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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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doni (+ 도 니 +)
날 짜 (Date): 2000년 8월 10일 목요일 오후 01시 31분 15초
제 목(Title): 김 교신의 생애




제가 읽었던 선생에 관한 책은 " 김 교신 " 이었습니다.
후세 사람들이 선생을 위해서 사람들의 추억을 엮어서 만든 책이었습니다.
사실 선생의 삶은 그런 전기적인 삶보다는 성서조선을 통한 깊은 성서연구에서
더 감명을 저에게 주었습니다.  교회의 질적 부흥보다는 오직 양적 성장에만 눈이
멀어있던 당시의 시대상황하에서 (현재도 별 반 다를 바 없지만),
성서연구를 그토록 철저하게 실행하신 분도 찾기 힘들 것입니다.
마침 위에 퍼올린 글이 있는 홈페이지에 가니 김교신 선생의 생애를 잘 정리해
놓은 글이 있어서 여기에 퍼올립니다.   참고로, 김교신 선생은 해방을 4개월 
앞두고 함경남도 함흥 근처의 공장에서 발진티푸스로 돌아가셨습니다.
공장 노동자와 함께 하시면서 예수의 사랑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서울을 떠나서 공장에 취직 똑같이 노동을 하면서 봉사하던 중에, 아깝게도
운명하셨습니다.  40년을 앞서나갔던 위장취업자라고 할까요?
그리고 소록도에 복음을 전하신 분도 기성교회가 아닌 김교신 선생과 
성서조선 연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록도 한센씨병 환자를 위한 
선생의 고백과 기도문을 보면 눈물이 나올 정도로 선생의 사랑깊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고 함석헌 선생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죠.  선생께서 제일
존경하고 가까운 친구는 김 교신과 장준하 선생이라고. 
그럼 퍼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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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로 한국 민족을 거듭나게 하려 했던 인물 가운데 가장 탁월했던 사람은 
한용운과 김교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용운은 불교로, 김교신은 기독교로 
자신이 살았던 그 불행했던 시대의 한 복판에서 시대정신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한용운에 비해 김 교신은 알려져 있지 않다. 그것은 김교신이 걸어 온 
「무교회주의」 라는 길 때문에 안팎에서 「이단아」로 몰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고난의 역사 속에서 그 오욕의 역사를 영광의 역사로 돌리기 위해 그는 
살았다. 그의 인생과 신앙의 동지였던 함석헌 옹의 용어를 빈다면 그는 우리 
역사의 「씨알」이었다.

 김교신은 1901년 4월 18일 함경남도 함흥 사포리에서 부친 김념희와 모친 양신의 
사이에서 장자로 태어났다. 1903년 그가 두 살 때 부친은 폐암으로 사망하고, 
1912년 자기보다 4세 위인 함흥 주북의 한씨 가문의 한韓매梅와 결혼했다.

 1918년 함흥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일본에 유학하여 동경정측영어학교에 
입학했다. 이 무렵 유교적 인생관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가 기독교로 개종하여 
1920년 4월에 동경의 야라이쪼 성결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조직으로서의 
교회에서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면서 고민을 하다가 그 해 말 「무교회 
기독교」의 창도자인 우찌무라 간죠의(內村鑑三) 문하에 들어가 청강을 하고 7년간 
사숙을 했다. 한편 1922년 그의 나이 22세 때, 중등교사를 양성하는 최고의 
고둥사범인 동경고등사범학교의 영문과에 입학했으나 뜻한 바 있어 중도에 
지리·박물과로 전과하였고, 1927년 3월에 이 학교를 졸업했다. 

 1925년 우찌무라 문하의 한국인 유학생 6인이 함께 하여 「조선성서연구회」를 
만들었다. 이때 동인이 함석헌, 송두용, 정상훈, 유석동, 양인성이다. 1927년 7월 
이들은 오랜 숙원이었던 40페이지 전후의 신앙동인지『성서조선』(聖書朝鮮)을 
월간지로 발간하기 시작했다. 성서조선은 1930년 5월호인 16호부터는 김교신이 
주필로 책임 편집하는 개인잡지가 되었고, 이후 12년간 일제의 식민 경찰, 검찰의 
혹독한 검열을 견디면 계속 발간되다가 1942년 3월 158호를 끝으로 폐간되었다. 

 그 후 10년간 그는 양정보고에서 박물교사로 교육에 힘쓰며 후학들에게 애국인의 
길과 자세를 몸소 실천하며 영향을 주었다. 그의 제자로는 새싹회의 윤석중, 
덴마크의 농촌운동을 소개 한 류달영 그리고 마라토너 손기정등이 있다. 특히 
손기정의 회고담에 따르면 마라톤의 중간지점부터 선두가 되었는데, 그 때 
선도차에 탄 김교신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손기정은 그 스승의 눈물을 보며 
달려서 우승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직 찬 바람이 불고있던 1942년 3월 30일 「성서조선」의 제 158호의 
권두문인 「조와」가 발단이 되어 세칭 〈성서조선사건〉으로 전국 수백 구독자와 
동지와 더불어 검거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미결수로 1년가의 옥고를 치루 었다. 
당시 함께 투옥이 된 이들은 함석헌, 송두용, 류달영 등 12인이었고, 끝까지 창씨 
개명을 거부했다. 이 해에는 세계사에 굵직 굵직한 일들이 많았는데 인도의 간디, 
네루 등이 체포되어 투옥되기도 했다.

 그리고 꿈에도 소원이던 조선의 독립을 네 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1945년 4월 
25일 발진티푸스에 감염되어 일생을 바치며 사랑해 온 조선의 흙으로 돌아갔다.




====================[ 퍼온글 from http://myhome.netsgo.com/ahrir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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