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guest) <211.104.43.24> 날 짜 (Date): 2001년 12월 22일 토요일 오전 01시 33분 12초 제 목(Title): 메리 크리스마스 작성자 : 진중권 작성자ID : pierot 작성일 : 2001-12-20 [문화]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옛날에 우리에게는 집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살 곳은 있지만, 내 관념 속에서 내가 들어 사는 이 사각형 콘크리트 구조물은 집이 아니다. 인간을 위한 새장 혹은 돼지우리에 불과하다. 집이라면 모름지기 뜰이 있고, 장독대가 있어야 한다. 뜰에는 꽃밭이 있어, 봉숭아, 분꽃이, 채송화, 맨드라미가 피고, 바닥에는 호박넝쿨이 기어다니고 있어야 한다. 여름이면 제비가 찾아와 처마에 집을 짓고, 그 속에서 새끼들이 입을 쫙 벌리고 짹짹거리고 있어야 한다. 옛날엔 우리에게 처마에 제비가 집을 짓던 그런 집이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정형편이 어려워져 결국 그 집을 팔아야 했고, 그후로는 생각날 때마다 그 집을 찾아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으며 '언젠가 저 집을 다시 사겠다'고 맹세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곳을 가보니 그 집이 없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보기 흉한 붉은 색 연립주택이 들어서 있었다. 어린 시절에 내가 공작을 하고 공상을 하며 지냈던 다락방의 위치를 눈으로 가늠해 보다 그냥 돌아왔다. 사람들은 잔인하여 자기들의 기억, 자기들의 추억마저 돈으로 바꿀 준비가 되어 있는 모양이다. 그 집 옆에는 교회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교회는 다니지만, 내 관념에 따르면 내가 지금 다니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그저 일요일에 한번씩 찾아가 영혼의 때를 씻고 나오는 성스런 목욕탕에 불과하다. 교회라면 모름지기 '성도의 교통'이 있어야 한다. 수양회 떠나기 전날 여름밤의 흥분이 있어야 하고, 모여 놀이도 하고 선물교환도 하다가 새벽에 새벽송을 도는 크리스마스의 들뜸이 있어야 하고, 전 교인이 모여 윷놀이를 하며 신년을 맞는 흥겨움이 있어야 한다. 옛날 우리에게는 그런 교회가 있었다. 목사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 교회를 떠나야 했고, 오랜 세월의 흐름 속에서 그때 그 교인들도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후로는 생각날 때마다 그 교회를 찾아가 언젠가 그때 그 사람들이 다시 저 곳에 모이는 날이 왔으면 하고 바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가 보니 교회도 없어졌다. 목사가 몇 번 바뀌고, 신도들도 바뀌고, 그 와중에 그들에게 그 건물은 그저 작고 볼품없는 낡은 애물단지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신도들도 잔인해서, 그 가난하던 시절 신도들이 한 푼, 두 푼, 한 삽, 두 삽 모아 자기들의 공동체를, 마치 스승을 팔아넘긴 유다처럼, 은 몇 냥에 팔아 넘길 준비가 되어 있다. 옛날에 교회는 전투적 믿음을 무장한 집단이기 이전에 무엇보다도 조그만 공동체였다. 요즘 길거리의 교회들을 보면 영 교회 같지가 않다. 심지어 무지막지한 확장세를 자랑하는 모 교회의 지사(?)는 도대체 교회가 아니다. 건물 옆벽에 무지막지하게 새겨 넣은 붉은 십자가와 건물의 이마에 새긴 '***교회 강북성전'이라는 간판만 없다면, 영락없이 금융회사다. 신도들 사이의 관계도 달라졌다. 이 바쁜 세상에 "성도들이 교통하는 것"은 불필요해졌고, 신앙공동체는 그저 이기적 원자들이 복채를 내고 사업이 잘 되기를 비는 철학관 내지 사후의 안락한 삶을 보장받는 보험회사가 되어버렸다. 옛날에 크리스마스 캐롤은 오직 교회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었다. 캐롤은 성탄절 날 교회 밖으로 조용히 흘러나왔다. 아니면 모두들 잠든 새벽에 예수의 탄생을 알리려 신도들의 집을 방문한 성가대원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런데 이제는 캐롤도 청각공해가 되었다. 길거리에 흘러 넘치는 게 캐롤이다. 귀가 찢어져라 볼륨을 한껏 올린 그 금속성 캐롤이 축하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대목장사를 만난 백화점과 상점의 매출액이다. 이것은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천사의 노래가 아니라 자본이 내지르는 고함이자 발악이다. 길거리의 상점에는 선물이 널려 있다. 선물도 이제는 상품이 되었다. 하지만 옛날엔 달랐다. 크리스마스 전날, 우리들은 각자 선물을 준비했다. 제비뽑기를 하여 남녀가 짝이 되어 선물을 교환했다. 물론 모두들 자기가 좋아하는 남학생 혹은 여학생이 짝이 되기를 은근히 바랬다. 선물 중에는 구멍가게에서 산 것도 있고, 손수 그리거나 만든 수제품도 있고, 가끔 장난기 어린 엽기적 선물도 있었다. 그 중에서 기억나는 것. 예쁜 종이에 정성스레 포장한 앙증맞은(?) 닭발 세 개. 포장마차에서 산 거라고 했다. 졸지에 닭발을 손에 들고 '꺄악' 비명을 질렀더 그 여학생은 아마도 그 해를 가장 엽기적인 성탄절로 기억할 것이다. 목사도 권력이라고 성탄이면 신도들이 우리 집에 선물을 갖고 오곤 했다. 그 어려웠던 시절, 가난한 동네의 신도들이 뭐 대단한 물건을 들고 올 수 있었겠는가? 그 중에서 가장 기억나는 선물이 있는데, 이 역시 지금 생각하면 매우 엽기적이다. 우리 교회에 정말 지지리도 못 사는 집이 있었다. 나보다 두 살 위였던 그 집 딸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교복 사줄 돈이 없어서 남이 입던 교복을 얻어다 주었다고 한다. 멋진 교복을 기대했던 그 아이가 이 때문에 일주일을 식음을 전폐하고 울었던 것이 기억난다. 워낙 생활이 어려워서 종종 교회와 신도들이 늘 도와주곤 했는데, 이 가난한 집에서 크리스마스라고 목사 집에 선물을 보내온 것이다. 두 다리가 묶인 채 날개를 푸드득거리는 닭 한 마리. 내가 이 일을 기억하는 것은 아마도 그 닭을 들고 온 그 형의 모습 때문일 게다. 늘 도움만 받던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남에게 뭔가를 선사한다는 것은 대단히 기쁜 일인가 보다. 그 의기양양한 태도와 자신에 가득 찬 즐거운 목소리. "메리 크리스마스!" 세상을 정복한 시이저도 그 형만큼 자신만만하지는 못 했을 게다. 언제 다시 이런 멋진 선물을 받아볼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할 게다. 그것은 요즘 백화점 선물코너에서 산 닭을 팔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