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HAYANNIE (쇠고기카레) 날 짜 (Date): 1996년02월06일(화) 13시09분33초 KST 제 목(Title): 선악과의 의미 선악과로 인한 타락에 이르는 내용을 담고 있는 창세기 3장은 그 타락 자체가 주제라기 보다는 이 한 나무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있어서의 사랑과 순종이라는 "관계성"입니다. 아담이 직면한 시험은 하나님이 만드신 악의 나무와 하나님이 만드신 선의 나무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이 아닌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악의 '나무'는 전혀 만드시지 아니하셨기 때문이죠. 만일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불순종할 수 밖에 없도록 프로그램화하셨다면, 그 대 우리는 힌두교의 사상과 같은 개념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힌두교에서는 결국 선과 악, 잔인과 관용이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나왔기 그러나 하나님은 악을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하나의 나무를 만드신 것입니다. 이 나무에 다른 나무와 다른 본질적인 어떤 요소가 있었던 것도 전혀 아닙니다. 그보다는 하나님께서 단순히 인간에게 하나의 선택에 직면케 하시기 위한 도구였죠.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이 강은 건너지 말고, 저 산은 오르지 말아라."고 하실 수도 있었지만 그 분께서 하신 말씀은 "너는 하나의 자율적인 존재가 아니라 피조물로서 너의 위치에 서서 나를 믿으라. 하나의 피조물로서 너는 너의 창조주인 나를 믿고 사랑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형통하리라. 이것이 내가 너를 위해 만들어 준 위치란다."란 뜻이죠.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에 악의 가능성도 만드신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가능성이지 이를 행동화하는 것은 분명 다른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가능성을 두면서 동시에 선택을 유효하게 하셨고 인간을 인간으로 대우하신 것이죠. 즉 인간은 이로서 역사 속에서 의미 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 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 대저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샀으므로 공의가 굽게 행함이니이다" (하박국 1:2-4) --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