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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MU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하늘이)
날 짜 (Date): 1998년02월05일(목) 04시52분36초 ROK
제 목(Title): [스카이] 그때 그시절...



난 국민학교(초등학교라구 뭐라 하시지 말아요.  제땐 이랬으니.)를 부산에서 
나왔다.
당시 국민학교는 큰 운동장을 앞으로 'ㄷ' 형으로 생겼는데 맨 왼쪽 부분 건물 
뒤로 화단과 가축(?)장이 있었다.  드려진 철망과 장사이로 거위가 있었고 그외 
몇종류의 새가 있었던 것 같은데 잘은 기억이 안난다.

국민학교 6학년 마지막 겨울 방학.
중학교에서의 학업에 걱정하며 이리저리 공부하러 다니고 잔뜩 긴장하고 지낼 
때였는데 방학전에 우리 반에 봉사 활동이 내려왔다.
우리 반에 4명이 겨울 방학동안 학교에 매일 나와서 가축 사료를 먹여라는 
것이다.  거기다가 가끔 청소도 하라하고.

글세...아무리 어린 애들이였지만 누가 할려고 하겠는가.  난 가축장에 가본 일이 
거의 없었다 6년 동안.  한번 화단에 뭘 심는다고 가본 적이 있었는데 가축장에서 
나는 냄세가 고약했다는 기억밖에.

아무도 안할려고 하니 담임 선생이 어떡하겠는가.  결국은 담임이 그냥 찍었다.
난 집이 학교에서 무진장 가깝다는 이유 하나로 4명 중에 뽑힌거였다.
일방적 지명에 거절할 수도 없고 난 그때부터 '우씨 방학은 다 망했다"하며 그냥 
투덜투덜 거렸었다.

겨울 방학이 시작되고...담날부터 애들과 시간을 정해 매일 정오에 학교에 오기로 
했다. 

첫날...4명이 다왔다.  일단 청소를 하고 물그릇들에 물도 떠다주고 사료도 
먹여주고 왔다.  청소하는게 여간 고역이 아니였다.  동물 냄세에 오물 냄세까지 
더해서 이거 참 할 짓 못되구나 생각이 들고 이걸 2달이나 해야한다니 절로 한숨만 
나오는 것이였다.
청소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하면 되니까 그담부턴 그냥 와서 물만 떠주고 사료 
부어주고 그다지 힘든 일은 아니였다.

처음 일주일은 애들이 잘나왔다.  그러던 것이 두번째 청소를 할 쯤에서 하나 둘씩 
핑계가 생기면서 빠지는 거다.  물론 나도 그때부터 점점 가기가 싫어지고 왜 
이런걸 내가 해야하나 하고 짜증만 나는거다.  그래서 나두 어느날부터 빠지기 
시작했다.
에이...4명인데..누구 하나만 와도 다 주는데 뭐..

그렇게 3일이 지났다.
혹시나..하는 생각이 불현듯 드는 것이다.  
만약 아무도 안오면...그 새들 다죽으면 어떡한담...
슬슬 걱정이 되는거다.  학교까지 5분정도 걸어서 가는 거리라 바로 나서서 학교로 
갔다.  역시나...그동안 아무도 오질 않았었다.  사료 놓아둔 것도 그대로고 
물그릇에 물은 하나도 없고 새들은 꿈쩍두 않고 가만히 엎드려서 새장안에 그대로 
있는거다.
하나도 움직이지 않으니 죽었는지 싶어서 덜컥 겁이 나는 거였다.  그래서 나무 
꼬챙이로 찔러봤다.  다행이...그냥 힘이 없어서 그러구 있었던 거였다.
아무도 돌보지 않은 그 새들이 갑자기 왜그렇게 불쌍해 보였는지...
그날 난 청소도 새로하고 물도 떠다놓고 사료도 가득가득 부어주고 집에 왔다.

그 다음 날부턴 꼬박꼬박 학교를 나갔다.  역시 오는 애들은 하나도 없었다. 계속 
그렇게 다니다 보니까...허허..이놈들이 날 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그쪽으로 
들어오면 멀리서부터 날개를 퍼덕이는거다.  점점 그생활에 익숙해지니 그다지 
냄세도 역겹지 않고 청소도 더 자주하게 되었다.  누구도 거들떠 보지않고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나가도 누구하나 그 새장일을 확인하지도, 기억하지도 못했지만 난 
뿌듯했다.  나하고의 근 두달의 약속을 지킨 것이였고 무엇보다도..소중한 그 
새들의 생명을 그냥 모른척하지 않았다는게 즐거웠다.

일이란게 이런 것인가 보다.
남이 시켜서 억지로는 절대 못한다.  물론 할 수는 있지만 자기도 만족 못하고 
남도 만족할 수 없다.  그냥 그런 척만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나이가 들면서 이렇게 됨을 솔직히 시인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때의 그 순수했던 감정을 떠올려보면 참 많이도 내가 세상에 
찌들려있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오늘같이 눈이 펑펑 내리는 날에 불현듯 그때 그시절이 생각나는건 왜일까...
아무 사심없이 때묻지 않은 그때가 많이도 그리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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