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Gilles) <posb.postech.ac.> 날 짜 (Date): 2000년 3월 25일 토요일 오후 02시 56분 08초 제 목(Title): 갈릴레오 vs 우르바노스 8세? 갈릴레오는 1964년 피사에서 태어나 스물세살에 피사대학 교수가 되었죠. (이때 '진자'를 발명합니다.) 그러나 28살때, 예수회 수사들과 그의 명성을 시기하던 이들의 모함을 받아 파두아로 물러가 18년간 수학 선생으로 생계를 유지합지요. 이때 그의 제자이던 코시모 데 메디치가 토스카나 대공이 된 후, 그의 보호속에 피렌체에 정착하게 됩니다. '대공의 수석 수학자'라는 직위아래 대공의 보호속에 수많은 주옥같은 과학적 발견을 하지요. (대공 = 코시모 2세) 이때 망원경, 수압계, 나침반, 온도계들을 발명(?)합니다.(그가 발견한 목성의 위성들에는 Stellea Medicae-메디치가의 별들-라는 이름이 붙어있다네요.) 그를 시기하던 무리들과 그를 증오하던 무리들(예수회 수사)들은 그를 음해하기 위해 갖은 음모를 다 사용했습니다. 1611년 그의 로마 방문시에는 융숭한 대접을 베풀어주던 당시 교황 파울 5세는 5년뒤, 그를 다시 소환하여 '지동설'을 유포한 죄를 종교 재판소를 통해 단죄했죠. (이떄,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하나 이것은 어떻게 보면 형식적인 단죄에 불과했습니다. 이후 유럽 유력 군주중 하나인 코시모 2세의 보호속에 계속 연구를 수행할 수가 있었거든요. 1624년 다시 로마로 갔을 때에는 새교황 [우르바누스 8세]에게서는 영예로운 대접을 받았었지요. 1630년 여전히 그의 학설이 문제가 되었으나, [교황 우르바누스 8세]는 그의 저서들은 순전히 수학저서로만 만들고, 교리서로는 만들지 말라는 '주의'를 주었을 뿐이었습니다. 예수회 수사들은 끊임없이 그에게 증오를 표출했으나, 교황은 이탈리아의 강국 [토스카나]와의 사이에 마찰을 빚기를 꺼려했죠. 그러나 그런 [정치적 장벽]이 나중에는 화근이 되어 돌아오게 됩니다. 중세 이탈리아인답게 유달리 '정치적'이던 교황 우르바누스 8세의 야심이 토스카나와 마찰을 빚게 된 것이죠. 메디치 가문이 소유권을 이중으로 보유하고 있던(카트린 데 메디시스로부터의 상속, 비토리아 델라 로베레의 지참금) '우르비노 공국'을 교황 자신의 가문인 '바르베리니' 가문의 소유로 삼으려고 술책을 부리게 된 것입니다. 교황과 메디치 가문이 '우르비노'를 사이에 두고 각자의 루트를 통한 외교전(메디치는 스페인의 펠리페 4세를 동원)속에 전쟁을 벌이게 되고, 이로인해 교황과 그의 가문'바르베리니'는 메디치 가문에 커다란 적개심을 가지게 됩니다. 결국 메디치 가문에 앙갚음을 하고 싶었던 교황은 '대공의 수석 수학자' 갈릴레오를 재물로 삼게 되죠. 3년전의 관대함은 아랑곳없이 종교재판소로 소환하게 됩니다. 이때 토스카나 대공은 코시모 2세의 아들인 '페르디난도 2세'였는데 이 인물은 워낙 유약했던지라 교황의 압력에 굴복하고, 그의 스승이기도 했던 70노구의 과학자를 종교재판소로 보내버립니다.(이일로인해 두고두고 욕을 먹게 되죠. 시대의 악덕으로부터 철학과 예술의 자유를 수호해온 것이 메디치 가문의 자랑이었었거든요. 윗 글에서 갈릴레오와 우르바노스 8세의 논쟁이란 말이 있던데, 논쟁도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권력을 쥔 이의 화풀이 대상이된 가련한 과학자가 있었을 뿐...(종교적인 이유만으로 박해를 받았다기보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박해를 받은 것도 한 몫하죠.) 그뿐만 아니라 순수철학 자체를 극도로 혐오하던 예수회 수사들의 증오속에 고문의 위협을 받은 갈릴레오는 정식으로 단죄당하고, 자신의 모든 학설을 철회하고 종신형을 선고받습니다. 34년 그의 유일한 위안이던 딸도 사망하고, 본인도 눈이 멀어져 더이상 하늘의 아름다운 별들을 관찰할 수 없게 되었죠. =========================================================================== 결국 갈릴레오의 예는 항간에 알려져 있는 바와같이 '교권과 과학'사이의 대립만으로는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비록 예수회 수사들은 과학을 증오했지만, 교권과 교황은 양자 사이에서 중재를 위해 노력을 했었거든요. 단지 '정치적 문제'가 개입되었을 때에야 교권과 교황은 과학자들을 박해했죠. 이 예는 '정치에 너무 밀접히 연관된 과학자의 위험성'도 마찬가지로 다루고 있는 듯..... 쓰고보니, 기독교 보드에 별로 맞지 않는 글인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