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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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호연지리 �) <PPPa64-ResaleTac> 
날 짜 (Date): 2000년 6월  5일 월요일 오후 01시 18분 36초
제 목(Title): 훈훈한 이야기/ 라마산 이야기 



보드와 어울리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암튼 훈훈해지더군요.
하야니님 글 읽고 마음이 훈훈해져서 여기다 똥사놓고(글남기고) 갑니다.

헤헤. 

:)

 진중권 (kyoko@channeli.net)  Access : 590 , Lines : 39  
라마산에게 들은 얘기  
라마산에게 들은 얘기 





라마산은 터어키에서 왔다. 베를린에서 우연히 만나 5년을 친구로 지냈다. 거기서 
영국,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 이탈리아, 팔레스타인, 튀니지 저마다 국적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을 사귀며 수많은 얘기를 나누었지만, 고국에 돌아온 지금 유독 
터어키의 시골 아나톨리엔에서 온 이 '촌놈'만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그의 얘기를 
듣노라면, 우리가 산업화의 과정에서 경망스럽게 던져버린 '인간성'의 한 조각을 
느끼게 된다. 그 때문일 게다.  처음엔 문화차이 때문에 서로 힘들었다. 
모슬렘들도 극성스런 기독교인들 못지 않아서 끝도 없이 펼쳐지는 그 '알라, 알라, 
알라...' 얘기로 사람을 녹초로 만들곤 한다. 라마산도 처음엔 그랬다. 몇 번 
잔소리를 해 결국 알라 얘기는 그의 레퍼토리 속에서 사라졌고, 그후 함께 지내는 
데에 별 불편은 없었다. 그가 그렇게 중히 여기는 것에 관심을 보여줄 수 없는 게 
미안했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 코란 강의는 정말, 으아악......

그 점만 빼면 이 친구의 얘기에는 뭐랄까, '에스프리' 같은 게 있다. 가령 이런 
얘기. "어제 잠이 안와 기념교회 옆 광장에 나갔더니, 어느 동양애가 침낭에 
들어가 있더라구. 이슬비가 내리는 데 그것도 모르는 모양이야. 그래서 깨워서 
물어봤더니 한국사람인데, 영국에서 공부하다가 여행왔다고 그러더라. 비도 오고 
그러니 우리 집으로 가자고 그랬지. 그랬더니 대뜸 '얼마'냐고 물르면 자기가 가진 
돈이 20파운드 밖에 없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돈은 무슨 돈이냐' 그랬더니,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더니 '그럼 안 가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니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수첩을 보여주며, 내 친구가 한국사람인데 정 의심스러우면 
전화를 해보라 그랬지. 그래도 안 가겠대."

마음이 안 놓였던 라마산은 근처의 카페에 앉아 이 친구가 자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아랍애들 몇이 다가오더니 침랑 속으로 슬쩍 손을 
집어넣는 게 아닌가? '휘익-'하고 휘파람을 분다. 좀도둑들이 쳐다본다. 손을 
내저으며 '안 돼'라는 제스추어를 취했더니 그냥 사라진다. 근데 잠시 후 이 
녀석들이 바로 앞에 서 있는 게 아닌가. "너 왜 우리의 일 방해?"
"저, 친구 유학생인데 20파운드 밖에 없대." "그럼 그 돈, 우리 반반 나눠 갖자." 
"싫어. 다시 그쪽으로 가면 경찰을 부를 거야." 순간 녀석들의 표정이 험상궂게 
변한다. 기지를 발휘한 라마산. "알라께서 지켜보고 계신다. 알라를 두려워 하라."

국적이 달라도 '알라'는 모슬렘 세계에선 국제공용어. '알라'의 이름으로 
좀도둑들은 찍소리 못하고 그냥 돌아갔다. 그리고 우리의 라마산은? 동이 훤하게 
터올 때까지 그 친구 보초를 서주다가 돌아왔단다. 그 한국 유학생은 이 사실을 
알까? 혹시 "별 이상한 놈 다 봤네."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어쨌든 이 세상의 
각박함을 아나톨리엔에서 올라온 우리의 촌놈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라마산의 마음을 아프게 한 또 다른 얘기가 있었다. 어느날 길바닥에서 어느 
여성의 핸드백을 주웠다. 소매치기들이 돈만 털고 내버린 것이라 그런지 지갑만 
없을 뿐 운전면허증, 은행의 고객카드, 의료보험증 등 여러 가지 중요한 
증명서들이 들어 있었다. 다행히 핸드백 주인의 전화번호도 적혀 있었기에, 이렇게 
귀중한 물건을 잃은 여인에게 라마산은 부랴부랴 전화를 했다. 어느 젊은 
독일여인이 받더란다. 핸드백을 넘겨줄 시간과 장소를 정한 후 라마산은 
약속장소인 공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약속한 시간이 지나도 여인은 나타나지 않고, 
잠시 
후 경찰이 들이닥쳤다. 꼼짝없이 손에 수갑이 채워진 채 차를 타고 나가다 보니 
이미 공원으로 통하는 모든 길은 경찰에 의해 포위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이 황당함도 아나톨리엔에서 올라온 우리의 촌놈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무대를 바꾸어서 터어키의 수도 앙카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이름을 안 밝히고 
식료품 가게에 돈을 지불한 후 음식을 배달히게 한 어느 독실한 모슬렘의 얘기를 
읽고 감동 먹은 우리의 라마산. 그 분과 같은 멋쟁이가 되기로 결심한지 얼마 안 
된 후의 일이다. 앙카라 대학가 근처의 서점에 들어갔더니 한 청년이 꽤 비싸게 
보이는 책을 놓고, 들었다 놓았다 하며 살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이것을 본 
우리의 라마산, 책방 주인에게 가서 그 책의 값을 지불한 후 "저 청년에게는 내가 
지불했다는 얘기는 하지 말라"고 했다. 책방 주인이 그 청년
에게 다가가 어느 신사분이 당신 대신 그 책값을 지불했으니 그냥 가져가라고 
하자, 청년은 주위를 이리저리 휘둘러보더니 기분 나쁘다는 듯이 그 책을 툭 던져 
놓고 그냥 나가버리는 게 아닌가. 이 삭막한 무례함도 아나톨리엔에서 올라온 
우리의 촌놈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이미 너무나 산문적으로 변한 우리의 
삶에는 포에지(=시)가 없어졌다.  

무대를 바꾸어 라마산의 고향 아나톨리엔. 우리의 라마산이 사업을 하기로 했다. 
워낙 촌구석이라 외제 과일을 구경도 못한 이들에게 바나나를 들여다 팔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그래서 트럭 가득 바나나를 싣고 고향땅으로 달려온 라마산.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바나나를 사겠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제서야 시골 
사람들에겐 돈이 없다는 사실이 머리에 떠올랐다. 한참이 지나 오후 늦게 드디어 
첫 손님이 나타났다. 동네 아줌마였다. 이 아줌마 왈, 바나나는 먹고 싶은데 돈은 
없고, 그래서 토마토를 들고 왔으니 바꿔 먹자는 게 아닌가. 바
나나가 그렇게 먹고 싶다는데 우리의 라마산이 그걸 어떻게 거절해? 바꾸어 
주었다. 그랬더니 잠시 후 난리가 났다. 동네 아줌마들이 몽땅 다 손에 손에 
토마토 바구니를 들고 달려 나오는 게 아닌가. "그래서 어떡했는데?" "다 바꿔 
줬지." "아니, 왜?" "누구는 바꿔 주고 누구는 안 바꿔주고, 그럴 수는 없잖아." 
"그럼 그 토마토는?" "그 지방엔 쌔고 쎈 게 토마톤데, 그냥 이리저리 싣고 다니다 
상했길래 버렸지...."

이 친구를 만나면 자주 듣는 얘기의 유형이 있다. 그 중의 하나. "지난 달에 어떤 
할아버지가 돈을 좀 꾸어 달래서 꾸어드렸거든" "얼마나?" "4천 마르크(=250만원 
정도)." "그런데?" "근데 그 할아버지가 어제 돌아가셨어." 어이구, 이 등신. 
담보라도 잡아놓지. 혹은 이런 얘기. "우리 동네에 애들 데리고 혼자 사는 
태국여자가 있거든." "그래서?" "보기 딱해서 매달 얼마씩 생활비를 줬거든." 
"그런데?" "그 돈 갖고 노름하다가 다 날렸대." 또 하나의 유형은 이런 것이다. 
"그 동안 고향 친구한테 연락이 와서 고향에 일하러 갔었어." "무슨 일인데?" 
"배수관 공사인데, 한 두어달 일했지." "돈 좀 벌었겠네?" "근데 공사를 발주한 
건설국장이 뇌물공여죄로 감옥에 갔어." "그럼 돈은?" "못 받았지." "왜?" 
"발주자가 그 사람 개인명의로 되어 있더라고."

매사가 이런 식이다. 그런데도 이 삭막한 자본주의 속에서 생존하는 게 이상하다. 
라마산은 기적이다. 어수룩한 '인간적 면모'를 보존하고도 얼마든지 먹고 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즐거운 별종이다. 이러다 보니 그 나이가 되도록 아직 장가를 못 
가고 있지만...

라마산의 동네에는 한국전 참전 용사가 산다고 한다. 그 촌동네에서 그 머나먼 
동방의 나라를 구경하는 것은 아프리카 탐험 못지 않은 모험이어서, 그 분은 
한국전쟁이 끝난지 50년이 되도록 아직 '까레"(=한국)라고 불리워진다고 했다. 
한국의 고속도로 어느 곳엔가 터어키군 참전기념비가 있으며, 군대에 잇을 때 
터어키군의 용맹에 대해 들었다고 해주었다. 이 얘기를 라마산은 아마 그 
할아버지에게 전해드렸을 게다. 얼마 전 전화가 왔는데 그 분이 돌아가셨단다. 
이제 라마산의 동네에 '까레'를 기억할 사람은 없어졌다. 다만 그 동네에 나와 비
슷하게 생긴 젊은이가 있어 라마산은 그를 '중권'이라 부르고 있다. 최근에 장가를 
갔다고 하기에, 아직 본 적도 없는 또 하나의 중권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냈다.

베를린을 떠나기 전날 밤. 라마산은 우리가 비워주워야 할 집을 페인트 칠하러 
달려왔다. 안해 본 것이 없어 페인트공 경력도 10년이란다. 밤 늦게까지 꼬박 일을 
한 뒤, 나 혼자 끝내지 못했을까봐 떠나는 날 아침 일찍부터 찾아와 뒷처리를 해 
준 것도 라마산이다. 내가 비행기 시간에   기자, 마무리 정리는 자기가 할 테니 
빨리 공항으로 달려가라고 한 것도 라마산이다. 그리고 용케 일을 제 시간에 
마무리하고 공항으로 달려와 떠나는 나를 포옹해 준 것도 라마산이다. 귀국한지 
얼마 안 되어 소포가 왔다. 우체국에 가서 소포를 수령하니 그 안에서 매케한 
냄새가 풍겨나온다. 동네 근처 산에서 뜯은 야생차(茶)와 향신료가 잔뜩 들어 
있었다. 감사의 편지를 쓰면서 아직 미혼인 그에게 여자 친구를 만나거든 주라고 
예쁜 노리개를 동봉해서 보냈더니 어제 답장이 왔다. 물론 아나톨리엔에서 온 38살 
숫총각은 어른들에게도 예의가 발라 한 번 밖에 본 적 없는 우리 어머니에게도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마마. 터어키의 고향으로부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인사를 보냅니다. 
추운 겨울이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사는 산골은 아나톨리엔의 해안가보다 좀 더 
춥지요. 하지만 여기서 자연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게 저는 좋아요. ... 사
랑하는 마마. 지금 저는 92살이 되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고 산답니다.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이 모든 게 제 일이지요. 하지만 곧 삼촌과 숙모가 
돌아오시면 저는 이 일에서 해방되어 한국으로 날아갈 수 있겠지요...또 한번 
인사를 보내며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신이 마마를 지켜주시기를..." 

라마산의 사진과 이 글이 실린 '사과나무'를 터어키로 보내면, 아마 아나톨리엔의 
산골마을은 떠들석한 경사분위기가 될 것이다. 그 흐뭇한 장면을 상상하면서 
마지막으로 그의 신 알라께 한 마디. 오, 알라시여. 우리 착한 라마산을 
지켜주시오소서. 그리고 올해에는 제발 장가 좀 들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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