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김 경 수) 날 짜 (Date): 1996년02월05일(월) 18시00분04초 KST 제 목(Title): 새벽기도 지금 실험을 하느라 모니터를 멍청히 보고 있는 시간이 많아서 무언가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기에 이렇게 또 글을 띄웁니다. 새벽기도... 참 저와는 거리가 먼 단어였었죠. 물론 선교회를 이끌고 열심히 활동하던 시절에는 학교의 써클룸에서 새벽기도회를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7시. 새벽기도라고 부르기에는 뭐한, 즉 아침기도라고 부르는 것이 좋은 그러한 기도 모임이었습니다. 그나마도 어찌나 참석하기가 힘들던지, 참으로 육신의 연약함을 절감하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몸은 힘들어도 학교에 일찍 나와서 하루의 첫시간을 주님과 함께 시작한 날의 기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상큼함 바로 그것이었죠. 사실,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교조와 신도, 절대적인 창조주와 하찮은 피조물, � 이러한 도식적인 관계를 뛰어넘는 서로 사랑하는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의 그것이라고 성경은 거듭 거듭 비유해서 이야기하고 있죠.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를 해보신 분이라면 아마 그러한 감정을 잘 알 수 있을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힘든 것도 물불을 안가리고 해주고 싶고, 남이 무어라 해도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참을 수 있는 그 어떤 뿌듯함이 늘 마음 속을 채우는 그러한 상태... 모르는 사람들은 손가락질하지요. xxx가 여자(혹은 남자)를 사귀더니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어. 약간 돈 사람 같아. 그냥 하루종일 히죽이 웃고, 무슨 일이 생겨도 룰루랄라야.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그러한 좀 바보 같은 사람이 되 보신 적이 없습니까? 그러한 경험이 있는 분은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 이해하시겠지요? 그렇습니다.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사실 그러한 것입니다. 실제로 그 분은 우리가 그 분을 알지도 못하고, 우리 자신의 죄에 빠져서 이 세상을 덧없이 헤맬때에, 이미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십자가에서 내어주신 그런 분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논리적이고 지식이 많고 지혜가 하늘을 찌를 듯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자식, 자신의 아내에 대해서까지 그렇게 대할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겁니다. 내가 성경의 모든 구절을 통달하고 그 모든 내용에 막힘이 없다하더라도 주님과 나 사이에 바로 이러한 사랑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은 우리 주님과는 무관한 하나님 나라의 유업에 전혀 분깃이 없는 사람입니다. 오늘 아침에 화장실에서 잠깐 기독교 강요 상권을 다시 한 번 볼 시간이 있었습니다 (저는 주로 화장실 갈 때에 책을 많이 읽습니다. 좀 지저분한 얘긴가요?) 거기에 캘빈의 이러한 구절이 눈에 확 들어오더군요.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에 대해서 믿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증명하고자 할 지라도 그것은 무익하고 소용없는 일이며, 미친 짓과 같다라는... 그 이유는 우리 자신부터가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 분을 믿으며, 그 분의 말씀이 진리라는 결단을 내리게 된 과정이 우리 자신의 지혜와 판단으로 그리 된 것이 아닌 온전히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신적인 지혜와 은총으로만 가능했다는 것 때문입니다. 사실 제가 그러했던 사람이지요. 먼저 하나님을 믿으셨던 어머니가 성경 말씀을 인용할 때면, 제가 조금 더 안다는 것을 이용해서 논리적으로 그것도 어머님의 말씀을 반박하고 마구 무찔러서 하나님이 없다는 결론을 내어 어머님의 마음을 무척 아프게 해 드리던 것이 지난날의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이후 어머님은 큰 며느리이 셨기 때문에 제사문제로 많이 갈등하시다가 지금은 천주교에 안착하셨습니다. 묘하게도 어머님의 영세명은 그 말썽많은 자식으로 인해 애태우던 또 하나의 어머니, 곧 "모니카"입니다. 이 분이 누구의 어머니이신 줄은 여러분이 더 잘 아시겠지요.) 그러하던 제가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곧 진리이며 예수님이 진정으로 나의 구주시며, 바로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게 된 것이 과연 인간의 논리와 지혜와 판단으로 가능할까요? 한번 반문해보겠습니다. 여러 분 중에는 조금 나이가 드셔서 저와 같이 결혼한 분들도, 아니면 연애를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렇다면, 왜 지금의 아내를, 지금의 여자친구(남자친구)를 선택하셨습니까? 논리적인 이유를 대실 수 있습니까? 이 세상에 많고 많은 남자, 그리고 여자 중에 왜 하필이면 지금 나와 함께 사는 아내요, 여자 친구인지를... 대답할 수 없다고 걱정하지 마세요.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정상이 아니지요. 사랑은 말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만일 그러하다면 우리의 부모님들은 왜 그리도 말썽많은 우리들을 끝까지 보살피고 우리로 인해 걱정하며 마음 아파하실까요? 말 안들으면 그냥 부자간의 관계를 끊고 말 잘듣는 다른 사람을 자식으로 삼으면 될텐데 말입니다. 저는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의 비밀이 바로 이러한 사랑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관계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이해될 수 없는 비밀말입니다. 이 보드에 많은 글들이 오가는 것을 보면서 정말 하나님과 이러한 비밀스런 관계에 계신 분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합니다. 이러한 관계에 있지 않다면 어찌 그 분이 나의 구주라는 고백을, 어찌 나의 인생을 그 분 안에서 살아나가야 겠다는 결심이 나올 수 있을까요? 이 글을 읽으시는 하나님의 사람 여러분, 저는 이 글을 아직 하나님과 이러한 관계에 있지 아니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쓰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도저히 이해될 수 도 없고, 이해하려 � 하지도 않을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며, 또한 우리가 하나님과 그러한 관계에 있다고 해서 자랑할 아무러한 근거도 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로 말미암은 것이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에 있는 비밀안에서 그리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여러 사람들과의 논쟁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겨서 정작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는 드릴 시간이 없는 그러한 사람이 되지는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작년 이맘때에 박사학위 졸업과 관련한 큰 문제에 부딛혀서 제 아내와 함께 한달 작정으로 새벽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한달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요즈음에는 프로젝트와 출국 준비로 인해서 매일은 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늘 연구실에서 메마른 생활만을 하던 제 모습이 조금이나마 달라졌다면 이 새벽기도 덕분이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이 새벽기도는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막 1:35]"라는 우리 주님의 모범을 따라서, 제가 아는 바로는 (최자실 목사님의 "나는 할렐루야 아줌마였다"와 제목이 정확히 기억이 안나는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일종의) 전기에서 70년대에 있었던 지금까지도 가장 큰 그 분의 전도집회로 여겨지는 여의도 광장에서의 집회를 언급하는 부분에 나옴), 우리 한국의 교회에서만이 전국적으로 지켜지고 있는 자랑스런 신앙의 유산입니다. 물론 요즈음의 바삐 돌아가는 세상응� 환경 속에서 예전보다 이를 실행하는 것이 훨씬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도 곳곳의 교회를 나가보면 어지간한 교회는 수십명, 순복음교회와 같은 대형 교회는 수천명이 새벽 4시에서 5시부터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그러한 모습을 볼때마다 많은 도전을 받는 데, 왜냐하면, 젊은이, 그 중에서도 남자들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중년 이상의 나이드신 분들 (아주머니, 할머님 등이 아마 8-90%는 될겁니다.) 이 날마다 그 먼 길을 와서 미명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은 말만많고 기도하지도 않으며 행하기는 더욱 게으른 저에게 엄청난 충격을 줍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교회는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보이는 어떠한 건물과 제도와 앞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날마다 자신들의 눈물을 뿌려가면서 나라와 민족과 교회를 위하여 먼저 기도하는 이 들에 의해서 지탱되어짐을 믿습니다. 혹 이글을 읽는 분 중에 아직 한 번도 새벽기도를 나가보거나 구경한 적도 없는 분들은 결단하고 한 번 가까운 교회의 새벽기도에 나가보세요. 아마 그 광경을 보기만 해도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너무나 학생, 청년, 장년의 남성들이 눈을 씻고 보아도 안 보일 정도로 없다는 것이 저자신을 포함해서 매우 부끄러웠습니다. 분명 가장 많은 일들을 행하며 의무뿐만 아니라 권리도 가장 많고, 또 말도 제일 많이 하는 젊은 청년 남성 크리스챤들은 도대체 어디에 가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던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하나님의 교회는 이러한 말없는 다수의 노인, 부녀자들에 의해서 지탱이 되는 구나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부디 이 글을 읽는 하나님의 사람인 여러� 분들은 기도보다 말이 앞서는 오늘의 세상을 좇지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기도 가운데에서 저의 인생의 목표를 알게 해주시고 환경에 의해서 변화되어 질 수 없는 요셉의 꿈과 같은 확고한 꿈을 제게 주신 사실입니다. 바람과 파도가 치는 이 세상, 많은 학문과 철학과 사상이 들끓는 이 땅에서 저 역시 학문을 일생의 사역지로 배정받아 나아가야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사상과 주의와 철학과 학문이 주는 매력에 빠져서 주님을 져버렸는 지 저는 그 수를 일일이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늘 교회라는 건물 안에 움츠릴 수 만은 없지요. 하나님 말씀에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理論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 [고후 10:4 - ]" 라 하신 이 육체에 속하지 아니한 병기,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세상에 나아가야 합니다. 글이 너무나 길어졌군요. 마침 돌려놓았던 실험도 끝이 났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 세상의 지혜와 지식 앞에서 움츠려서는 안되겠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떳떳하게 나아갈 수 �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가 그것도 새벽기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우리 주님을 생각해보십시요. 그 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하나님 당신이 아니셨나요? 그러한 그 분이 새벽과 또한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는데 하물며 우리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먼저 무엇을 행하기 전에, 무엇을 말하기 전에 기도로서 하나님과 대화하십시요. 그러면 그 분이 모든 것에 함께 하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