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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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sca (----용----)
날 짜 (Date): 2001년 2월 11일 일요일 오후 11시 23분 46초
제 목(Title): [한백설교] 미궁


2001년 2월 11일 한백의 소리

미궁 


김 진 호
 

때 : 통일염원 56년 팔백 두번째 예배에서(2001.2.11) 
 
본문 : 요한복음서 3장 8절/ 곳 : 한백교회당

 

요한복음서
3장
 8 바람은 제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듣고도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 성령으로 난 사람은 누구든지 이와 마찬가지다. 
(공동번역 성서)
 

 
'그리스-로마 신화'의 미노스 왕의 이야기 속에 미궁(迷宮)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가 흔히 '미궁에 빠지다', 또는 '미로(迷路)를 헤매다'라고 말할 때, 그 
미궁입니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습니다.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이 아직 번성하기 
이전에 그리스 지역의 가장 발전된 문명은 크레타 섬에서 나왔습니다. 바로 그 
섬의 통치자이자 지혜의 왕으로 알려진 '미노스'가 당시 최고의 장인이던 
'다에달로스'에게 명하여 미궁을 짓게 합니다. 누구라도 한번 들어가면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그런 곳입니다. 어느 길을 가도 끝없이 반복되는 '똑같은' 
길들만이 나 있습니다. 그리고 한없이 가다 보면 어느새 막다른 길에 이릅니다. 
다시 돌아서 가야 합니다. 어떻게 갔는지, 어디로 가야할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이곳, 이 미로를 한없이 헤매다 그는 마침내 죽어갑니다. 
미셸 푸코는 이 미궁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탈출은 생각할 수조차 없다. 
한가운데, 지옥불, 상상이 빚어낸 형상들의 법칙 외에는 출구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한가운데'라는 말이 나옵니다. 미로를 뚫고 궁의 한가운데로 
이르면, 그곳엔 반은 인간이되 반은 황소인 괴물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 녀석은 
인간을 먹어치우는 무시무시한 존재입니다. 결국 미궁의 한가운데에선 잡혀먹히고 
마는 운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실은 미궁은 왕 미노스가 이 괴물을 가두어두려고 만든 궁입니다. 신화는 미노스 
왕의 아내인 왕비 '파시파에'가 포세이돈 신이 보낸 황소를 사랑한 나머지 간계를 
꾸며 황소와 간음하여 난 자식이 바로 그 녀석이라고 말합니다. 
'미노타우로스'라는 이름의 이 괴물은, 몸둥아리는 인간인데 머리가 황소인 
존재입니다. 그런데 더욱 괴물적 특성은 그 놈의 주식이 사람이라는 데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최근 인류의 또 하나의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린 광우병을 연상케 
됩니다. 채식동물인 소에게 육식이 포함된 인조사료를 먹인 결과로 광우병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바입니다. 그런 소의 고기를 먹은 사람의 
뇌가 급격히 퇴행하게 되면서 죽어버리게 되는 것이 이 재앙의 귀결입니다. 인간의 
머리에 소의 저주가 내린 것이겠지요―마치 머리가 황소인 미노타우로스처럼. 
미노타우로스가 괴물이 된 것은 그것이 황소이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몸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황소이어야 하는데, 풀을 뜯어먹고 사는 존재이어야 하는데, 한 
인간의 간계로 인간처럼 육식을 하는 괴물로서 태어난 것입니다. 광우병 이야기가, 
인간이 소를 잡아먹지만, 결국 그 소에 의해 잡아먹히는 꼴을 보여주는 한편의 
신화인 것처럼, 미노타우로스의 신화도 인간의 욕망이 낳은 인간에 대한 저주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잠시 이야기가 곁가지로 갔습니다. 다시 미궁 얘기로 돌아가면, 미궁은 이 
반인반우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가두어 두려고 만든 궁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왜 
미노스 왕이 이 괴물을 죽이지 않고 가두어야 했을까요? 이 신화가 내포하고 있는 
상징은, 이 괴물이 바로 미노스 자신의 분신이라는 것입니다. 흔히 아버지가 
불륜의 자식을 낳아 데려오면, 아내는 그 아이의 어머니가 됩니다. 자신의 
뱃속에서 난 것이 아님에도 그 아이를 그녀는 혈육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아내가 낳은 불륜의 자식 미노타우로스는 남편의 아들이기도 한 
것입니다. 전통적인 가족담론 속에서 아들은 아비의 분신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들은 아비를 상징하는 '재현체'라는 것입니다. 아들이 있음으로 아비는 자신의 
짧은 수명을 연장하게 되고, 그것이 되풀이 되면서 영원히 자기를 닮은 분신들의 
족보가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가계'라는 혈통주의적 이데올로기인 
것입니다. 
재밌는 사실은, 그 이름이 미노타우로스, 곧 '미노스의 황소'라는 것입니다. 
미노스의 아들이지만, 아내의 불륜의 아들, 즉 도착(倒錯)된 아들인 것입니다. 
정상적인 분신이 아닌, 도착된 분신, 정상적인 자기 자신의 얼굴이 아닌, 도착된 
얼굴. 그런 점에서 그것은 미노스 자신이되, 미노스의 또 다른 얼굴, 지혜의 
왕으로 칭송받는 그런 얼굴이 아니라, 그의 또 한편의 광기의 얼굴, 괴물적 속성의 
얼굴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괴물을 죽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을 은폐해야 했고, 미궁은 바로 그 자신의 또 하나의 얼굴인 미노타우로스를 
숨기기 위한 장치였던 것입니다. 
바로 이 점에 착상해서 근대 서양의 수많은 사상가들, 문학가들은 미궁에서 인류 
문명사의 한 단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자신의 얼굴 
이면의 야수성을 은폐하는 심리적 장치이고, 나아가 문명의 장치라는 것입니다. 
가령, '이성'이라는 것은 내면의 본능적 광기를 가두어두는 일종의 미궁이었다는 
것이 그렇습니다. 또, 정의의 보루임을 자부하는 정부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음모를 
파헤치는 <X-파일> 같은 드라마도 미궁 속에 은폐된 국가의 미노타우로스적 속성을 
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컨대 이 미궁 이야기는 오늘날 인류 문명사의 정신 
분열적 속성에 관한 이야기로 읽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성의 얼굴 저편이 
숨겨진 야수성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아직 미궁의 수수께끼는 
다 해독되지 않았습니다. 좀더 이야기를 더 해야만 합니다. 
다시 미궁 얘기를 하면, 미궁에 갇힌 미노타우로스는 인육을 먹는다고 했습니다. 
미노스 왕은 예속국이던 아테네에게 9년마다 선남선녀 각 7명씩을 보내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들은 미궁으로 들여보내져서 결국 미노타우로스의 밥이 되고 
맙니다. 여기서 미노타우로스가 인육을 먹는다는 표현에선 충분히 부각되지 않았던 
문제가 드러납니다. 곧 미궁은 희생자를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가학적 체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약자에게 내리는 저주처럼 언급됩니다. 정리하면, 
'미노스의 미궁'은 강자의 체계인 것입니다. 끝없이 약자를 희생시켜야만 유지되는 
체계 말입니다. 강자와 약자가 존재하고, 강자가 자신보다 약자인 대상을 향해 
가학성을 발휘하는 그런 체계인 것입니다. 
그런데, 앞에서도 간간이 암시했듯이 미노스의 미궁은 같은 것, 유사한 것에 대한 
집착이 낳은 정신분열증의 산물임을 특히 유념해야 합니다. 미궁은 숨막히도록 똑 
같은 길들의 연속입니다. 똑 같은 벽들로 둘러싸여 있고, 똑 같은 폭의 길이, 가로 
세로로 똑 같이 나 있습니다. 푸코의 표현을 따르면, '완벽한 유사성', '동일한 
것'에 관한 욕망이 여기에 드리워져 있습니다. 아비가 아들을 자신의 분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아들을 통해 가계가 유사성으로 보전된다는 일상화된 
혈통주의적 믿음이 그렇습니다. 그 유사성, 닮음을 표현하기 위해 '성'(姓)이 
필요했던 것 아닙니까? 가족 담론은 바로 그것을 위해 봉사해왔습니다. 
서양의 사상가들이 자신의 문명에서 이런 것을 읽었다면, 우리 사회는 어떨까요? 
제가 생각하기엔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전교생이 같은 
모양의 유니폼을 입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회, 운동장에서 질서 정연하게 몇열 
횡대로줄을 서야만 모든 의식이 진행될 수 있다고 믿는 사회, 그 속에서 우리는 
자라왔고 또 그렇게 우리의 2세들을 훈육하고 있습니다. 혈통이 어떻고, 고향이 
어떻고, 출신학교가 어떻고, 현 거주지가 어떻고, 심지어 출신 부대가 어떻고, 
태어난 산부인과가 어떻고, ..., 등등 무수한 닮음꼴 찾기에 몰두하는 사회, 
그것은 닮은꼴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확보하고 있는 게 사는 데 유리하다는 확신의 
소산일 겁니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대단히 획일적인 모습을 띠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질적인 
것에 지나치게 배타적인 얼굴을 하게 되었습니다. 미궁 속에 가두어둔 자신의 
괴물적 속성은 이들 이질적인 존재를 희생양 삼아 존재하는 우리 내면의 
야수성입니다. 이질적인 약자를 잡아먹는 미노타우르스는 우리 문명이 낳은 우리 
자신의 괴물적 속성인 것입니다. 

오늘 성서 본문은 성령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요한복음서가 말하는 성령에 대한 하나의 해석이 바로 본문인 것입니다. 
'니고데모'라는 이름의 제자와 예수님이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성서는 그가 
유다사회의 지도자의 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3,1). 곧 유다 사회의 질서관을 
누구보다도 잘 보존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그 체제의 아름다운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그 체제의 추함을 가장 잘 
은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거듭나지 않고서는 하느님나라를 결코 볼 수 
없다고(3절). 니고데모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다 자란 사람이 
다시 태어난다는 것인간,라고. 그러자 예수께서는 오늘 본문처럼 말씀하십니다. 
바람이 부는 소리만으로 풍향을 알 수 없듯이, 성령으로 난 사람도 그렇다고. 
여기서 '소리'는 말을 상징합니다. 곧 인습적 의식을 뜻합니다. 그것은 세상의 
질서에 관한 이치가 이렇고 저렇다고 하는 식의 사고의 틀입니다. 곧 닮은 것과 
다른 것을 인식하는 사고틀인 것입니다. 한데, 인습적 의식만으로는 풍향을 알 
도리는 없습니다. 그것은 느껴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말은, 인습은 단지 
그 느낌들을 표현하는 하나의 그릇일 뿐입니다. 그것으로 모든 것을 다 담아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성령은 바로 이런 바람과 같습니다.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것, 인습을 넘어서는 자유로움, 닮은 것을 가려내는 사고틀로부터 자유로운 것, 
바로 그것에 성령의 본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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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세상을 꿈꾸며]
우리도 살아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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