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 강 민 형 ) 날 짜 (Date): 2002년 7월 12일 금요일 오전 05시 18분 52초 제 목(Title): [R]가치판단 1 : 곡해 vs 해석 변덕스런 절대주의자를 말하시는군요. 절대주의자가 가치관을 바꿀려면 변덕 스러워야 한다는 주장을 하셔서 간단히 그렇게 썼습니다. 변덕스럽지 않고 일관적인 절대주의자는 가치관이 바뀌지 않는다 주장에 대해 놀랐다는 말입니다. ------------------ 절대주의자의 품성이 변덕스러우면 가치관을 바꾼다, 절대주의자의 품성이 일관적이면(일관적이라는 형용사가 있던가?) 가치관을 바꾸지 않는다 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가치관을 바꾸면 변덕스러운 절대주의자, 바꾸지 않으면 고집스러운 절대주의자라고 부르자는 얘깁니다. 이렇게 말해도 여전히 혼동이 생길 수 있겠군요. 가치관을 바꾸는 것을 보니 저 사람은 변덕스럽군 이라는 것이 아니라 알기쉽게 용어를 그렇게 정의한 것입니다. 혹시 오해가 있을까봐 piecewise라고 다시 부연했었는데 역시 사고가 생기는군요. 아무튼 이것은 애초에 이런 표현이 왜 나왔는지 따져본다면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애초에 이런 표현이 왜 나왔는지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검토해봅시다.) 단지 "절대가치관을 가지면 가치관이 바뀌지 않는다는 증말 단순한 견해를 보여주시다니 놀랍습니다. 바쁘신 모냥이군요."라고 하시길래 놀라지 마시라는 의미에서 써붙인 얘깁니다. (참고로 저는 아무리 바빠도 대충대충 쓰지 않습니다. 아예 안 쓴다면 모를까...) 저는 '(모든) 절대주의자는 가치관을 바꾸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치관을 바꾸지 않는 절대주의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최근에 이 보드에서 '교조주의자'라는 용어가 인기를 끄는 것 같은데 교조주의자는 절대주의자와 상대주의자 둘 중에 어느 편에 속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절대주의자, 그 중에서도 '고집스러운 (RNB님께서 선호하시는 표현을 따르자면 일관된) 절대주의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는 모든 절대주의자가 교조주의자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어렵지 않죠? ^^;;; 글 못 읽으셨을까봐 다시 설명하면 절대론자는 객관적인 진리가 있다고 믿는 (가정하는, 인정하는, 아무거나 써도 좋습니다) 사람이지 자신의 견해가 그 진리라고 생각하는 사람 아닙니다. 인식의 한계 때문이죠. 그러므로 근거가 밝혀 짐에 따라 자신의 가치관을 수정해 나가고 자신의 오류가능성을 열어놓습니다. 그런점에서 일관적인 절대주의자도 변덕스럼 없이 가치관을 수정할 수 있습니다. 단지 객관적 진리가 존재하고 자신이 가지는 지식이 그 객관적 진리가 반영한 부분의 진리라고 평가합니다. 요약하면 진리의 객관성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상대주의자는 진리의 객관성을 부정하는 사람입니다. -------------------- 결국 절대주의자라도 가치관을 수정하고나면 어떻게 됩니까? 곡해가 해석이 되고 해석이 곡해가 되지 않습니까?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진리의 객관성을 가정한다는 것은 자신의 지식이 그 객관적 진리에 부합된다고 확신한다는 의미가 되나요? '자신의 견해가 진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고 위에 밝히셨으니 확신할 수는 없다는 의미겠지요? 확신한다는 것은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는다는 의미가 되니까요. 그렇다면 결국 절대주의자란 '객관적 진리가 존재한다고 확신하는, 그러나 내가 올바른 (진리에 부합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절대주의자란 '해석이 따로 있고 곡해가 따로 있다고 확신하지만 자신의 견해가 해석인지 곡해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는, 즉 자신의 입장이 객관적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상대주의자는 '해석이 따로 있고 곡해가 따로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확신할 수 없으며 (만일 해석과 곡해가 같은 것이라고 '확신'한다면 그는 이 점에 있어서 절대주의자입니다. 상대주의자는 이것조자 확신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자신의 견해가 객관적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는, 즉 객관이란 기준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확신하지 못하며 존재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견해가 객관적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앞에서 약속드린 대로 '애초에 이 논의가 왜 시작되었는가'에 대해 짚고 넘어갑시다. 다음 구절 생각나십니까? 누가 썼는지 알아보시겠죠? ^^; > 어울리지 않게 종교경전을 예로 들면서 자신의 주장을 펴는 것을 반대하는 > 것입니다. 종교의 권위에 기대 경전을 곡해하거나 나름대로 적용하는 것은 > 종교인이나 비종교인이나 마찬가지로 경계해햐 할 일입니다. 비종교인에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겠지만 (비종교인 중에도 절대주의자가 있을 수 있겠죠. 신의 부재를 확신하는 무신론자 등등...) 저같은 비종교인 상대주의자'의 경우에는 종교경전을 해석할 때 제가 이것을 곡해하는지 올바르게 해석하는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아무것도 경계할 수 없으며 '어울리지 않게 경전을 인용하며 자신의 주장을 펴는 것'에 대해 RNB님께서 '반대'하시더라도 저는 그 '반대'에 순응할 수 없음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RNB님의 '반대'를 순순히 따른다면 저는 경전을 읽으며 '어떠한 해석도 시도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절대론자 종교인' 역시 자신의 해석이 곡해인지 해석인지 확신할 수 없으므로 (즉,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으므로) 경계를 늦추지 않으려면 역시 어떠한 해석도 시도해서는 안되겠죠. 그렇다고 해서 해석 없이 글자만 읽을 수는 없으니 '믿을만한 종교적 권위'에 기댄 해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태도를 '교조주의'라고 부릅니다. (친숙한 단어죠? ^^;) 따라서 저는 상대주의자든 절대주의자든 RNB님의 '반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상대주의자든 절대주의자든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는 사람들이며 '곡해일지도 모르는' 다양한 견해를 섭렵하고 시험해 봄으로써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고집스러운 절대주의자 (교조주의자)는 RNB님의 견해를 지지할 것 같긴 합니다만 제가 상대주의자인 관계로 확신할 수는... ^^;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