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1년 3월 12일 월요일 오전 06시 23분 24초 제 목(Title): 조한욱/ 이단의 역사를 통해 본 우리의 자� 출처: 조한욱 교수 홈페이지 (http://cc.knue.ac.kr/~hocho/) 조한욱 (hocho@cc.knue.ac.kr) 조회수 : 667 , 줄수 : 17 이단의 역사를 통해 본 우리의 자화상 <출판저널> 1999년 6월 5일자에 실을 예정입니다. 이단의 역사를 통해 본 우리의 자화상 '이단'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우리들 대다수에게 처음으로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사이비 종교'라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서구의 역사에서 이단과 관련된 문제의 중요성을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그런 연상작용이 지나치게 단순한 오해에서 빚어진 것임을 쉽게 깨달을 것이다. 단적으로, 이단이란 '정통적인 종교의 가르침과 어긋나는 교리를 신봉하는 종교적 신념'이다. 반면 그런 정의를 따라도 역사적 현상으로서 '이단'을 이해하는 일이 쉬워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단'의 반대쪽 면인 '정통' 역시 쉽게 정의할 수 없으며, 교리의 문제가 실제적인 종교 경험과 맞부딪칠 때 생기는 괴리가 있으며, 종교와 정치가 충돌할 때 발생하는 마찰이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 이단 문제의 이해를 어렵게 만드는 미묘한 상황들을 살펴보자. 로마 말기에 기독교를 받아들였던 것은 제국 붕괴의 위기를 느끼던 황제들이 제국 결속을 위한 구심점을 찾기 위해서였다. 여기에서는 이단과 관련된 두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먼저 민중의 차원에서는 '이전부터 믿어오던 전승 신앙이 이제는 이단이 되는 것인가'라는 문제가 발생하며, 황제의 차원에는 '종교와 관련된 정통성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종교의 수장인가 황제인가'라는 중대한 사안이 제기된다. 처음으로 기독교를 인정하였던 콘스탄티누스 대제 당시나 신성로마제국의 경우처럼 정치와 종교의 정통성이 일치할 때 이단을 규정하기는 쉽다. 그러나 동로마와 서로마가 갈라지면서 각기 다른 정치적, 종교적 노선을 향할 때처럼 종교와 정치가 분리될 때 문제는 단순치 않다. 더구나 종교개혁으로 인하여 전체적 정통성의 문제가 지역적 정통성의 문제로 대체될 때, 더 이상 보편적인 '정통'에 대해 말하기는 곤란하다. 이를테면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 정통의 카톨릭은 영국에서 이단으로 취급되었으며, 스위스에서는 정통인 칼빈주의자들이 프랑스의 루이 14세에게는 무장한 이단의 무리에 불과하였다. 오늘날에도 그런 문제는 남아있어서, 모르몬교도의 성지인 미국의 유타 주에서는 대략 전세계 기독교도의 절반을 차지하는 카톨릭 교도라 할지라도 이단인 것이다. 그렇다면 성서를 기준으로 하여 이단을 구분하는 것은 어떨까?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성서에도 신약, 구약, 경외서의 세 종류가 있어 각 교파마다 인정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스정교와 로마 카톨릭에서는 구약과 경외서를 구분하지 않는 반면, 성공회와 루터파 교회에서는 경외서를 인정하지만 구약보다 낮게 평가하며, 어떤 신교의 분파에서는 구약과 경외서 모두를 인정하지 않는다. 더구나 같은 성경의 구절을 놓고도 교파마다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에 따라 이단의 정의가 달라진다. 예컨대, "칼을 잡은 자는 칼로 망할 것"이라는 성경 구절에 대해서 기독교 내의 평화주의자들은 무기 사용을 회피하라는 경고로 받아들이지만, 전투적인 집단에서는 정의의 칼을 휘둘러 사악한 무리를 멸망시키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더구나 이단의 정의는 시대에 따라 바뀐다. 예컨대 3세기의 위대한 기독교 사상가였던 오리게누스의 가르침은 당시에는 정통이었지만, 6세기에는 이단이었다. 다른 한편 오늘날 정통을 준수하는 사람들은 과거에 다수의 견해에 반대한 이유로 처형당했던 순교자들을 찬양하지만, 실상 그 순교자들은 생존시 이단이었다. "순교자의 피가 교회를 위한 씨앗"이었다는 표현은 그들이 당대에는 명백한 이단이었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듯 복잡다단한 이유 때문에 이단에 대한 포괄적인 정의를 내리는 것은 불가능한가? 그렇지는 않다. 기독교 내부에는 몇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강조점이 정반대의 방향을 가리키는 대립적인 교파들이 있으며, 대체적으로 그것이 극단적으로 나아갈 때 이단으로 분류된다. 첫 번째는 감정적 열광을 강조하는 교파와 질서 있는 행동을 강조하는 교파 사이의 대립을 꼽을 수 있다. 감정을 강조할 경우 진정한 교리를 잊을 위험이 있으며, 질서를 강조할 경우 신도들의 종교적 열정을 만족시켜주지 못할 위험이 있다. 두 번째는 신앙에 있어서 객관적인 측면과 주관적인 측면의 대립이 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객관적이고 실천적인 삶을 위하여 종교가 요구된다는 관점을 강조하는 반면, 그리스정교는 주관적으로 신의 본질에 계시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전자는 '사회적 복음'으로, 후자는 '신비주의'로 향할 가능성이 크며, 그 모두는 극단으로 흐를 경우 이단이 될 수 있다. 다음으로 개인의 양심과 교회의 집단적 권위 사이의 대립도 있다. 루터처럼 "여기에 내가 서있습니다. 나는 달리 어찌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성직자 집단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 이단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기는 쉽다. 반면 간과하기 쉬운 것은, 인간 개인의 발전이나 의무감에 엄격한 제한을 가하면서 "교회가 말하기를", 혹은 "성서에 따르면"이라는 문구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도 이단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이단의 역사를 간략하게 훑어본 것은 단순히 그 계보와 유형을 파악하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단의 역사가 주는 시사점을 인식하는 일이다. '이단'이란 서구에 있어서 사악함이나 거짓과 관련되는 부정적인 명칭이 아니라, 사실의 진술이었다.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삼위일체설을 내세웠던 아타나시우스 파와 그것을 부정하였던 아리우스 파는 같은 자격으로 참석하였으며, 회의의 결과 삼위일체설이 인정되면서 아리우스 파가 이단이 되었을 뿐이다. 실로 수많은 이단의 논쟁을 통해 기독교의 교리가 정비되고 체계화되었다. 이단의 역사를 통하여 서구의 기독교계가 얻은 것은 교파의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다른 교파에 대해 관용의 정신을 베풀어야 한다는 가르침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단의 정의를 내리는 신학자라 할지라도, 그는 유한자로서 무한하고 불가해한 신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추어 우리의 교계에 만연하고 있는 이단은 이단이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비합리적인 행태의 연속만을 보여준다. 금전이나 폭력, 혹은 성과 관련된 추문이 끊임없이 일어나는데도 사이비 종교가 횡행한다. 최소한의 인문학적 소양만 갖추어도 그 단순한 부조리를 꿰뚫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갖추지 못한 군중들을 탓하기에 앞서,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단의 문제를 쟁점으로 제기함에 앞장서지 못한 기성의 교단에도 책임의 일단이 있다. 이단의 문제가 수없이 제기되고 해결되었던 서구에서는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핵 위협이나 환경 문제 등으로 파악하면서 의연하게 미래에 대비하고 있는 한편, 우리의 사회 일각에서는 여전히 종말론을 위협의 무기로 사용하여 혹세무민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 부끄러운 대비야말로 우리가 이단의 문제를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웅변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