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RNB (RoseBlossm) 날 짜 (Date): 2002년 7월 10일 수요일 오전 04시 57분 42초 제 목(Title): Re: 가치판단 Nevido: 그럼 절대주의자만이 본질이라는 개념을 사용할 수 있다는 주장은 철회하시는거죠? _____ 거기 '그럼'이 왜 들어갑니까? 상대론자는 전형적인 본질의 개념(항구성)을 사용하기 어렵다니까요. 말이야 어떤 말이던지 사용하면 되는 거지만, 상대주의를 하자 해놓고 절대기준계에 비교하는 작업을 통해서 상대주의 결론이라고 주장하면 안되죠. Nevido: 실존주의의 예를 드셨는데 존재가 본질에 앞서기 때문에 본질이 바뀔 수 있다라는 실존철학의 개념에 대해 이해하셨죠? 이제 실존철학자체를 부정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그들의 철학적 사유를 인정해주실겁니까? (단지 인정일뿐입니다. 실존철학자가 되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_____ 아마 샤르트르의 무신론적실존주의를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요. 거기에 '존재'라는 표현보다는 '실존'이 더 적합할 것 같고, 샤르트르는 전통적인 의미의 인간의 본질을 부정합니다. 실존 (개개인의 삶)이 우선하며 본질(인간성)이 이에 따른다는 주장이죠. 덧붙이면, 샤르트르는 고립된 실존을 주장합니다. 즉 샤르트르의 본질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고립된 개개인에게만 의미가 있는 본질을 말합니다. 항구적인 본질이 아니죠. 그밖에 키에르케골, 야드스퍼즈 등은 유신론적실존을 주장합니다.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다수가 서로 커뮤니케이트하는 실존을 주장하고 그 프로토콜중의 하나로서 신, 인간정신, 등의 공통된 본질이 있음을 상정합니다. 저는 위에 설명한 크게 두가지의 실존주의 사상을 흥미있게 인정합니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비교기준으로서 본질"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스테어님의 체계에 "본질적"이라는 언어도구를 사용하여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는 "왜곡"과 "해석"의 개념을 비교,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독립된 실존에 존재하는 고립된 본질과, 상황이 서로 코뮤니케이트 하는 중에 사용된 항구적 본질, 두가지중 어느것이 이경우에 고려해야될 적합한 실존주의적인 본질인지는 자명합니다. 고립된 실존에서 사용하는 "본질" 즉 실존에의해 채워질 본질의 사용을 인정하겠습니다. 그러나 고립된 본질은 서로 다른 상황을 비교할 수 있는 잣대로서는 작동하지 못한다는 것 또한 유념해 주셔야 합니다. Nevido: 아주 간단한 결론입니다. 그리고 본질은 항상성이다라는 본질의 본질은 역시 명쾌한 겁니까? 말 장난 같지만 아닙니다. 관념적인 본질론이 가지는 한계를 말하는 겁니다. 본질의 순환정의 외에 어느것 하나라도 사물의 본질을 논한다는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__________ 그렇습니다. 우리는 본질의 일부분 밖에 모릅니다. 네비도님(상대론)과 저(절대론)의 차이는, 저는 부분적인 진리를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네비도님은 고백하신 바대로 어느것 하나라도 알거나 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본질적인' 차이가 있죠. * 이 차이를 확인하는 선에게 네비도님과의 대화는 끝내고 싶군요. 왜냐면 그 차이가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결론일 것 같거든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