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2년 4월 23일 화요일 오후 02시 46분 17초 제 목(Title): 김민웅/ 옥토의 비밀 출처: 길벗교회 옥토(沃土)의 비밀 보아라, 씨를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니, 새들이 와서, 그것을 쪼아먹었다. 또 더러는 흙이 많지 않은 돌짝밭에 떨어지니, 흙이 깊지 않아서 싹은 곧 났지만, 해가 뜨자 타 버리고,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렸다. 또 더러는 가시덤불에 떨어지니, 가시덤불이 자라서 그 기운을 막았다. 그러나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져서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가 되고, 어떤 것을 육십 배가 되고, 어떤 것은 삼십배가 되었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복음 13장 3절-9절)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비유는 하나님 나라가 우리 안에서 성장하는 과정과 관련이 있는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우리 안에 열매를 맺기까지 겪게 되는 도전과 시련을 일깨우고, 그것을 마침내 이겨내어 얻게 되는 기쁨과 축복을 맛보도록 하시려는 뜻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면 만사가 다 잘 풀릴 것이라고 여겼다가, 현실에서 부딪히는 어려움 앞에 견디지 못하고 "이거 아니네" 하면서 주저앉기 쉬운 사람들에게 주신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하신 까닭은 달리 있지 않습니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세상의 크기에 비하면 애초에 실로 작디작은 씨앗의 크기에 불과한 것으로 시작하고, 그런 정도의 힘을 가지고 온갖 풍파를 다 이겨내면서 생명력 있는 인생과 역사를 일구어 낸다고 하는 것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닌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기쁜 마음을 가지고 믿음으로 출발했으나 현실의 벽에 자꾸 부딪히다 보면 중도에서 좌절하거나 포기해버리는 일이 있습니다. 아니면 믿음의 능력에 회의를 느끼고 더 깊은 절망에 빠져 신앙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세파에 부대껴 날이 갈수록 찌든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고 마는 수가 있습니다. 생명력 있는 믿음의 감격을 체험하지 못하는 길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자면, 이 본문의 비유는 바람이 불면 날라 갈 듯한 아무 것도 아니게 보일 씨알 만한 믿음이 마침내는 우리의 인생을 구하고, 그 인생에 생각지도 않은 엄청난 축복의 열매를 가져다주는 것을 약속하신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로, 하나님의 방식은 세상의 대세와 비견해보면 약하고 패배할 듯 한 느낌을 줍니다. 도대체 될성싶지 않게 시작합니다. 이 강한 현실의 힘을 과연 이겨낼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게 합니다. 답답할 정도로 시간을 요구합니다. 초라하게 보이고 고독하기조차 합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가자마자 그럴싸한 곳에 정착하여 번성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곳 저곳을 유랑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도로 찾기는 했으나 당대의 권세자에게 아내를 빼앗기기도 했습니다. 그런 고생스럽고 혹독한 세월을 지나면서 아브라함이 과연 믿음을 끝까지 지키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중심을 잡아 살아나갈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어떤 지경에 놓여도 하나님과 맺은 믿음의 의리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불리한 처지에 있다해도 하나님이 그의 삶에서 시작하신 일이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생각, 이 믿음이 그를 그 어떤 고난 앞에서도 버티도록 만든 저력이었습니다. 지금은 당장 보이지 않는 듯 하지만, 하나님이 반드시 보여주시고 성취시켜 주실 그 미래에 자신의 인생을 걸고 그 꿈을 흔들림 없이 간직했습니다. 우직하기조차 해 보이는 그의 믿음은 그가 놓인 현실에 비하면 연약하기 짝이 없어 보이지만, 그러는 가운데 그의 마음과 영혼에는 하나님이 씨앗으로 뿌려놓으신 용기와 자신감과 지혜, 그리고 능력이 자라났습니다. 시련과 도전에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그의 영혼에는 이러한 것들을 이겨낼 힘이 길러진 것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여러 가지로 약하고 부족했겠지만, 날이 갈수록 그는 견고한 사람으로 성장해갔습니다. 당대의 현실 속에서는 한 이름 없는 유랑자에 불과한 그가 이후 그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의 첫 시작이 되는 영광을 얻게 된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닙니다. 유력하게 보이는 세상의 방식을 쫓지 않고 그에 비하면 영 무력하게 여겨질 하나님의 방식에 자신을 전적으로 걸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믿음이 주는 지혜의 차원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눈으로 보면 멸시할 만한 방법을 택하셔서 인간이 쌓아온 그 오만의 성채를 허무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갖는 놀라움을 증명하시는 것입니다. "그것 가지고 되겠어?" 하는 세상이 던지는 경멸조의 질문 앞에서 "이것으로 충분하지"하는 대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글쎄, 쉽지 않을 텐데" 하면,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야"라는 대답이 나오게 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럴싸하나 결국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있고, 그 반대로 애초에는 아무 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마침내 반드시 성공하는 길이 있습니다. 이걸 알지 못해서 세상은 허둥대고 이리 붙고 저리 붙다가 세월 보내고 마는 것입니다. 이를 아는 방법은 오로지 하나, 세상이 두 쪽이 나도 하나님의 방식을 끝까지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식은 세상과 다르다, 하나님의 방식은 의롭다, 하나님의 방식은 처음부터 거창하게 시작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방식은 이 세상이 그 진가를 알아보기까지 세월이 걸린다, 하나님의 방식은 약하고 미미한 모습으로 그 첫발을 뗀다 등의 것에 눈을 뜨고 이것이 도리어 드디어는 강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임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고난과 시련의 세월이라고 힘있게 통과하는 축복이 주어집니다. 예수께서 갈릴리를 중심으로 불을 붙인 하나님 나라 운동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에 "내로다"라고 할 수많은 재사(才士)들과 유력자들을 제쳐놓고 하필 길릴리 촌구석의 어부들을 비롯한 밑바닥의 백성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혼을 불어넣어 이들을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주역으로 세우시는 과정은 그 성취를 기약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망망한 대해에서 겨우 한 점에 불과하게 보일 그런 시작이었고, 그런 움직임이라고 보였습니다. 그래봐야 뭘 어떻게 변화시키고 이루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하신 이 일은 종국에는 실패하고 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힘겹게 뿌려 놓은 씨앗을 광풍이 불어 모두 날려버린 것 같이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작이 그렇게 허무하게 중도에서 소멸해버리는 법은 없습니다. 이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사랑을 중도에서 힘들다고 포기하시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이 실패로 여겼던 일은 사실은 새로운 성공의 전야에 해당하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세상은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도전과 위기 앞에서 흩어져 사라질 줄 알았던 예수 제자 공동체는 새로운 생명의 씨앗을 받아 그 씨앗을 곳곳에 틔워내는 기쁨과 열정으로 다시 집결했고, 세상의 예상을 뛰어넘는 능력을 발휘했던 것입니다. 그 능력의 연장선 위에 지금 우리의 삶이 있습니다. 그들이 시작했기에 우리의 믿음이 지금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겼기에, 우리가 또한 이기는 자가 되는 소망을 갖습니다. 그들이 믿음으로 고난을 뛰어넘었기에 우리 역시 믿음의 강자가 되는 기쁨을 기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생명이 주는 기쁨, 이런 것들이 정작 우리 자신의 능력이 되는 과정은 오늘 본문의 비유에서 드러나는 바처럼 순탄하지 않습니다. 복음의 씨앗을 세상은 그대로 놓아두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리 짓밟고 저리 밀어내고 결국에는 숨통을 끊어놓으려 합니다. 다 사탄의 계략입니다. 사도 바울이 경고하고 있듯이,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지금도 그가 삼킬 자를 찾아 온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방식을 신뢰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악한 영의 권세는 위축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하는 가장 기본적인 작업은 그래서 하나님의 방식에 의문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회의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크고 괜찮은 것이 있는 양 생각하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그런 생각이 들면 그것은 우리의 영혼이 사탄에게 삼킴을 당하는 찰나인 것을 퍼뜩 깨우쳐야 합니다. 창세기의 에덴 동산의 장면은 그러한 사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그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셨다고? 네가 몰라서 그렇지 그거 다 다른 꿍꿍이가 있어서 그러는 거야"라고 말합니다. "그 말만 그대로 믿었다가는 네가 손해볼 뿐이야"라고 다그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고 그것을 거역하는 것이 우리에게 축복을 가져다준다고 속입니다. 그 속임에 넘어가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생명이 주는 기쁨을 맛보지 못하게 됩니다. 본문의 비유에서 마지막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귀 있는 자 들어라." 그 마음과 영혼의 귀를 사탄에 기울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소리에 마음을 모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마음에 받은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진정 생명력을 발휘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가 그 참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와 여지를 내어 주는 것, 그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우리가 외면하면 소용이 없게 됩니다. 나와 하나님의 능력이 굳게, 그리고 진실로 만나지 않으면 그것은 나의 삶에 뿌려진 씨앗이 되지 못합니다. 다른 곳에 뿌려진 씨앗일 뿐입니다. 나와는 인연이 없는 생명과 능력에 불과해지게 됩니다. 이런 생명의 능력에 아예 관심조차 없으면 그것은 길가에 뿌려진 씨앗이 됩니다. 세상의 번잡함에 매달려서 하나님 나라를 생각할 시간조차 없다고 여기고 사는 사람은 그의 인생이 길가와 다를 바 없이 되고 맙니다. 그 위로 무수한 일들이 오가지만, 그래서 대단히 바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 하나님 나라가 주시는 생명의 기회가 왔어도 그걸 알아보지 못하고 눈길 한번 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인생은 세월이 지나면 어느새 폐허가 됩니다. 영혼의 녹지(綠地)가 없어 삭막한 것입니다. 대단히 많은 것을 이룬 듯 하지만, 사실 가장 소중한 것을 갖지 못한 가난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자신의 인생을 빼앗긴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의 인생은 하나님 나라에 속한 것이 아니니 끊임없이 방랑하게 됩니다. 마음 붙일 곳이 없어 언제나 길 떠날 차비를 해야 하는 유랑자의 신세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정작 이곳에 있는데, 나의 인생은 저쪽 편 길가에서 허비하고 만 셈이 됩니다. 결국 억울해지는 것입니다. 생명의 능력에 기대를 걸고 마음을 쏟지만, 현실의 여건이 불리해지면 금새 짜증을 내고 절망하거나 불만이 가득해지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능력에 끝까지 자신을 맡기는 마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의 인생은 이제 갈아엎어서 새 땅을 만들려하는 욕구는 있으나 그 인생사에 깔린 자갈과 돌을 들어내는 일이 힘겹다고 그만 손을 들고 말아버리는 자의 것입니다. 하나 하나 인내와 희망을 가지고 거두어 내면 되는데 "이래가지고는 안 될 꺼야, 언제 되겠어" 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타박합니다. 그래서 그의 눈에는 언제나 돌이 가득한 것만이 보입니다. 지레 힘이 빠져 용기가 꺾이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생명이 그에게 다가와 충만해지려는 순간, 어리석게도 "아 이건 내 것이 아닌가 봐" 하면서 돌아서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열심히 노력하다가도 생각지도 않은 장애와 도전이 등장하면, 그에 압도당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눈에는 어떻게 된 것인지 가시덤불만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주시는 능력을 받아 하나 하나 이겨내면 되는 것입니다. 이제껏 자신이 수고해온 바에 대한 자신감이 없는 것입니다. 기껏 수고하고는 그 수고의 가치를 스스로 소멸시켜 버립니다. "그렇게 애썼는데, 이런 가시덤불이 나오다니. 아 소용이 없구나" 하고 주저앉는 것입니다. 그 가시덤불을 뚫고 생명의 줄기가 이미 점점 자라고 있는데 그것은 눈에 안 들어 오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열성을 기울이면 그 줄기가 더욱 크게 자라 마침내 가시덤불의 키를 뛰어넘어 열매를 맺는 데, 그 때의 놀라운 감격을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방식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결과입니다.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의 생명과 축복을 스스로 외면하는 이의 불행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충만하게 체험하는 옥토의 인생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 땅의 비밀은 단 한가지, 하나님의 생명과 나의 삶이 그 어떤 경우에 처하더라도 그 인연이 끊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있습니다. 그것이 곧 살길이며, 축복의 문이 열리는 열쇠인 것을 확고히 믿는 영혼에 자리잡는 터입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앗이나, 돌짝밭에 떨어진 씨앗이나, 또는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 모두가 다 뿌려진 곳과 결국에는 결별하고 말지 않았습니까? 새가 집어먹든지 뿌리가 타서 없어지든지 아니면 자라나다가 말든지 모두가 다 더 이상 깊은 인연을 맺어나가지 못하고 만 것을 보여줍니다. <옥토>란 이와는 달리, 하나님과 나의 삶이 결단코 따로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것임을 전적으로 확신하고 그 한번 맺어진 인연을 소중히 여겨 끝까지 간직하는 이에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방식에 결코 실망하지 않으며 자신의 삶과 하나님의 생명의 씨앗이 진정으로 만나면, 그 씨앗 속에 있는 생명이 우리에게 반드시 능력을 줄 것입니다. 꿈을 이루게 할 것이며, 바라던 미래를 감격적으로 이루어 낼 것이며 그 감사를 즐겁게 나누게 할 것입니다. 그런 기쁨, 여러분 모두의 것이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무우를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