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시대의 심판 (3)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계속해서 노아시대의 심판, 홍수에 대해 같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 아졌더라" 여기 7장에 보면 노아가 방주를 전부 다 만들고 난 뒤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준행 했다는 말과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또 암수 짐승들이 둘씩 노아에 게 나아와 방주에 들어갔더니 하는 이야기가 있고 그 다음에 무릇 기식있는 육체 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에 들어갔으니 여기 말씀에 '방주에 들어갔다'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노아가 노아 당시에 120년이라고 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방주 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누구나 방주에 들어가면 되도록 준비가 다 되어 있습니다. 이제 앞으로 장차 큰 무서운 심판이 오게 되는데 누구든지 일어나서 방주 안에 들 어오면 구원을 받게되고 아무리 잘나고 똑똑한 사람이라도 방주 밖에 있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알아야 하는 것은 구약에 나타난 어떤 위 치나 처소는 신약에서 우리 마음이 서야 할 위치를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 니까 이제 노아 홍수 당시에 구원을 받은 사람이나 짐승은 그들의 위치가 어디에 서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방주 안에 있느냐, 방주 밖에 있느냐 그것으로 그들이 멸망을 받느냐, 구원을 받느냐가 결정되어 지는 것입니다. 이제 성경 말씀에 보니 까 여호와께서 그 방주에 들어간 모든 것의 암.수가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 하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여호와께서 노아와 그 모든 가족들과 짐승들이 방주에 들어간 뒤에 문을 닫아 넣은 뒤에는 이제는 방주안의 사람과 방주 밖의 사람에게 엄연한 문이 선을 짓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이 닫혀지기 전에는 누구든지 방주 안에 들 어가는 것이 어렵지 아니하고, 또 방주 밖으로 나오는 것도 어렵지 않지만 일단 문을 닫고 나면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그 당시의 사람들이 얼마나 착하게 살았느냐 열심히 기도했냐 거기에 달려있지 아니하고 다만 내가 방 주 안에 있느냐 방주 밖에 있느냐? 그것에 따라서 그들은 구원을 받느냐 못받느냐 하는 것이 결정이 되어 진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아는 것입니다. 사람 뿐이 아닙니다. 그들의 재산이나 그들의 모든 것도 일단 방주 안에 가지고 들어오지 아니한 모든 것은 이제는 노아와 아무런 상관이 없이 영원한 이별을 해 야 하는것 밖에 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아는 그 당시에 사 람들에게 방주에 들어 갈 것을 권하고 간절하게 그들에게 부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참 불행하게도 노아의 여덟식구 외에 그 많은 사람들이 한 명도 방주 안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구약 성경에 나타난 모 든 그 위치는 방주 안이냐 밖이냐 하는 그 위치는 오늘 신약에 와서 우리 마음의 위치를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몸으로는 교회를 나가도 마음의 위치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은혜 안 에, 정말 그 안식 안에, 거룩함 안에 들어와 있지 아니하면 그것은 참된 믿음이라 고 말할 수 없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그 당시에 어떤 사람들이 구원을 받으려고 하면 지금까지 자기가 서 있는 땅에 앉아서 놀고,먹고, 마시고,농사짓고,집을 짓고 하던 그 땅에서 벗어나서 떠나서 일단 지금까지 가 보 지 않았던 그 방주 안으로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야만 구원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 이 시대 우리가 이제 영원한 하나님 앞에서 구원을 얻기 위 해서는 우리가 현재 살고있는 이 위치, 다시 말하면 우리 마음이 머물러 있는 이 세상에 속한 위치에서 마음이 거기 앉아 있으면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가 없 습니다. 구원을 받기를 원한다면 현재 우리가 서 있고 앉아 있는 이 위치를 우리가 떠나야 한다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정말 우리의 참 회개라고 하는 것입 니다. 탕자가 자기가 살고 있던 돼지 우리를 떠나서 아버지께로 돌아 왔듯이 정말 우리가 서 있는 이 위치에서 떠나서 주님 앞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강도 가운데 한 사람은 여전히 그가 십자가 위에 매달려 있지만 그 마음 이 그 위치에 그냥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그 마음이 거기서 떠나서 예수님께로 돌아왔기 때문에 그는 은혜를 입을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잘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내가 무엇을, 열심히 농사짓고, 열심히 살 고, 본을 보이고, 머리를 쓰고 했던 이런 내 계획, 내가 머물고 있던 이 마음의 위치에서 떠나서 이제는 새로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그 속으로 들어가야만, 방주 안으로 들어가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가 참된 신앙 이라고 하는 것은 애가 열심히 노력하고 내가 선을 행하고 내가 하나님의 뜻을따 라 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런 어떤 내 행위로 믿음의 생활을 하려고 하면 그 위치에서 일단 우리는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위치에서 떠나서 그러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그 다음에 이 사람이 구원을 받 으려먼 자기가 일 한것이 아닌 노아가 다 만들어 놓은 방주 안에 미안한 것을 무 릅쓰고 은혜를 입기 위하여 방주 안에 들어가면 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지금 까지 행한 선을 행해서 살려고 하고 율법을 지켜야 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주일을 지키고 내가 하나님께 나가기 위하여 어떤 준비를 하는 그 위치에서 떠나서 내가 무엇을 잘 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고 하는 그 위치에서 떠나서 하나님께서, 주 님께서 나를 위하여 예비해 놓으신 내가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완벽하게 이루어 놓으신 그 방주안에 들어가듯이 우리의 마음은 내가 하려고 하는 위치에서 떠나서 주님이 다 이루어 놓으신 그 위치로 들어가는 것을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노아 홍수시대 때 구원을 받으려면 이제 방주가 다 만들어졌는데 내가 하나님 보 시기에 잘 살고 깨끗하게 살려는 그 위치에서 떠나서 방주 안에 들어가면 되는 것 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노아가 방주를 다 이루어 놓았듯이 우리의 죄를 사함받 고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모든 일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 놓았다는 것입니 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이 하신 어떤 일에 부족함이 있어서 내가 무엇을 더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하게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손끝만큼도 남김이 없이 온전하게 다 이루어 놓으시고 씻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죄의 댓가를 다 지불해 놓으셨다는 것입니 다. 그러니까 구약 시대에 양을 잡아 드리는 제사, 소를 잡아 드리고 염소의 피로 드리는 제사는 그 당시의 죄 밖에 씻지 못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위 해서 영원한 제물이 되어 주셔서 우리 죄를 영원히 씻으셨습니다. 그리고 구약 시대때 제사장이 양을 잡아 드리는 제사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에 못 박혀 죽으신 그 제사와의 차이는 양을 잡아 드리는 제사는 정말 그 당시의 죄만 씻었지 영원히 씻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죽음 은 영원한 속죄를 이미 이루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 에 나가서 해야 할 여러가지 일이 있다면 바로 다른 모든 일은 해야할는지 몰라도 우리 죄에 대한 일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온전히 다 이루어 이미 끝을 냈기 때 문에 우리가 더 해야 할 필요가 없고 일을 해야 할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은 사단에게 속아서 자기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 무엇인가 더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해야 할 어떤 기준을 정해놓고 거기에 도달하지 못할 때 '나는 부족해서 정말 신앙생활 잘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단은 우리 마음에 신앙생활하는 어떤 기준을 정해놓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의 어떤 기준을 정해놓고 그 만큼 신앙 생활 잘 함으로 하나님 앞 에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신앙 생활이라 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예수님이 하신 것을 내가 한 것으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서 우리 죄를 위하여 온전하게 다 이루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죄를 사함받기 위해서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은 내가 무엇을 열심히 하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다 이루 어 놓으신 그 위치에 나의 마음이 선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 노아 홍수 당시의 사람들이 방주 안에 들어가 무엇을 하려고 생각 해 보 니까 방주를 짓는 일이나 간을 막는 일이나 그 안에 곡식이나 먹을 양식을 갖다 들여넣는 일이나 노아가 다 끝내놓았기 때문에 그들은 방주 안에 들어가 그냥 쉬 고 먹고 마시면 되는 것처럼 그들에게 방주 안에 들어가 무엇을 하려고 해도 할 일이 없는것처럼 우리 죄를 위해 할 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벽하게 모든 것을 이루어 놓으셨기 때문에 이제 이상 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만한 일이 없다는 것 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냥 주님께서 내 모 든 일을, 내 죄를 모조리 다 이루어 놓으셨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으로 이제 내가 완전하게 되었다는 그 사실을 믿는 믿음위에 내 마음이 서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 니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 죄를 씻기 위해 하신 그 일은 온전하게 다 이루어 놓은 일인데도 그 사실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 사 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무엇인가 자기가 열심히 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는 것입니다. 내가 죄를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으로는 온전하게 이루지 못했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그것은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주님께서 나를 위해 온 전하게 이루신 그 사실을 믿은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 니다. 계속 노아 홍수에 관해 좀더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7장 17절에 보면 "홍수가 따에 사십일을 있었는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 올랐고 물이 더 많아져 땅에 창일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 물이 땅에 더욱 창일하매 천하 에 높은 산이 다 덮였더니 물이 불어서 십 오 규빗이 오르매 산들이 덮인지라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지면 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 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 더라" 이 창세기 말씀을 읽어보니까 하나님께서 물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 물 이 온 높은 산에 다 덮여버려서 땅 위에 있는 모든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모든 것이 다 죽었더라 그러나 노아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홍수가, 심판이 내릴때에 방주 밖에 있는 사람은 그 비가 곧 그들의 멸망을 의미하고 그들의 죽음을 의미하지만 방주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비가 안왔느냐 하면, 비가 안온 것이 아니지만 심판이 왔 어도 그 방주는 능히 죽음을 피할 수 있도록 완벽하게 준비된 것이기 때문에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완벽한 구원을 받은 것을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방주 밖에 있는 사람과 안에있는 사람 두 사람들에게 동 일하게 다 비가 왔지만 방주 밖에 있는 사람은 비를 피할만한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지만, 방주 안에 있는 사람은 방주 자체가 물에 떠다녔기 때문에 물이 아 무리 많아도 그것은 그들에게 아무런 심팜의 두려움이 되어지지 못했다고 하는 것 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구원이 이런 것입니다. 심판은 의로운 사람이나 선한 사람 이나 모두 내리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그 약속 안에, 구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심 판이 와도 그 심판이 자기에게 심판이 되어지지 않기 때문에 심판에 이르지 않는 다고 성경은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약성경 창세기를 읽어보면 소돔과 고모라 성에 심판이 올 때에 하나님께서 소돔, 고모라성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다 멸하셨지만 롯과 그의 가족들은 이미 심판을 피했기 때문에 유황불이 떨어지는 것 이 그들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출애굽기 12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하나님께서 집집마다 다니면서 장자를 전부 다 멸하는 그런 무서룬 심판이 있었는데 양의 피를 문설주에 칠한 사람들은 죽음의 사자가 왔지만 그들에게 미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장차 이 세상을 죄악으로 말미암아 심판 하실때에 모든 사람에게 심판이 내리지만 믿음을 가지고 있는 방주안에 있는 사람들은 심판이 왔지만 그 심판이 심판이 되 어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약성경 출애굽기 12장에서 양을 잡아서 문 설주와 좌우 인방에다가 피를 칠한 그 집 심판의 천사가 왔지만 그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넘어서 다른 집으로 갈 수 밖에 없듯이 우리가 저지른 죄를 인하여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아야 하므로 심판이 왔지만 이미 양이 죽어서 피를 흘려 죽은 그 증거로 피가 문설주에 발려진 사람들의 집에는 천사가 들어가지 않는 것처럼 우리 가 심판을 받아야 할 그 심판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해서 심판을 받으셔서 피 를 흘리고 죽으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바로 나의 죄의 모든 형벌을 받 은 증거가 되기 때문에 내가 저지른 어떤 죄이든지 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흘린 그 보혈이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나의 죄를 벌받은 증거라는 사실 을 마음에 믿는 사람들 마음에 그것이 확실하게 간직되어 마음에 변치않는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심판이 온다고 하지만 그것이 심판이 되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심판은 심판을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심판을 주는 것이지 이미 심판을 받은 사람 들에게는 심판이 이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서 2000년 전에 갈보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그 죽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아니라 나의 죄를 심판을 받은 나의 죽음이기 때문에 심판이 이제 이상 더 우리에게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자 들은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하고 말했습니다. '내 말을 듣고' 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어떤 일을 행하셨고 우리 죄를 위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그 행하신 것과 또한 그 사실을 믿는 사람에게 어떠한 약속 을 준 그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 마서 10장에는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그랬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알지 못하고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먼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가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저주를 받 을 수 밖에 없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인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 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사실 우리의 모든 죄의 형벌을 받으신 그 사실을 우리는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귀로 듣고 말씀을 읽어 알고 두번째로 그 것을 듣기는 해도 마음에 믿지 아니하면 그것은 아무런 의마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그 사실을 우리는 듣고 또 말씀을 통해 깨닫고 알고 '아! 내 죄가 십자가에서 과연 끝이 났구나! 내 형벌을 십자가에서 다 받았구자! 이제는 심판을 받을 심판이 없구나!'하고 마 음에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인 자에게는 어떠한 심판이 와도 그 마음에 심판이 미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미 그는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이미 십자가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바로 우 리의 죄를 위한 심판이었기 때문에 우리 죄에대한 심판이 십자가에서 끝이 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의 죄에대한 심판이 끝이 났고 우리의 형벌이 끝이 났고 우리의 죄가 거기에서 끝이 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 에 우리가 무슨 죄를 저질렀던지 간에 그 죄에 대한 심판을 다 받고 형벌을 다 받 은 뒤에는 우리를 다시 벌하려고 하는 사람이 올찌라도 그들을 두러워 할 필요가 없는 것은 이미 그 죄에대한 심판이 끝났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주 안에 있는 사람은 아무리 비가 와서 산 꼭대기를 덮고 할찌라도 그 방주가 그들을 하나님의 비의 심판에서 온전하게 지켜준 것처럼 천사가 와서 롯을 소돔과 고모라 성의 유황 불에서 온전하게 해방을 시켜주신 것처럼 바로 유월절에 양을 잡은 그 어린 양의 피가 그들을 죽음에서 해방시켜 주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에 못 박혀 죽으심은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거기 에다가 다 쏟으셨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내릴 심판이 끝이 났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든지 간에 우리 죄를 위하여 심판을 내릴 심판 을 하나님은 끝을 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제일 마지막에 하신 말씀인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 은 하나님이 심판을 내릴 심판을 다 받았고 심판을 다 끝냈고 우리를 위해서 해야 할 죄의 모든 형벌을 다 끝을 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노아 가 방주안에 들어간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에 대한 죄의 심판이 끝난 것을 믿음으 로 우리 마음이 정말 그 믿음 안에 들어와 우리 마음이 참 쉼을 얻는 것을 말해주 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정말 죄로 멸망을 받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여러분들을 위하 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 사실을 믿는 믿음은 여 러분의 마음을 죄에서 해방시키고 평안하게 해주며 심판의 두려움에서 여러분의 마음을 해방시켜 주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직 믿음이 들어왔다고 하지만 나는 죄 때문에 고민하게 되고 내가 심판을 받게 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면 그 사람 속에 는 온전한 믿음이 임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위하여 십 자가에 못 박혀 죽어 주셨지만 그 마음은 아직까지 죄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기 때 문에 그런 사람은 구원을 받았다고 말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죄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상 더 우리가 죄 를 두려워 하거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거기서 마음이 참된 자유와 해방을 얻는 것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 성경을 통해서 우리들이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죄에서 구원하실 이 놀라운 사실들을 깨닫게 하 기 위하여 구약의 아브라함이나 다윗이나 롯이나 아니면 노아나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서 어떻게 구원받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바로 노아 홍수 당시에 그들이 심판을 받지 않은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어떤 선한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방주 안에 들어갔으므로 그들이 심판을 받지 않은 것처 럼 오늘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모든 죄를 온전하게 씻으셨고 나의 모든 심판을 받으셨다는 그 사실을 믿는 믿음 안에 내 마음이 머물러 있을 때 이 심판이 다시 나를 두렵게 할 수 없고 내가 저지른 죄가 다시 나를 지옥으로 끌어갈 수가 없으며 나를 다시 아무도 정외할 수가 없다 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 로마서 8장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 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 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냐"고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말씀했습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 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우리는 아무도 정죄할 수 없다고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셨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 를 위하여 영원한 속죄를 이루시고 우리를 의롭게 하셨기 때문에 아무도 어느 누 구도 정죄할 수 없다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 이 놀라운 사실을 믿음으로 여러분 마음이 죄에서 해방을 받고 참된 쉼을 누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까지 죄 때문에 두려워 하고 떨고 있습니까? 정말 여러분들이 이 죄 사함을 받고 내 어떤 행위를 바라보지 말고 날 위하여 십 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나의 죽음으로 날 위해 죽으신 그 죽음이 내가 심판 받은 것으로 믿는 믿음 가운데 견고하게 서서 여러분의 마음이 심판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견고한 가운데 서 있을 때 여러분들은 바로 하나님 앞에 구속함을 받고 믿음으로 여러분의 마음은 거룩하게 되고 의롭게 되어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계속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