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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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sca (----용----)
날 짜 (Date): 2000년 10월  9일 월요일 오전 01시 23분 51초
제 목(Title): [한백설교] 주차전쟁


2000년 10월 8일 한백의 소리


주차전쟁 


김 진 호
 

때 : 통일염원 56년 칠백 여든네번째 예배에서(2000.10.8) 
 
본문 : 마르코복음서 10장 43~44절/ 곳 : 한백교회당

 

마르코복음서 10장
  43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사이에 누구든지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44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공동번역 성서]
 


요즈음 우리 집 앞은 주차 문제로 동네 사람들간에 한참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표면적인 원인은 새로 이사온 집 사람이 생각하는 주차의 상도와 
기존에 살던 사람들의 상도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처음 몇 번은 고성이 
오가며 싸움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전면전은 지양됐지만, 
그렇다고 서로간에 적대감이 해소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종종 주차된 차의 옆면에 
밤새 무엇에 의해 긁힌 자국이 생기기도 하고, 측면 거울이 파손되곤 합니다. 점점 
사람들은 신경질적 반응을 보입니다. 의심의 눈초리를 번뜩이며 은연중에 범인 
색출에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이웃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싸늘한 눈빛으로 상대방을 
쳐다보거나 아예 외면해버리곤 합니다. 또 어느 집이 공사를 하느라고 이웃에 
다소간의 불편을 주기라고 하면, 금새 불만을 터뜨립니다. 그럴 때면 긴장이 
고조되어 일촉즉발의 긴장상태에 떨어지게 되고 온 동네 집집마다 비상경계령이 
발동됩니다. 이렇게 우리 동네 골목은 목하 '냉전중'입니다(이렇게 말씀드리면
저는 아무 관계 없는 '관찰자' 같습니다만, 사실은 저도 이 '냉전'의 한 주체
입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요? 각 사람의 변을 들어보면 다들 틀린 얘기를 하는 건 
아닌데, 적어도 이해해 줄만한 구석이 적지 않은데, 그것이 만나면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보다는커녕 오히려 오해와 불신의 벽을 더 높이 
쌓아가기만 합니다. 다들 더 유익한 것을 위해서 노력했고 투쟁하기까지 했는데, 
결과는 모두에게 불편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딱히 누가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결과는 이토록 엉망진창으로 되어버렸을까요?
각자에게 정당하고 의로운 일들이 때로 모두를 위해선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사건을 통해서 단적으로 드러났습니다.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하면 질서가 잡히고 
궁극적으로 평온한 이웃관계가 정착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것이 이웃을 더 
괴롭힐 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해로운 것일 될 수 있다는 것이 
명명백백해졌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봅니다. 정당한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속으로만 품고 있는 게 
아니라 분연히 일어나 부당한 것에 대항해 투쟁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아니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또 생각해봅니다. 히틀러, 밀로세비치, 전두환 등과 같은 역사의 악마적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들도 어쩌면 자신의 '정당한' 주장을 관철시키려다가 그렇게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를 낳은 것은 아닌가고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진리를 알고 그것을 행하는 것뿐 아니라, 논하는 '방식' 또한 중요한 
것이라는 점에 주목하게 됩니다. 무엇이 옳은가, 옳으니 반드시 해야한다는 
주장뿐만 아니라 '어떻게' 그것을 실행하느냐도 중요한 것이라는 얘깁니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합니다. 첫째로, 자신이 주장하는 바가 옳더라도, 
방식이 잘못되면 만사를 그르칠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자기 주장대로 하면 
동네의 주차 질서가 좋아질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주장대로 사람들이 하도록 하기 
위해 소리를 지르고 완력을 과시해서 그를 제압하려 한다면, 그것은 결코 동네 
사람 모두에게 좋은 방식이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상대방이 
완력에 굴복하는 것을 전제로 해서만 실현할 수 있는 것이며, 이는 상대방을 
노예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굴복당한 이의 좌절감을 전제로 하는 
질서인 것입니다. 바로 이것은 예수님 당시의 질서 체계인 '팍스 로마나', 곧 
로마식 평화의 원리였고, 오늘날 패권국가인 미국이 추구하는 국제 질서관이기도 
합니다. 
둘째로 이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는, 자신의 주장이 옳을 수 있는 것만큼 
상대방의 주장도 옳을 수 있다는 점을 뜻하기도 합니다. 곧 대안은 하나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방식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다른 
것은 아니고 오직 자기 것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의견이 다른 
상대편을 대화 상대자로 마주하기보다는 적으로, 물리쳐야 할 대상으로 보게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인간이 그동안 추구해왔던 진리관은 문제가 있습니다. 진리를 
내용에서만 물었지 방식, 즉 실행 과정에서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정이 
빠져버린 진리관은 결국 갈등은 낳았고 폭력을 낳았고 정복주의를 낳았습니다. 
1492년 10월 12일은 콜럼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날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이 날은 참으로 위대한 날입니다. 무엇보다도 인류의 활동 공간을 비약적으로 
확장시켜 놓았기 때문입니다. 근대 문명이란 이렇게 공간의 정복을 통해 
실현되었던 것입니다. 그 이후 5백여 년이 흐르는 동안 전지구의 구석구석까지 
근대문명이 침투하지 않은 곳이 없고 기술이 활개치지 아니하는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지구화/세계화란 이러한 공간 혁명의 절정을 말해주는 근대 문명사적 
종착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세계적 사상가가 '역사의 종말'을 선언한 것은, 
바로 이러한 사고의 맥락에서 제기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위대함은 과정이 생략된, 내용만으로 구성된 진리관의 폭력의 역사가 
게재되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바로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 자체가 
이미 그러한 목적 지향적인 욕망의 귀결이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과정 없는 
내용의 진리'는 근대 문명사의 지배적 원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오늘 주차 전쟁이라는 동네 골목에서 벌어진 한 분쟁이 (이제까지, 특히 
근대에 와서는 더욱 첨예화되고 있는)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온갖 갈등의 
축소판임을 말하고자 했습니다. 사람들은 주차 영역을 자신이 점유하는 게 
정당하며, 그것을 위해 제기한 자신의 주차 질서 논리가 모든 이에게 유리한 
것임을 주장하기 위해 이웃과 다투기까지 했지만, 여기서 정작 중요한 것은, 주차 
자체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초점은 
사람들은 상대방을 제압하는 데서 오는 쾌감에 대한 향수에서 해방되지 못한 채로 
삶의 구체적인 국면들을 마주하며, 그런 와중에서 주차 전쟁도 벌어졌다는 주장인 
것입니다.

오늘 성서 본문은 바로 이런 현상에 대한 예수님의 문제제기가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향해 가던 길에서 벌어진 상황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 
것은 본문의 배경이 예수운동의 절정을 향해 가는 길목에서 벌어진 것임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그 놀라운 기적과 허를 찌르는 말씀의 날카로움으로, 점차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을 즈음,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올리면서 메시아 
기대에 흥분해가고 있던 즈음, 느닷없이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기로 합니다.
알고 보니 그 길은 그곳에서 벌어진 메시아의 결정적 사건을 향해 가는 
길이었습니다. 이 정보에 가정 먼저 접한 제자들은 기대에 찬 심정으로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때에 벌어진 한 사건이 본문의 맥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때 제자들간에 분쟁이 벌어진 것입니다. 곧 도래할 하느님나라에서 자신이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빚어낸 갈등이었습니다. 서로 자신이 
가장 큰 일을 해내리라고 주장하면서 그들은 다퉜던 것입니다. 아마 그들은 자신의 
기획을 떠벌리면서 논쟁을 벌였을 겁니다. 자신의 기획이 새 나라의 도래를 
앞당기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할 것임을 강변하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그 장면은 
전략 토론이 서로 대립하고 적대하는 모습으로 전개되는 양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더 이상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겁니다. 예수님은 소리칩니다. "그래서는 
안돼"라고. 통치자들이 하듯이, 타인을 권력으로 압도하려는 데 혈안이 되어있는 
모습을 그만 두라는 것입니다. 권력은 궁중과 요새 안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닙니다. 고관대작과 장군의 불호령 속에서만 권력이 발동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도 자칫 그들을 닮을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이런 말씀으로 이야기를 잇습니다. 다른 이보다 높아지려면 섬기는 자가 
되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무엇이 옳으냐는 논쟁에 몰두해있던 제자들을 꾸짖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진리는 주장하는 바 그것에 있는 게 아니라, 주장하는 방식에 있다는 것입니다. 
섬기는 마음으로 대화하고 토론하라는 것을 말합니다. 통치자들처럼 자기 주장에 
맞추도록, 곧 자기 식의 진리관에 따르도록 강제하는 것을 답습하지 말고, 
섬김으로 상대방과 대화하는 자세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 타인을 
압도하는 진리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주차 전쟁으로 점철된 인류의 분쟁사에 동참하려는 우리를 향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라고, 권력을 휘두르는 통치자들과는 다르게 
사고하고 해동하라고, 아무리 빛나는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바로 그런 통치자의 얼굴과 닮은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하라고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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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세상을 꿈꾸며]
우리도 살아가고
하나님도 살아가고. SCA!----http://www.hanbai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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