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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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 강 민 형 )
날 짜 (Date): 2002년 5월 11일 토요일 오전 10시 52분 44초
제 목(Title): Re: 전도 


그런 경우라면 저는 기독교가 아니라 기독교인을 좋아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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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기독교인들을 테레사 수녀같은 사람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던 힘이
기독교였다면, 저는 당연히 기독교도 좋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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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실상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거죠. 모든 기독교인이 (우연히) 테레사

수녀와 같은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애초에 그 사람들의 자질이 그러했을

뿐 기독교의 공로는 아니거든요. 만일 기독교가 실제로 사람들의 선량한 자질을

고무하는 반면 잔악한 자질을 억제하는 기능만을 갖고 있다면 저 역시 기독교적

세계관에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기독교의 멸절을 원하지 않았을 겁니다.


유신론적 세계관이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어짜피 신이 있고
없고는 누가 지금 증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저마다 믿고 싶은대로
믿으면 되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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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유신론적 세계관이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세계관 정도라면야... ^^;


종교가 사람들을 핍박하는 경우는 유신론을 적용하는 방법상의 문제이지 유신론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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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더 본격적인 토론이 필요할지도 모르겠군요. 유신론에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기 때문에 기독교적 (배타적) 유신론과 그렇지 않은 유신론의

경우를 혼동하거나 일괄해서 논할 수는 없습니다. 기독교적 유신론의 경우라면

그 유신론의 구조 자체가 배타성을 안고 있는 관계로 신앙에 기인한 핍박은

당연한 부작용입니다. 기독교가 배타적인 핍박의 행태를 보일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는 것은 '적용하는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입니다.

교회가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 핍박이 가시화되고 권력이 없을 때는 얌전해지는

거죠. 근자에 들어 교회가 점점 온순해지는 이유는 기독교 자체의 덕목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덕목에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윤리의 기준은 기독교의 발생과 체계화 이전에 이미 형성되었으며 기독교는

그 기준에 따를 뿐입니다. 모세는 이혼을 허용하고 바울은 이혼을 금기시한

이유는 그들이 사는 사회가 달랐고 그 결과 그들의 윤리관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물론 두 사람의 성격 차이에 기인하는 면도 있지만요.) 중세 때의 교회가

이혼을 엄격히 금지한 반면 현대의 교회는 이혼에 대해 융통성을 가지는 이유

역시 기독교 자체의 변화라기보다는 기독교 외부에서 주어지는 조건에 따라

교회가 적응한 셈입니다. 여성의 사제직 종사가 허용된 것도 교회가 결정한

것이 아니며 동성애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에 비해 성숙해진 것도 (아직 한참

멀었지만) 기독교 외부에서 주어진 압력 때문입니다. 성전(聖戰)을 일삼던

교회가 반전 운동에 드물게나마 (의외로 드물어요 ^^;) 나서는 것도 교회가

스스로 깨우친 것이 아닙니다. 테레사 수녀의 활동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쳐

교회의 전매특허처럼 변질된 것에 불과합니다. 인간들이 고뇌와 시행착오 끝에

한발 한발 전진할 때마다 기독교가 한 일은 '선포하노라!'라는 한 마디로 그

열매를 독차지한 것뿐입니다. 언젠가 교회가 동성애에 대한 핍박을 그치는 날

교회는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과 탄압의 금지를 근엄한 얼굴로 선포하겠지요.


요컨대 기독교가 윤리에 좋은 영향을 끼치느냐 나쁜 영향을 끼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의 견해로는 기독교와 윤리는 무관합니다.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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