잘 알고 계시는 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 요셉이, 수 많은 성경의 믿음의 인물 들 중에서도, 저와 여러분에게 더욱 깊이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깨우쳐주는 인물이라고 믿습니다. 요셉의 일생을 가만히 묵상해보면, 참으로 택하신 자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의 놀랍고 신비스러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의 손길이 닿기 전 요셉의 처음 행동들은 다소 겸손하거나 신중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뭇 형들을 제치고 아버지 요셉의 사랑을 독차지한 가운데에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그가 형들과 부모보다 더 높이 될 것이라는 자신의 꿈을 좀 더 신중히 발설하였더라면 그토록 형들의 노여움을 사는 일은 없었을 거라는 추측도 해 봅니다. 그러나 어찌보 면 순진한 마음에서 요셉은 그가 꾼 꿈의 내용을 부모와 형제들 앞에서 거침없이 얘기해 버립니다. 그 결과가 어떠한 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홀로 채색옷을 입었던 요셉은 형들의 시기를 촉발하여 목숨은 간신히 건지지만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노예신세로 전락합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은총으로 요셉은 시위대장의 집에서 형통한 자가 되어 주인의 신임을 받고 온 집안을 다스리는 가정총무가 됩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주인의 아내의 무고한 모함으로 그는 요즈음으로 치면 '강간미수'라는 매우 부끄러운 죄명을 뒤집어쓰고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에 갇히우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기서도 함께 계셔서 요셉은 간수들에게 은혜를 얻고 옥중의 모든 일들을 처리하게 됩니다. 자 지금까지 고생만 해온 요셉에게 하나님은 어떠한 길을 예비하셨 을까요? 바로 그 감옥에 어느 날 갑자기 두 명의 귀한 관원들이 죄수로 갇히게 됩니다. 그들은 애굽왕 바로의 술과 떡을 맡는 관원들이었습니다. 요셉은 이들의 꿈을 해몽하여 주면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의 해몽대로 사흘 뒤 술 맡은 관원은 복직되고 떡 굽는 관원은 죽임을 당하여 시체가 매달리게 되었음을 우리는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복직된 관원의 탄원으로 요셉은 누명을 벗고 감옥에서 나올 수 있는 길이 보일 듯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결과를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지 않고 잊었더라. [창 40:23]"라고 간단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일 성경에서 요셉에 관한 이야기가 여기서 끝난다면 우리는 요셉으로부터 어떠한 교훈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고, 아마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뢰도 커다란 의혹의 도전을 받았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곧 이어 "만 이년 후에∼"라는 구절로 요셉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대로 요셉의 꾼 꿈의 내용이 실현되어 애굽의 총리 요셉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모든 무리가 애굽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 것으로 끝맺게 됩니다. 여기서 몇 가지 질문을 여러분에게 던지고자 합니다. 만일 요셉이 노예로 팔려가는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면서 애굽의 시위대장 집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과 불만 가운 데에서 생활했더라면 그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또 가정총무가 된 후, 현실과 타협 하여 자기 주인의 아내와 동침하였더라면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요셉을 사랑하셨더라면 술 맡는 관원을 통해서 그를 즉시 감옥에서 구하실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다면 요셉의 삶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보다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과정들을 거치지 않고 즉시 요셉의 꿈을 이루실 수도 있으셨을 텐데 왜 이러한 처절한 연단의 과정을 허락하셨을까요? 제가 말씀드리기도 전에 여러분은 질문에 대한 대답들을 다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할 것이 있습니다. 위에서 몇 줄에 요약한 요셉의 삶은 젊은 날 실제로 매우 혹독하고 처절한 연단의 과정이 끊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아무 죄도 없이 컴컴한 감옥에 갇혀 다만 몇 시간이라도 지낼 자신이 있습니까? 나의 억울함을 호소할 데도, 내 처지를 알아 줄 사람도, 또 그 언젠가는 반드시 나아간다는 보장도 없이 말입니다. 물론 저는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습니다. 아마 요셉도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가 그 인생의 밑바닥에서, 끝이 없어보이는 고난의 와중에서 하나님을 좀더 잘 알게 되고, 또 그럴수록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꿈을 확고히 붙잡게 되었음을 저는 감히 확신할 수 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더라면 성경에 요셉은 지 금 우리가 아는 바와는 전혀 다른 인물로 기록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그는 하루 아침에 중죄수에서 당시의 세계 최강대국 애굽의 총리로 부상하였음에도 흔들림없이 맡겨진 모든 일을 담대히 처리할 수 있었고, 더 중요한 것은 어린 시절 자신의 꿈을 아무 생각없이 발설하여 형들의 시기를 받던 그가 이제는 그 꿈이 이루어진 상황 속에서도 더 겸손히 그의 형들을 대하고 모두가 화합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침내 요셉의 꿈은 이루어졌고, 하나님도 원하시는 그릇을 구워내셔서 당신의 뜻을 달성하실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제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어느새 결혼과 함께 간사직을 그만두고 학업에 전념한 지도 벌써 1년이 넘었습니다. 그 동안 저는 프로젝트 수행 및 논문 투고 등의 크고 작은 일들을 통해 지금까지 연속적으로 여섯 번의 좌절을 경험하였습니다. 아직까 지 단 한 번의 기쁜 소식도 저에게 주어진 바 없습니다. 비록 요셉의 그것과 감히 견줄 수는 없으나, 몇달을 밤새워 작성한 수십 페이지의 논문들이 휴지통으로 들어가고, 수 천 만원 대의 프로젝트가 중도 탈락되는 등,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실패의 소식이 잇 달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의지하는 말씀, 곧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라 는 하나님의 음성을 붙잡고, 또 수 많은 믿음의 선진들의 삶을 묵상하며 넘어질 때마다 일어나 지금 일곱 번째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론 때가 되면 간증으로 밝힐 많은 일들을 그 연속되는 실패의 와중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은밀히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그 중에는 내가 아는 것도, 그리고 미처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과 같이 내게 주신 하나님의 꿈을 내가 버리지 않으며, 좌절하지 않고 성실히 행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꿈을 이루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좌절을 통해서 저는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느낍니다. 즉,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 시련을 허락하시어 모든 티끌과 결점들을 없이 하시고 당신의 아름다운 그릇을 빚어 내시는 그 손길을 말입니다. 여러분도 누구나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크고 작은 꿈들을 꾸고 계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약간의 시련만 닥치면 그 꿈을 꾸기를 포기하는 자가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갈수록 자신의 꿈의 크기를 줄이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혹은 꿈을 이룰 생각은 해 보지도 않고, 수시로 꿈을 바꿔 꾸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때마다 합당한 이유가 늘 우리를 따라다닙니다. 그러나 만일 그 꿈이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라면 우리는 늘 그 꿈을 꿀 뿐만 아니라,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나의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시련이 끝없이 몰려올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그 꿈과 자신의 현 상황이 너무나도 아득히 멀어서 자신이 생각해도 스스로 바보같이 여겨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마십시오. 요셉도, 수 많은 우리의 믿음의 선진들도 그러했으니까 말입니다. 과연 누가 감옥에 '강간미수' 죄로 갇혀 있는 한 히브리 노예가 어떻게 하루 아침에 세계 최강대국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을 주시며, 그 꿈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 또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의롭고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고 또 그 가운데에서 행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주신 당신의 꿈을 우리를 통하여 이루실 것입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95년도의 새로운 학기가 시작됩니다. 분명히 올해에도 하나님 께서는 우리 한사랑과 또 여러 형제, 자매들에게 당신의 놀라운 꿈들을 부으실 것입니다. 저도 관악에서 열 한 번째 맞는 올해에 많은 꿈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하나님 께서 저와 여러분이 만날 때에 우리 각자의 마음에 넘치는 기쁨의 간증들을 예비하여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마지막으로 꿈 꾸는 자, 요셉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글을 맺고자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환난과 시련도 다 그것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있음을 깨닫고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시 105:17∼19]"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과 여러분의 삶 속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이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1995. 2. 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