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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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poiu)
날 짜 (Date): 1995년10월16일(월) 11시42분55초 KST
제 목(Title): 하나님의 돌이키심과 인간성의 회복..



1.예수 당시의 유대인들이 생각하고 있었던 죄와 용서

  죄란 하나님에게 진 빚이었다.(마 6,12: 18,23-35) 이런 빚들은 과거에 자기 

  자신이나 조상들이 율법을 범한 결과였다. 이 범법행위는 고의로 이루어질 수도, 

  실수로 이루어 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위법적인, 종교상 혼혈인 유대인은 

  조상탓에 영구히 죄인인 처지에서 살고 있었다. 

  용서란 하나님에게 진 빚을 없애 주는 것을 의미했다. 희랍어로 용서하다라는 
 
  말은 사면ㄴ하다,석방하다, 해방하다의 뜻이 있다. 누구를 용서함은 그를 그의

  과거 역사의 지배에서 해방시킴이다.

  "죄인"이란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사람들이었다. 죄스럽거나 부정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 즉 창녀, 세리, 강도, 목자, 고리대금업자, 도박자들도 이들에 속했다. 

  가난한 사람, 눈먼 사람, 불구자, 나병환자, 박해받는 사람, 억눌린 사람, 묶인 

  사람, 율법을 모르는 천한 족속....바리새인들은 이들을 가리켜 죄인 또는 율법

  을 모르는 족속들이라고 불렀다. 

  죄인들에게는 사실상 아무 탈출도 없었다. 이론상으로는 창녀도 세밀하게 규정된

  참회, 정화, 보속 절차에 의하여 다시 깨끗해질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하자면 

  돈이 들었고 나쁜 방법으로 번 창녀의 돈이 그 목적에 사용될 수는 없다는 것이

  었다. 말하자면 죄인이란 운수소관이었다. 죄인은 운명, 즉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열등인간으로 예정되어 있는 셈이었고, 이런 의미에서 묶인 자나 갇힌 자였다. 

2. 죄에 대한 심판 예언(세례 요한)과 기대치 않았던 해방(예수)

  요한은 온 이스라엘을 향하여 경고한다.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다."라는 말은

  아예 할 생각도 말라고. 사실 하나님은 이 돌들을 가지고도 아브라함의 자녀를 

  만드실 수 있다(마태 3,9)고. 하나님은 이스라어ㅔㄹ을 멸하고 스스로 하나의 새

  백성을 만드실 수도 있다고-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으면 그렇게 되리라고.

  요한은 회개를 촉구했다. 이스라엘의 개인 각자가 회개하여 인격적인 마음의 

  변화를 경험하기를 기대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잔존자들의 규합도 

  무순 종파의 창설도 아니며 각자가 모두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한의 세례는 

  개인적이며 인격적인 회개의 표지였다. 

  요한이 회개의 세례에 호소했던 거기서 예수는 신앙에 호소했다. 

  당시의 성자들이 강우나 치유를 위하여 기도를 하던 경우에는 자신의 거룩함,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지닌 위세에 의거했음에 반하여, 예수는 믿음의 힘에 의 

  거했다. 예수가 치유된 사람에게 '너의 믿음이 너를 낫게 했다" 고 말했다. 

  결국 예수가 말해주고 있는 것은 자기가 환자를 낫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하나님에 의하여 치유받는다는 것조차 적어도 명시적으로는 하지 않는다.

  이것은 참으로 놀랄 만한 주장이다. 믿음을 가진 어느 유대인이나 마찬가지로

  예수도 '하나님에게는 무슨 일이나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예수는 이것을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무슨 일이나 가능하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동시대인들과 달랐다. 물론 이 믿음이란

  하나의 신앙고백문이나 일련의 교리와 신조에 찬동하는 것과 똑같은 것은 아니다. 

  또, 단순히 어떤 힘찬 확신의 위력이나 강력한 암시의 정신신체적 영향이 치유 

  효과를 냄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확신이나 다 믿음인 것은 아니다. 

  믿음은 선한 확신이며 참된 확신이다. 그것은 어떤 일이 그 자체가 선이기에, 선은

  악을 이길 수 있으며, 그 일이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이다. 즉 하나님이 인간에게 

  선하게 하시며 악을 이길 수 있고 또 이기리라는 확신이다. 믿음의 힘은 하나님

  의 힘인 선과 참의 힘이다.

  죄를 용서하는 힘도 믿음의 힘이었다. 군중들이 놀라와했다고 말하는 이유는 예

  수가 아니라 사람에게 그런 권능이 주어졌기 때문이다.(마태 9,8) 넉넉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꼭같은 일을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예수는 사람들의 과거를 보아넘겼고 그 어떤 것도 그들을 가로막는 장애로 인정

  하지 않았다. 전에는 하나님에게 빚진 일이 있더라도 이제는 이미 아무 빚도 

  없는, 따라서 더 이상 배척을 받을 이유가 없는 사람이 된 것으로 사람들을 

  대우했다. 이것을 말로 입 밖에 낼 필요가 없었음은 탕자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굳이 용서한다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음과 마찬가지다. 환대와 잔치가 여러 말

  보다는 더 소리높은 웅변이었던 것이다.

  병은 죄의 결과이므로 치유는 용서의 결과라고 여겨졌다. 그리서 병자가 병에서 

  해방되면 그것은 그 병자의 빚이 탕감되었음에 틀림없는 증거라고 여겼다.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자기의 언행에 진정한 권위를 부여할만한 하늘로부터의 표

  징을 보여달라고 요구한다. 예수는 그것을 거부하고 그 대신 지상의 표징들을 


  지적한다.(마태 16,1-4) 또 세례자 요한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 소경이 보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마태 11, 4-5)

  바야흐로 선이 악을 이기고 있다고: 하나님은 전에 의도했던 바에 대하여 마음이 

  누그러지셨다고; 더이상 자기 백성을 벌할 의도가 없으시며, 이제는 구원하고자 

  하신다고. 여기서 예수의 언행이 내포하는 의미는 하나님 자신이 변했다는 것

  이었다. 그것을 시대의 표징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브라함과 야곱의

  하나님이 전혀 새로운 미증유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나님 자신이 이스

  라엘의 길잃은 양들에게 연민의 정이 일고 있는 것이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것이 최초의 미증유의 일이라면 어떤 벌도 없이 용서하

  일은 두번째의 미증유의 일일 것이다. 





*이 모든 내용들은 앨버트 노울런이 쓰고 분도출판사에서 펴낸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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