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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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sca (----용----)
날 짜 (Date): 2000년 10월 31일 화요일 오전 12시 15분 43초
제 목(Title): [한백설교] 금지구역


2000년 10월 29일 한백의 소리

금 지 구 역 


김 진호
 
 

때 : 통일염원 56년 칠백 여든일곱번째 예배에서(2000.10.29) 
 
본문 : 아모스서 7장12-13절/ 곳 : 한백교회당

 

아모스서 7장 12~13절
 
그리고 나서 아마지야는 아모스에게 말하였다. "이 선견자야, 당장 여기를 떠나 
유다 나라로 사라져라. 거기 가서나 예언자 노릇을 하며 밥을 빌어먹어라. ○ 
다시는 하느님을 팔아 베델에서 입을 열지 말아라. 여기는 왕의 성소요 왕실 
성전이다.                                                     [공동번역 성서]
 


10월 26일은 한반도를 둘러싼 두 사람의 거물이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하는 날이고, 
또한 두 명의 저격수가 그들과 각각 쌍을 이루며 살인자가 된 날입니다. 물론 그 
중 한 쌍은 지난 1979년 죽은 박정희와,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는 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입니다. 한편 그로부터 70년전, 1909년 10월 
26일을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역시 못지 않게 유명한 두 사람이 악연을 
맺는 사건이 이날 일어납니다. 이토 히로부미와 안중근이 그들입니다. 
박정희가 명치 유신의 영향을 받은 인물이라는 점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토 히로부미는 박정희의 닮은꼴이라는 어떤 이들의 주장이 그리 
무리한 것은 아닌 듯 합니다. 공교롭게도 이 두 닮음꼴의 인물은 같은 날 총탄 
세례를 받고 역사의 신기루가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들이 사라진 뒤에도 그들을 
동경해마지 않은 역사의 하수인들이 이 땅과 어떤 방식으로든 관련을 맺은 채 
존속하고 있고, 지금 이 시대에 그들의 유령을 환생시키기 위한 노력은 
우려스러울만치 만만치 않은 기세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도 그들은 
닮아 있습니다. 
한편, 김수환 추기경이 김재규의 저격 사건을 안중근의 의거와 비교한 이후, 이 두 
저격수의 유사성에 관한 논의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주장은 그리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지는 못합니다. 무엇보다도 유신의 하수인이었다는 김재규의 
이력은 안중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임에 분명합니다. 

 
아무튼 박정희,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 이 세 인물은 평가가 극적으로 교차되기는 
하지만, 공히 선명한 평가의 대상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들을 선이든 악이든 
모호한 얼굴의 인물로 보지는 않습니다. 반면 김재규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 
투명한 평가를 내릴 만큼의 인물적 합의가 그에게 내려지지는 않았습니다. 그에 
관한 역사는 여전히 아직 가공되지 않는, '날 것' 상태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인물적 합의라는 것은 '역사화'라는 지식의 세례를 거치지 않으면 안됩니다. 즉 
무엇을 역사적으로 평가하고 그것을 역사적 담론으로 사람들이 공유하게끔 하는 
과정은 역사적 가공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때 가공기술자는 물론 
'지식인'입니다. 이러한 지식인의 가공품을 사람들이 소비하는 가운데서, 사회적인 
공론이 그 평가 대상의 인물과 관련해서 만들어지는 것, 바로 그것이 인물적 
합의라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김재규 사건은 역사적 담론을 정교하게 구성하는 
기술을 갖고 있지 못한 군인들의 천박성 덕분에, 역사적 담론이 형성되지 않은, 
아직 날 것 상태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른바 '김재규 논쟁'은, 그가 독재 권력의 
심장을 향해 총탄을 날린 애국자인지 아니면 배은망덕한 가증스러운 배신자인지의 
문제는 아직 챔피언이 없는, 챔피언 자리를 두고 경합하는 지식 가공 기술자들의 
투전장인 것입니다. 아직 이 투쟁은 절대적으로 유리한 챔피언과, 불리함을 
감수하면서 싸워야 하는 도전자의 싸움터가 아닌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길게 역사의 네 인물의 닮은 점과 다른 점을 말한 것은, 사실 그들에 
관한 얘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라, 실제 경험되는 사건이란 불확실하고 '모호한 
상태'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에게 세례를 주는 것이 역사를 위해 
낳은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이 선명하지 않는 그런 것 말입니다. 어떤 사건이 
명료하게 판단된다는 것은 이미 그것이 역사화의 옷을 입은 상태라는 것을 
뜻합니다. 그 옷은 방탄조끼 같은 것입니다. 대단히 단단해서 웬만한 총탄으로는 
잘 뚫어지지 않는 그런 옷입니다. 가령, 박정희라는 역사화된 인물적 합의가 
얼마나 강력한지, 그가 구축한 유신체제의 비사에 관한 수많은 발굴기사들이 
심지어 TV를 포함한 유수한 대중매체를 타도 대중의 박정희 신드롬은 그리 
타격받지 않은 채 널리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가 빨갱이라고 
기소하여 온갖 고초를 준 사람의 하나가 대통령이 되고 나아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는데도 크게 손상받지 않을 만큼 견고한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합의에 대한 도전 담론이 접근할 수 없을 만치 강력한 금지 구역이 설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역(聖域)화됨으로써 누구라도 그 합의에 대해서, 명확한 
것으로 여겨지게 하는 효과를 갖습니다. 나아가 그 인물적 합의로 정당화된 일련의 
사회적 실천을 자명하게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효과를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박정희를 '보리고개를 극복하게 해준 역사의 은인'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의 산업화 정책을 의문의 여지없이 길이 남을 
그의 공적으로 평가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민족주의를 표방하든 
민주주의를 표방하든―박정희로 상징되는 사회적 실천을 당연히 정당한 것으로 
여기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합의에 대해 도전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다르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 명료한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세상은 투명한 진리로 둘러싸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야 합니다.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훨씬 복잡한 
현실이라는 것을 밝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이 도전은 금지구역을 향해 
진격해야 합니다. 그래서 금지구역 해체를 겨냥한 투쟁을 벌여야 하는 것입니다. 

아모스 예언자는 분열된 민족사에서 남쪽 유다 왕국의 일개 작은 목장주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느님의 명령을 받고 예언자가 됩니다. 그리고 그가 예언활동을 벌인 
곳은 팔레스틴 일대의 최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북왕국 이스라엘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성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왕의 성지 베델에 가서 하느님의 신탁을 
선포합니다. 고성장 시대를 맞고 있는 여로보암 2세의 정부를 향해, 발전 일로에 
있는 이스라엘의 정치권을 향해 아모스는 대중의 꿈을 배신한 정치를 고발합니다. 
정의를 팔아먹은 대신 얻은 발전을 저주합니다. 그런 점에서 유신 체제의 성장주의 
정책을 비판하던 몇몇 민중신학자들이 아모스 예언자의 텍스트를 특별히 주목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의 번영을 미화하던 지식인들이 반격을 가합니다. 그들은 발전을 
위해서는 현체제의 정당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는 그런 자들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체제에 도전을 가하는 그를 기소합니다. 그는 모반을 획책하는 자라고 
말입니다. 그는 체제의 안보를 위협하는 자라고 말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거짓 
신탁을 증언하는 가증스런 거짓 예언자라고 말입니다. 
그런 반격을 퍼붓던 지식인의 대표자는 아마지야라는 예언자입니다. 그는 왕실에 
고용되어 왕을 위해 신탁을 말하는 것으로 녹을 먹는 그런 자입니다. 그가 
아모스를 향해 안보논리를 내세우며 말하기를, 너는 네 나라로 가서 거기서나 
예언을 하라고 합니다. 말인즉, 남왕국 유다에서 왕실의 안보를 위해 일하는 
지식인이 되라는 권고입니다. 왜 남의 나라에 와서 '감 내라 대추 내라'하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은 어패가 있습니다. 왜냐면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은 우찌야 치하의 
남왕국을 예속화시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남왕국의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토 히로부미처럼 말입니다. 여로보암은 팔레스틴 
인근 지역의 성장주의적 안보체제의 핵인 것입니다. 아마도 아마지야는 여로보암 
덕택에 우찌야 왕실도 더 많은 부와 영토를 얻게 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일본 보수·우익의  인사들처럼 말입니다. 
그런데도 베델로 와서 여로보암에게 대항하는 이 낯선 예언자에게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엄포를 합니다. '다시는 이곳에서 말하지 말라. 이곳은 유다가 아닌 
이스라엘 왕의 성소다.'라고. 
아마지야가 선언하고 있는 금지구역론은 일종의 지식인론입니다. 이곳은 왕의 
정책을 지지하는 것만이 허용되는 공간이라는, 그런 지식만이 유통되는 곳이라는 
견해이고, 이곳에서 발언할 수 있는 자는 바로 그런 신탁을 선포하는 자뿐이라고 
말입니다. 모름지기 참된 지식이란 발전과 번영을 이룩하고 있는 논리를 
정당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인 것입니다. 

역사화는 날 것을 가공하는 역사적 테크닉입니다. 옳고 그름이 그리 쉽게 분별되지 
않은 모호함의 상태가 진리에 의해 모든 것이 투명하게 보이게끔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경험은 지식이 되고, 그리하여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실천 원리가 
되게 합니다. 해서 역사화는 필요한 것이고 가치 있는 사유의 과정입니다.
한데, 역사화는 정당화를 절대화하는 한계를 갖습니다. 그리하여 비판을 무디게 
합니다. 투명하게 보인다는 착각 속에 우리가 살게 함으로써 역사화가 허용하는 
가치에만 몰입하게 합니다. 바로 그렇기에 우리 가슴속에 아모스가 필요합니다. 
금지구역으로 쳐들어와 진리라고 여겨졌던 것들을 헤집어놓고, 잊혀진 것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그런 소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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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세상을 꿈꾸며]
우리도 살아가고
하나님도 살아가고. SCA!----http://www.hanbai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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