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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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Picolina (Koinonia)
날 짜 (Date): 1995년06월15일(목) 00시00분55초 KDT
제 목(Title): 사색의 창



사색의 창...

  1. 헤픈 여자

  야트막한 언덕으로는 노란 보리들이 잔잔한 바람에 부드럽게 쓸리고 
지중해 물빛 먹은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꼴라쥬로 널려  있다. 그리고 
비탈 아래쯤에는 조금 투박해 보이는 우물이 하나  있다. 빈센트 반 고
호가 이 마을을 그렸다면 크로 평원(빈센트  반 고호 / 1888年作)을 그
렸을 때보다 원색을 훨씬 더 많이 사용했을  것이다. 이 마을은 사마리
아 중부에 있는 수가라는 마을이다. 나도 그녀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
지고 있지는 않다.  그녀는 이런저런 이유로 몇 번이나  남편을 바꾸었
다. 세 번 이상은  절대로 배우자를 바꿀 수 없다는 우리의  관습을 별
고민 없이 깨뜨린  얼굴이 딱딱한 여자였다. 나는 그녀의  유쾌하지 못
한 결혼 경력에 더  이상 흥미가 없다. 문제는 그녀가 헤픈  삶으로 인
해 이웃에게 외면당하고 단절되었다는 점이다. 그녀는  메ns떳 인간 관
계를 갖고 힘겹게 살아가는 여자였다. 이웃인  우리들은 우리들의 내부
에서 가끔씩 일어나는 음욕한 죄들을 덤덤히 덮어 두면서 공개적인 부
도덕을 갖고 있는 그녀를 '얘야, 너는 커서  저 여자처럼 하면 안 된다'
라는 자녀  교육용으로 사용하였고 그녀는  따가운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다.  이런 관계가 그녀와 우리 사이에  차곡차곡 담
을 쌓고 있었던 것이다. 깨진 인간 관계를 회복시켜 줄 사람이 없었다. 
아니 그럴 필요를  우리는 가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대로  계속 그렇
게 살아가고 우리는 우리대로  지저분한 내부를 움켜안고도 평범한 척 
살아갈 수 있으니까.  그녀를 포함한 수가 마을은 야곱의  우물물으 함
께 마시면서도 서로가 적절한 사이를  두고 별탈 없이 잘 지내 왔으니
까.
  그런데 지금 그녀가  내 상념을 깨며 문을 쾅쾅 두드리고  있다. "예
수라는 분이 야곱의 우물가로 오셨어요. 그는 틀림없는 메시야예요. 메
시야라고요!" 한번도 이웃을 두드려 본 적이 없는  그녀가 우리 사이의 
벽을 두드리고 있다.  예수가 어떤 분이기에 저 여자를  저렇게 뒤흔들
었는가. 가벼운 겉옷을 걸치고 비탈 아래쪽으로  두툼한 우물가로 달려
간다. 예수가 있다. 예수  그가 그녀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았듯이 마을 
사람들의 내부에 벽화처럼 걸려 있는 편견과 음욕과 무관심을 뚫어 보
셨다. 우리는 그녀와  다를 바 없이 진정한 생수가  필요한 사람들임을 
알게 되었다. 예수는 우리들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려고 헤픈 여자를 
사용하셨다. 우리 모두가 외면했던  그녀를. 내 기억에 원색과 굵은 선
으로 가득 찬 고호의 그림보다 더 깊게 남겨진 사건이었다.

  2. 유능한 청년 

  평지 꽃이 덮인 들판이 끝나고 마을이 시작되는 그래서 군데군데 채
마밭이 눈에 띄는 길. 금빛 먼지를 일으키며  걷던 예수와 뜨네기 같은 
그의 제자들 앞으로  한 청년이 다가서고 있었다. 유카리  나무 그늘이 
군청색으로 내려앉은 곳에서 젊은  청년과 삼십대 초반의 청년이 마주
섰다. 나는 숨을 죽이며  그들의 만남을 긴장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막
연한 호기심을 넘어서 약간의  불안이 깃들인 초조감으로 바라보고 있
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 청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는 재산이 많으면서  지적이었고 감각도 있는 사람이었다.  관원이라
는 직위는 상속된 재산으로 부유를 누리는 놈팽이가 아니라는 것을 말
해 주고 있는 것 같아 그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다. 젊은이로서는 드
물게 율법에 철저한 대단한 청년이기도 했다. 모두들  그를 흠 없는 엘
리트라고 불러 주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웃이 없었다. 그는 반짝이는 
솔로몬 반지였으나 아무도  그 반지를 끼려 하지 않았다.  남에게 피해
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깔끔한  인생을 꾸려 가고 있었지만 질박한 인
간 관계가  없었다. 그는 우리들  사이에서 '얘야, 이담에 크면  저렇게 
되야 해' 하는  교육용의 모범과 표상이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와 
우리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감히 그럴 수
도 없었지만 그럴  필요도 심각히 느끼지도 않았다. 깨진  채로 분리된 
채로 그는 그대로 살아가고  소시민인 우리는 우리대로 살아가면 되니
까. 그게 서로가 편하다고 생각해 왔으며 익숙해져 있으니까.
  그런 그가 지금 흔들리는  풀꽃처럼 유대 지방에 잔잔하면서도 선명
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그 앞에 서  있다. 자신
의 삶에 대한 자랑스러운 평가를 확인하기에는 예수와 그의 제자의 행
색이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나는 2년 전 수가 마을의  여인을 떠울리
면서 청년도 틀림없이 변화되리라 생각했다. 푸른  깃발을 날리는 그의 
견고한 삶의 성(城)이 여리고 성처럼 무너질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충
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그는 두뇌 회전이 빠르고  윤리적 도덕적 
행위에 예민하니까.  깨어진 인간 관계를  회복하는 데 별무리가  없을 
거라는 예상을 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예수가 "네 모든 것을 팔
아 이웃에게  주라"고 했을 때  그는 돌아섰다. 예수와의  관계도 깨진 
채로 이웃과의  관계도 소원(疏遠)한 채로  재산을 움켜쥐고 돌아섰다. 
짧은 대화 속에서 그의 번뜩이는 지혜와  계산이 메시야를 발견했는데, 
이웃의 소중함을 느끼는  데는 별도움이 되지 못했다. 예수는  곧장 여
리고로 가셨다. 세리장 삭게오가 있는 마을로.


  3. 오목 거울에 비친 나

  복음서를 닫았다. 그러나 여전히 내 주위에는  방관자인 나와 상대하
기 싫은 사마리아 여인과 내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격이 높은 엘리트 
청년이 있다. 예수 때문에 만난 이들, 예수 공동체 안에서 종종 마주쳐
야 하는 이들과  어떻게 섞이며 어떤 방식으로  마음을 나누어야 하는
가. 우리   사이에 있는 단절과  무관심의 담에는 이미 이끼와  담쟁이 
넝쿨이 그럴듯하게 자라  있는데, 이런 채로 살아가는 것이  옳지는 않
으나 편한데. 죽음을 치르시면서까지  막힌 담(엡 2 : 14)을 허신  예수
의 눈빛이 유난히 따갑다. 
  스테인레스 스틸 숟가락을  들고 얼굴을 비춰 본다. 헤픈  그러나 소
탈한 여자보다 옹색한 청년의 모습을 더 닮은 내 얼굴이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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