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김 경 수) 날 짜 (Date): 1996년02월05일(월) 11시22분26초 KST 제 목(Title): 신앙에 대한 짧은 단상 (* 앞의 글에서 "상권 (상권...)" -> "중권 (상권 ...)" 입니다. *) 저 자신 하고 있는 일과 타고난 성격 상으로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모르는 것은 따져 본 연후에야 어떤 사실 또는 대상을 믿는 경우에 속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할 때에 우리가 믿는 바에 대한 옳고 그름을 과연 어떻게 올바로 전해줄 수 있는 가에 관한 회의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이 기독교 보드에 글을 올리신 여러 분들은 적어도 우리가 속한 이 사회에서 지적인 (물론 다른 모든 측면에서도) 수준이 평균 이상을 훨씬 상회한다고 확신합니다. 먼저, 이처럼 통신을 사용할 줄 안다는 점, 자신의 생각을 문장으로 엮어낼 수 있다는 점만 하더라도 그 충분한 증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십 년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한 캠퍼스에서만 공부를 하고, 또 선교회활동을 통해서 전도를 해보았습니다. 전도의 대상으로서 저와 비슷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만 접한 셈이죠. 그러나 가끔씩, 서울역이나 방학때 시골로 전도를 나갈 때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길 가를 지나는, 아니면 논두렁에서 밭을 메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한 번 "자유의지"나 ""예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 지 한번 물어보십쇼. 어떠한 반응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이러한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우리의 신앙을 가지고 다가갈때에는 또다른 언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생생한 예로 저는 최자실 목사님의 목회 체험이 적혀있는 "나는 할렐루야� 아줌마였다"를 들고 싶습니다. 지금 당장 병들고, 굶주리고, 죽어 가는 사람에게 복음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야 하는 지를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과 많은 사도들이 이 땅에서 한 사역의 대부분은 바로 그러한 것이었죠. 동시에,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되는 한가지는 지금 우리가 여기서 고민하고 토론하는 이 것입니다. 다소 역설적으로 들리시겠지만 우리가 믿는 신앙에 대한 비판과 그에 대한 확고한 정립 없이는 우리의 믿는 바는 얼마가지 못하여서 앞서 언급한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서 곧 그 본 모습을 잃고 혼돈의 과정을 거친 후에 사라져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약의 후반부에 나오는 서신서에는 바로 이러한 문제들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아마, 사도 바울이 우리가 믿는 이 신앙의 정립에 가장 큰 기여자로 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는, 제가 지금까지 언급한 신앙의 두 측면, 즉, 모든 이에게 자신의 삶을 가지고 다가가서 그들의 가장 구체적인 문제들을 함께 나누면서 우리 주님을 증거한 위대한 복음전도자인 동시에, 방대한 지식과 냉철한 지성으로 주님이 이 땅에서 하신 모든 일들의 의미와 다가올 일들에 대한 것들을 자세히 밝히고 그 대의를 확립하여 놓은 위대한 신학자로서의 역할을 너무나 훌륭히 수행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우리가 토론과 탐구에 투자하는 것과 동등한 열정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삶을 가지고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흔히 일컬어지는 "뜨거운 감성과 냉철한 이성"이라는 말은 오늘을 사는 우리 청년 크리스찬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글을 맺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